제2절 쉐퍼 문화 변증의 전도자
쉐퍼를 평가하는 사람들은 쉐퍼를 문화사역자로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잘못된 말이다. 쉐퍼는 문화사역자가 아니라 문화 변증을 통한 전도자라고 하여야 바른 표현이 될 것이다.
쉐퍼를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독특하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변증일 것이다. 이것을 통하여 쉐퍼의 문화사상을 알 수있다. 그의 초기의 저서를 통한 사상은 이 사실을 아는데 중요한 단추이다. 그의 삼부작이라고 일컸는 [이성에서의 도피],[거기 계시는 하나님],[거기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종합이라 할 수 있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를 통하여 기독교 변증의 쉐퍼식 방법을 알 수있다.
쉐퍼는 이러한 시대적 혼란에 대한 접근을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았고 동시대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동시대의 언어와 방법을 통하여 접근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화를 통한 접근 이었다. 쉐퍼는 문화는 사람들의 세계관읗 형성하고 그문화에 따라서 사람들은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말하기를 “역사와 문명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이 흐름은 인간의 사상에서 유래되는 것이고,인간의 사상에 근원을 둔다.인간은 내적 정신 생활에 있어서는 특이한 존재이다. 즉 그들의 정신세계는 그들의 행동을 결정짓는다.이것은 그들의 가치체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프란시스 쉐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 박형용역 생명의 말씀사 서울 1990 p15
또한 “사람들은 전제를 가지고 있다.그리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이상으로 이러한 저네들의 기초위에서 더욱 일광성있게 살아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제란 개인이 인생을 보는 기본적 방법 즉 그의 기본적인 세계관,자신들의 틀을 통해 세상을 보는 기본적인 방법을 뜻한다.”]프란시스 쉐퍼 p15
쉐퍼는 이러한 원리의 입각하여 현대문화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았다. 그는 서구 문화의 사상의 흐름을 살펴봄으로 서구문화사상의 근거를 보이고 오늘의 시점의 모습을 논증하였던 것이다.
첫째, 로마 - 현대문화의 뿌리
이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많은 수의 역사학자들도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다.]자크 엘룰도 그의 사상의 출발점을 로마로 보고 있다.
그러나 쉐퍼는 단순히 그들의 문화에만 관심을 두도 있지않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관심을 두었다. 쉐퍼는 현대문화에 획을 근 로마에 그 출발점을 두면서 말하기를 “로마에는 많은 종교와 신들이 허락되어있었다. 그 신들의 신성은 인성에 의해서 설명되었다. 한마디로 그들의 신은 인격적이고 전능한 절대적 신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즉 충분히 위대하거나 영원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들의 사상과 생애에 연관 시킬 수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가치체게는 개인적으로로나 정치적으로 인생의 긴장을 감당하기에 흡족 할 만큼 강하지 못했다. 로마인들이 가졌던 인간신들은 빈약한 존재들이었고 그러한 기초 위에 있는 로마는 멸망될 수밖에 없었다.”]프란시스 쉐퍼 p17-18
쉐퍼가 로마에서 발견한 것은 절대적 기반이 없는 문명이나 개인은 압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을때는 견디지만 그보다 강한 압력이 오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절대적 기준이 없는 사회와 개인을 보았던 것이다. 쉐퍼는 비유로 말하기를 “로마의 다리는 당시의 마차가 다닐 수 있는 튼튼하지만 오늘날의 트럭이 지나가면 무너지고 말것이다.”고 하였다.]프란시스 쉐퍼 p20
둘째, 이성의 시대의 기반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과 은총의 분리
쉐퍼는 인간의 재탄생 이라 할 수 있는 르네상스의 기반을 마련하여 준 아퀴나스의 사상을 말하고 있다.아퀴나스는 그의 인간관에서 부분 타락을 말하고있다.즉 인간의 의지는 타락하였으나,인간의 지성은 손상받지 않았다고 함으로사람들은 인간적인 지혜를 의지 할 수있고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비기독교 철학자의 가르침을 자유로이 섞게되어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아래 이 세상을 “자연과 은총”의 부분으로 이분화 시켰다.아퀴나스의 기여는 인간과 자연에게 중요성을 주었지만 그러나 개별자들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것이 되게 하므로,결국 개별자의 의미를 상실 되게 만들었다.
아퀴나스의 본래 의도가 어떠 했든간에 그의 사상이 낳은 결과는 엄청났다. 오래동안 잠자고 있던 자연과 이성이 날개르 펼치고 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모습에 뒤따라올 두가지 모습이 첫째는 중세의 점차로 각성된 문화 사상과 각성된 경건이며 둘째는 성경과 초기 교회의 교훈에 대하여 심해지는 왜곡이다.]프란시스 쉐퍼 p55
바로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한파가 몰아닥쳤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한파에 대응한 또하나의 흐름이 있어는데 그것은 바로 종교개혁운동이었다.
셋째, 이성의 꽃과 감정의 열매- 계몽주의의와 낭만주의의 태동
르네상스를 통한 계몽주의는 철저한 이성중심의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속에서 모든 것의 기준이 이성이 되어짐으로 절대적 가치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은 “이성,자연,행복,그리고 자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절대적 기준은 인간이성이며, 그에따른 행복과 자유에 근거한다
이성이 모든 것에 행복을 줄 수있다고 믿은 세대들에 의해 혁명이 일어났고 혁명은 새로운 삶을 줄수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이러한 혁명을 통하여 죽은 사람이 이전의 어떤 혁명에 의하여 죽은 사람의 숫자보다 많다는 것이다. 양심이 기준이 되는 시대의 결과였다.
계몽주의 열풍은 한번도 식어지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가졌던 이성적 낙관론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현대 철학의 문을 열었던 네사람은 이러한 계몽주의의 이상이 허상으로 끝났음을 말하였던 것이다. 특별히 그중 매우 주요시 보아야 할 인물이 바로 장자크 루소인 것이다. 루소의 등장으로 계몽주의적 인본주의에 새로운 변화가 이우러진 것이다. 즉 현대적 인본주의가 출현한 것이다. 루소는 인간이 오직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했을 때 개체 사물,개별자와 그것들의 의미 사이에 긴장이 있으므로 절정기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발전시켰다. 그는 이 문제를 자율적 자유와 자연적 자유의 개념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시기로부터 이전 시대의 낙관론적 희망이 사라지고 비관론으로 흐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로 문을 연 이들은 보편자와 개별자에 의미를 주고자 했던 통일된 대답을 향한 기대를 포기 한 것이다. 이성이 계몽주의의 영웅이었다면 이제 감정은 낭만주의의 영웅이 되었다. 루소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 낭만주의 시대를 열은 것이다.이들의 사상은 이 한마디에 잘 나타나있다.
“모든 창조물은 자연의 가슴에서 즐거움에 도취되도다”
결국 자연적인 것이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루소의 영향은 사회계약론을 통해서 사회영역과 자연을 도덕적 기초로 삼으려는 시먼법의 영역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에밀을 통해서 교육계에 영향을 미쳤으며,낭만주의 문학과 음악에 그리고 고갱의 미술에게 까지 대단히 넒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고귀한 야만인이 문명인보다 뛰어남을 역설한그의 힘이었다.]프란시스 쉐퍼 pp165
둘째로 현대인의 문을 연 인물은 바로 임마누엘 칸트였다. 칸트 또한 동
일한 문제를 다르게 표현하였지만 여전히 실패하였던 것이다. 칸트는 이 세계를 본체계 즉 가치와 의미의 개념을 가진곳 과 현상계 즉 측정되고 무게를 잴 수 있는 세계,외부세계,과학의 세계로 보았다. 그리고 이 세계를 결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칸트역시 루소와 같이 통일된 길을 찾을 수없었던 것이다. 오직 인간에게서 출발하여 현상계와 본체계를 연결하는 길은 없었다.]프란시스 쉐퍼.,pp174
이것이 혀대인이 도달한 하나의 정거장이었다. 그래도 더눅 발전하면 무엇인가 희망을 갖을 수있을 것이라 믿었다. 바로 이 믿음의 결과 이 시대의 매우 중요한 흐름을 열게 된 것이다. 이 들이 바로 진정 현대인의 시조라 할 수있다.
넷째, 상대주의 유령 - 실존주의와 변증법의 출현
쉐퍼는 현대문화가 앓고있는 상대주의적 유령의 근원을 헤겔과 실존주의자 키에르케골에게 두었다.
헤겔은 인류역사상 인식에 있어서의 엄청난 변혁을 가져온 인물이다. 그의 변증법적 사고 즉 正.反,合의 사고는 이제까지의 사고체계를 흔들어놓았다. 그는 “진리는 쩔대적이라는 믿음에거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믿음으로의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었다. 헤겔은 이전의 직선적인 사고를 제거하고 그것을 삼각형으로 바꾸어놓았다. 즉 반정립대신에 진리에 도달하는 현대인의 방법으로서 우리는 종합이라는 방법을 가지게 되었다. 헤겔은 이 종합을 실제로 이성에 의해서만 도달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관념론자였다.]프란시스 쉐퍼. p30
이러한 헤겔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누구든지 무엇을 생각하든지 종합의 방법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쉐퍼는 헤겔을 절망의 선으로 보았다. 그러나 헤겔은 절망의 선아래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절망의 선안으로 들어간 인물의 출발점은 바로 헤겔의 인식론은 인정하면서 그의 방법론에 반기를 든 네델란드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 였다.
키에르 케골은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많은 평가가 있을수있다.그의 삶과 신앙적 열심은 참으로 우리에게 도전을 많이준다 그러나 쉐퍼는 이러한 것보다 더중요하게 키에르케골을 보아야 할 것은 그가 “이성에 의해 진리에 이를수 있다”는 믿음에거 “믿음의 비약에 의해서만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러한 키에르 케골의 사상은 헤겔 사상에대한 대안으로 나왔다. 키에르케골의 사상은 합리적인것과 논리적인 것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말았다. 즉 합리적인것과 신앙은 상호간에 아무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합리주의적 인간이 인간생활의 실제적인 것들 즉 목적 의미 사랑의 타당성같은 것들을 취급할 경우 합리적인 사상을 버리고 부득이 거대한 비합리적인 신앙의 비약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다.]프란시스 쉐퍼 기독교와 현대사상 -거기계신 하나님- 홍치모역 성광 서울 1992 p32
이러한 키에를 케고르의 영향은 신학적으로는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로 철학적으로는 철학적 실존주의의 양대 자양분이 되었다.
이들의 영향은 기독교가 초월성을 고수하는 대신에 비합리적인 종교로 전락하는 희생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존슨이 말하기를
“지성이 무시되던 17세기에는 경건주의와 신비주의가 꽃 피웠으며 그때에 잃어버린 기독교적 지적 주도권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서구 현실이다.” ]성인경 프란시스 쉐퍼의 문화 사상 1996년 총신대원 역사학회 세미나 자료집 p6
이것은 바로 오늘 한국교회가 처해있는 현실이기도 하다.한국 교회가 지적인 권위를 잃어버린 결과가 바로 기독교부흥의 후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전 영역에서 기독교의 지적인 권위가 살아있지 못하다면 우리 교회는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사상의 흐름은 결국 2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의 1960년대라는 엄청난 문화적 격변기를 가져왔고 오늘날의 사상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합리적인 권위를 상실하게된 기독교는 젊은이들에게 진리의 힘을 줄 수없고 결국 동양의 신비주의로 도피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쉐퍼는 이러한 현실인식을 통하여 합리적 기독교를 문화적 모습을 통하여 증거하였던 것이다.
쉐퍼는 이렇게 문화사상의 흐름을 살펴봄으로서 현대문화의 혼돈과 무질서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상대주의적 사고속에서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진리를 증거하였던 것이다. 바로 문화변증의 전도인것이다.
쉐퍼는 사상은 행동을 낳는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사상에대한 이해가 없이는 오늘의 문제를 풀 수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그는 단순히 문화에 대한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전도의 접촉점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쉐퍼는 문화를 통하여 만났고 문화를 통하여 이야기 하였고 그리고 문화를 통하여 상대주의적 진리의 허구성을 들쳐내고 절대적 진리를 증거하였던 것이다. 쉐퍼는 말하기를 “현대인과 접촉을 가질려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선교를 시작하는 것이다“]ibid p212
고하였다.
쉐퍼의 이러한 사상적인 조류에 대한 이해는 그의 절망의 선에 대한 사고에서도 분명히 볼 수있다. 쉐퍼는 1800년전 유럽과 1935년 전 미국 그리고 1890년 후 유럽과,1935년 후의 미국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절망의 선이 그어졌다고 하였다. 이러한 절망의 선은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포기하고 새로운 기준이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였다. 즉 성경의 부정에서 이 선은 그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단계별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절망의 선
① 독일 ⇒ 영국 ⇒ 미국
② 지식인 ⇒ 교양인 ⇒ 중산층
③ 철 학
미 술
음 악
문화 일반
신 학
쉐퍼는 이러한 도식을 말하기를
“각 단계는 어떤 시간적인 단계를 표시하고 있다. 위에 있는 것일수록 초기에 속해 있으며 아래로 내려 갈수록 후기에 속해 있다. 이러한 순서로 진리의 변화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첫째는 지리적으로 확대해 갔다. 독일에서 시작하여 영국 그리고 미국으로 확대되었다. 둘째는 각 사회 계층으로 침투해 드러갔다. 지식인에서 교양인을 거쳐 최후에는 중산계급에게 까지 이르렀다. 셋째는 도식에서 보여 주는 것과 같이 하나의 학문영역에서부터 다른 영역에로 이동해 갔다. 또한 그것은 철학자로부터 신학자에게서 끝나고 말았다.”]프랜시스 쉐퍼“기독교와 현대사상” 홍치모역 [서울;성광문화사1992] pp.22
이러한 사상적 흐름에 대한 쉐퍼의 이해는 그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식의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그의 역사적 이해는 그로 하여금 사역에의 일관성과 확신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의 사상에의 여정에 있어서 그의 신학적 사상 즉 개혁주의적 신학과 성경관 그리고 문화에 대한 분명한 인식하에서의 문화변증을 통한 전도자로서의 삶은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임을 삶의 전 영역에 나타내기를 바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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