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프랜시스 쉐퍼 개혁과 성경의 사람 (3) / 신동식

새벽지기1 2016. 4. 9. 09:52



제 2 장 프랜시스 쉐퍼의 사상의 여정


많은 사람들이 쉐퍼를 이해 하기를 문화 사역자나 기독교 문화 이론의 선구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쉐퍼를 너무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쉐퍼의 목적과 관점은 분명하였다.

제1절 개혁과 성경의 사람 쉐퍼

쉐퍼의 신학 사상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쉐퍼의 학문의 기간들은 모두 개혁주의 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신학은 개혁주의 신학이었고 본인 스스로가 장로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규정할 수 있는 말은 “그는 성경의 사람이었다.”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이 사실은 그의 회심의 사건에서도 분명히 알 수있고 그의 목화회사역 그리고 그의 라브리사역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그는 성경의 진리를 믿고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므로 당시대의 성경유오설자들과 맞섰으며 성경무오설을 믿고 고백하는 이들과 함께 그 유명한 시카고 선언을 작성하였던 것이다.

파커스트의 말을 빌자면 “쉐퍼는 기독교 신앙이란 하나님의 객관적인 계시인 성경에 근거해야 하며 이런 중생을 체험한 이후에야 일생을 통해 계속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쉐퍼는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성경의 약속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며,하나님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세상을 위하여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며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L.G. PARKHUST p71

이런 사상의 열매는 그의 신학 수업에 분명한 열매가 있는 것이다. 그의 웨스터 민스터와 훼이스 신학교의 신학은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 이었다. 그래서 그의 변증적인 모습을 보면 은사인 반틸의 영향을 받았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둘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제”사상, [쉐퍼는 이것을 세계관이라 부른다.] 그리고 인식론과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많은 부분에서 일치점이 있음을 볼 수있다.]성인경 “반틸과 쉐퍼” 프랜시스 쉐퍼읽기 예영커뮤니케이션 서울 1996 p198-204

그러므로 나는 생각하기를 쉐퍼의 신학의 영향과 형성은 개혁주의 신학 특히 신칼빈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신칼빈주의자들의 세계관운동은 쉐퍼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관과 동일하다. 그렇다고 쉐퍼의 신학의 근본이 신칼빈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개혁주의 신학의 형성이 자연스럽게 신칼빈주의 영향을 받아드렸다고 볼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