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프랜시스 쉐퍼의 삶과 사상(2) / 신동식

새벽지기1 2016. 4. 8. 07:00


Ⅱ. 본 론

제1장 쉐퍼의 삶의 여정

쉐퍼의 출생과 그의 성장과정을 아는 것은 그를 바로 이해하는데 참으로 중요하다.특별히 쉐퍼가 그의 사상을 펼치던 시대의 사상의 흐름를 알기위해서라면 더더욱 쉐퍼의 출생의 시대를 아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쉐퍼는 1912년에 태어나서 1984년까지 살았던 20세기 최대의 복음 전도자이다. 쉐퍼가 1912년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당대의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라고 불리우는 쟈크 엘룰 또한 1912년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시대가 얼마나 위험한 시대였는지를 알고 지성세계에 위대한 사역자를 보내어 준 것이다. 사실 이시대에 사상가들 뿐 아니라 마틴 로이드 존스,빌리 그래함, 그리고 존 스토트 같은 위대한 복음의 설교 사역자들을 보내심으로 20세기의 영적 전쟁의 심각성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의 생애에서도 볼 수있듯이 그의 시대는 정치적,경제적 그리고 신학적으로 대격변기를 보냈던 시기였다.

제1절 사역자로 부름받은 쉐퍼

쉐퍼는 불신 가정에서 태어난 외아들이었다. 그의 부모는 쉐퍼가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바랬던 보통의 사람이었다. 그의 가정은 부유한 가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대답을 얻기를 바랬던 쉐퍼는 그의 나이 17살되던 해에 성경을 읽고 또한 한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였다. 그후 그는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쫓아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와 신학수업을 준비하게게 되었다. 이러한 쉐퍼의 준비기간 중에 만나 에디스는 그의 인생을 더욱 확고히 하는 귀한 만남이 되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이 둘의 만남은 그들의 사역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가늠케하였다. 이후 개혁주의 신학교를 나오고 단독 목회를 열심히 하는 중에 그는 교회 연합회의 요청으로 유럽을 탐방하게 되었고 이 탐방은 쉐퍼와 그의 가족으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를 이끌 결단을 하게 되었다. 온갖 무질서와 허무주의 그리고 영적 방황에 폐허가 되어있는 유럽을 보면서 그는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유럽에 남게 되어 라브리라 불리우는 사역을 하게 되었다.

제2절 건초더미에서 부르심- 라브리 사역

쉐퍼의 남은 40여년간의 사역은 영적 쉼터라고 불리우는 라브리 사역에 있다. 쉐퍼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목회를 하던 1947년에 미국 기독교 교회협의회와 장로교 해외선교회 독립협회를 위해서 유럽으로 첫 여행을 하게되었다. 쉐퍼는 3개월 동안의 여행을 통하여 생애의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다. ·쉐퍼의 가족은 이 여행의 결과로 유럽에 있을 것인가,떠날것인가 두방향으로의 갈등을 겪게 되었다.그리고 그들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였고 결국 그들은 모든 안정된 곳을 버리고 영적 전쟁터인 유럽에 남기로 한 것이다. (에디스 쉐퍼 라브리 박경옥,박하영 역 호도애 서울 1994 p37)

쉐퍼는 유럽으로의 여행을 통하여 많은 동역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중에는 에버릿 쿠퍼박사와 그의 평생의 동역자였던 화란의 미술사가 한스 로크마크였다. 이들의 만남은 쉐퍼의 사역에 크나큰 기둥들이었다. 쉐퍼는 분명한 성경적 입장으로 인하여 많은 곳으로부터 강연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역가운데 그에게도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신앙에 대한 반성이었다. 쉐퍼의 이러한 영적 갈등은 쉐퍼의 말에서 볼 수있듯이 매우 심각하였다.

“ 1951년과1952년에 나는 나의 생애에 있어서 영적인 위기에 봉착했었다. 내가 불가지론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이미 여러해 전이었다. 그 후 나는 미국에서 10년을 목사로 봉직했으며, 그후에는 나의 아내 에디스와 수년간 유럽에서 봉사해 왔다. 이 때에 나는 역사적 기독교의 위치와 가시적 교회의 순결성을 변호하고 나서야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점차로 나에게 문제가 닥쳐왔다. 그것은 실제에 대한 문제였다. 이것은 양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내가 보기에, 정통주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노라는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성경이 그토록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기독교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사건들 속에 있어야 할 사실상의 핵심적인 실재를 별로 찾아 볼 수가 없었더라는 점이다.
둘째로, 내 자신의 실재도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초창기 보다도 더 약화되어 있는 모습으로 점점 나타나더라는 점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내 자신의 전반적인 위치를 재고해 보아야 하겠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 내외는 그 때 참페리에 살고 있었다. 나는 내 아내 에디스에게 솔직히 내가 다시 온전해 과거로 되돌아가서 불가지론에 이르러 문제 전반을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하겠노라고 말했다. 이 때야말로 나의 아내에게도 진정 어려운 때였을 것으로 본다. 그 당시 내 아내는 나를 위해 무척 기도도 많이 했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프랜시스 쉐퍼 “진정한 영적 생활” 권혁봉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8] pp 5-6.)

쉐퍼는 날씨가 청명한 때는 산속을 거닐고 비가 오는 때에는 낡은 오두막집 건초더미 사이로 거닐면서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생각하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거닐었다. 이러한 쉐퍼의 영적갈등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로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를 재고하는 가운데서 나는 또 다시 발견한 사실이 있으니, 무한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이 엄존하시며 기독교야 말로 참되다는 것을 알만한 전적으로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좀더 나아가서 내 생애 가운데 심오한 차이점을 일으키는 기타 어떤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재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고찰해 보았다.
그 결과 나는 다음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받은 교훈이 많이 있지만, 우리들의 현재의 삶을 위한 그리스도의 완성하신 사역의 의미에 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는 많이 들어보지 아니 했다는 것이 문제점이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 것이었다. 점점 태양은 밝히 떠오르고 노래가 흘러 나왔다.“ ibid., pp6

그러나 바로 이러한 쉐퍼의 영적 갈등과 회복은 진정한 라브리 사역으로의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쉐퍼의 영적 갈등이 없었다면 라브리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라브리의 진정한 기초의 과겨와 현재이다.역사적 기독교의 해답을 가르치고 정직한 질문에 대해 정직한 대답을 제시하는 일은 실로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나 실재에 이르는 것은 노력을 통해서이다. 이런 노력을 통한 실재가 없었더라면 라브리와 같은 기민한 활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ibid., pp6-7

라브리에서의 그의 사역은 절대적 진리를 위한 투쟁이었다. 라브리에는 국적과 연령,배경과 관심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와서 진리에 대하여 토론하고 진리를 찾고 있다.]에디스 쉐퍼 p18
라브리의 사역의 목적은 분명하였다.
라브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삶과 일속에서 증거한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그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도를 기초로 하여 살기로 한 것이다.“]에디스 쉐퍼 p21

제3절 영적인 나팔 소리 라브리의 메시지 

라브리의 위대한 사역의 시작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었다. 라브리는 시대적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다가올 60년대의 무질서와 영적 위기에 있어서의 영적 쉼터요 충전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었다.
라브리의 기본 사역은 사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실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쉐퍼는 이 라브리 사역의 처음부터 인간 생활전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기에 라브리의 소명과 목적에는 방문자들의 지성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속에서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포함된다. 라브리의 아름다운 모습은 라브리는 모든 사람의 정직한 질문을 신중하게 취급합니다. 라브리는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기독교가 진리라는 것과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라브리는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진리라면 그것은 종교적인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도 정직한 대답을 준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답변”을 주는 것이 바로 라브리의 기본 입장인 것이다.] 라브리 편지 제23호 “국제 라브리 안내지” 한국 라브리 자료센터

이러한 라브리의 사역의 모습은 상대주의와 절대적 권위가 무너져 버린 그래서 혼란과 부패가 편만한 유럽과 미국을 햔한 영적인 오두막이자 충전소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쉐퍼의 라브리 사역의 위대한 업적은 바로 이원론적 신앙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보여 주는 데 있었다. 성경은 분명히 “기독교는 모든 실재의 진리이다”라고 가르친다.이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 기독교가 관여하며,기독교가 답변하지 못하는 문제의 영역은 없다는 사실이다.즉 모든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것이요 모든 진리가 바로 하나님의 진리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쉐퍼는 신앙의 궁극적 모습을 분명히 하였다.
“만일 당신이 신앙의 기반이 단지 경험뿐이라면 그 기반은 견고하지 못해서 환난의 바람이 불 때 당신의 신앙은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기독교를 순수 지성주의로 생각한다면, 환난의 바람이 불 때 그것 역시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기반은 반드시 경험이 아닌 내용이어야만 된다. 이때 비로소 기독교 신앙은 전인격을 포괄하나 그 기반은 인식에 있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캐서우드 pp.170

이러한 의지와 감정이 있기전의 지성이 먼저인 신앙을 분명히 하는 것이 바로 쉐퍼의 사역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이 라브리의 사역은 아니었다. 쉐퍼의 동료이자 제자인 오스 귄네스는 말하기를
“라브리의 사역은 진리도 중요하였지만 사람도 중요하였다.이 두가지가 바로 라브리의 비밀이었다”]크리스토퍼 캐서우드 p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