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폐지론에 대한 성경적 반증
본문 / 고전 9:4-13, 말 3:7-12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시는 약속으로, 3만2천5백가지의 약속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약속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신 구원에 관한 ‘무조건적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인간에게는 절대적으로 주권이 없는 약속으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자들은 모두 이 약속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공로로 구원의 약속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인간의 쌍방적 약속인 ‘조건적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만 이루어지는 약속으로, 구원에 관한 약속이 아니라 삶의 축복과 상급에 관한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면서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내세 문제 즉, 천국은 이미 확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상급과 삶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은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일조의 약속도 조건적 약속입니다. 그러나 십일조에 대해 우리자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마음속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물질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신앙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며 사는 것을 ‘신앙생활’ 혹은 ‘성도의 삶’이라고 합니다.
1. 신앙생활의 5가지 기본생활
첫 번째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으로, 이것은 신앙생활의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의 삶입니다.
즉, 구원받은 성도들은 지속적으로 말씀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육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육신의 양식을 먹어야 하듯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기도생활입니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또한. 교회에서도 합심하여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전도의 삶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다른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게 하는 전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혼하면 자녀를 낳듯이 영적인 자녀를 낳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생활입니다.
위 5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하고 있지 않다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 중 한 가지라도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됩니다. 즉, 구원받으면 5가지를 반드시 실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5가지를 실행하지 않고 있다면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론이요, 감정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혹은 ‘성도의 삶’의 5가지 기본원리를 통해 나의 신앙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의 문제가 왔을 때, 5가지를 실행하고 있는지 확인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성도의 삶 즉, 예배, 말씀, 기도, 전도, 헌금에 대한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특히 헌금 생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 받고 살기를 원하시고, 풍성해지기를 원하시고, 부자 되길 원하시며, 부요의 복들을 받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복들은 다 헌금과 관계가 있습니다. 즉, 헌금제도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복 받아 차고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십일조와 물질의 십일조에 대한 오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십일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첫 번째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믿음이요, 표인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그리고 창조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정하는 믿음의 표가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마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땅이 저주를 받아 하는 일마다 안 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인간이 아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표로 십일조인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 먹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네가 하나님인데 왜 십일조를 드리냐? 그것도 네 것이야! 따 먹어!”라고 유혹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표입니다. 구약 백성들은 자신의 전 재물․재산을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인정하는 믿음의 표였습니다. 신약에서도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십일조는 “나의 재물, 내 자신, 자녀들, 가정, 건강,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 몸까지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생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자녀들도 내 것이 아닙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내 것으로 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불행을 초래하고 있습니까? 내 사업, 가정, 자녀, 자신까지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십시오.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십일조는 하나님의 창고에 드려질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큰 죄를 짓고 있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권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으로 도적놈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께 하나도 드리지 않는 것이 됩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요, 다 드린 것과 똑같이 여기십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귀한 믿음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십일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말 3:7).”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의 날로부터 하나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규례를](호크)은 ‘규례, 율례, 관습, 의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말씀인 토라를 주셨습니다. 토라를 어떻게 잘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분석하여 만든 것이 규례입니다. 규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기 위한 행동지침서입니다. 이런 관습과 의무를 실천에 옮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먼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에 옮기지 않으므로 하나님과 축복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규례는 토라의 말씀을 지키는 행동지침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키지 아니하였도다](로)는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로부터 후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하고 떠난 삶을 살았습니다. 이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원했지만, 인간들은 하나님과의 쌍방적 계약을 파기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구원의 은혜는 받아 축복의 관계가 되었다 해도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면 복을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돌아가리라](슈브)는 ‘돌아가다, 회복하다, 그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가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받지 못했던 축복을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심으로 모든 저주가 멈추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구원에 관한 축복은 먼저 행동을 보여주시지만, 조건적 약속인 쌍방적 계약에 의한 복은 인간이 먼저 해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즉, 사람이 먼저 규례를 지키면 하나님이 돌아가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먼저 복을 주시면 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축복에 관한 것은 반드시 먼저 하나님께 행동으로 실천할 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규례를 지켜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도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에게 개인적으로 함께 하여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면과 격려를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쌍방적 계약을 내가 파기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계약을 이행하게 되면 하나님은 복을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저주를 푸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 3:8-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도둑질하지 않았다고 뻔뻔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쌍방적 계약을 우리가 먼저 파기하고도 파기한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하여 결국에는 저주를 받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도둑질하겠느냐](카바)는 ‘도적질하다, 약탈하다, 훔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몰래 도적질했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이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무력으로 빼앗았다, 남의 것을 몰래 훔쳐서 자신의 것처럼 소유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막상 물질이 나에게 들어오면 몰래 훔쳐 원래 내 것이 아닌데도 내 것처럼 하는 행위입니다. 십일조와 봉헌물을 훔치고 강탈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았던 이러한 행위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은 한 번만 약탈하고 훔친 것이 아니라 밥 먹듯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것을 훔쳤습니다. 도둑질하는 사람도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고 양심에 거리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성공을 하니 마음이 담대해지게 됨으로 계속해서 도둑질을 하다가 결국 꼬리가 잡히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처음 훔칠 때는 신앙의 양심에 가책도 생깁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하다 보니 양심의 가책은 사라지고 양심에 화인 맞아 이것이 당연하게 되어 죄처럼 여기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행동하면서도 신앙의 양심에는 전혀 가책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고 훔쳤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복이 아닌 저주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쌍방적 계약을 파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것을 내 것 인양 도둑질하고 강탈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으나 스스로가 저주를 받은 지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마아세르)는 ‘십일조, 십분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마아세르’의 히브리적 의미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미리 통찰력 있게 예언하시고 더러운 저주에서 깨끗하게 정화시켜 가난한 비참함에서 건져내어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고통스러운 삶에서 건져내주시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인생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며 영적으로는 피폐해지고 힘들어 하는 자들에게 고통을 풀어주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봉헌물](테루마)는 ‘성물, 예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높아지다, 자랑하다, 일어나다, 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봉헌물은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주었던 제물 중에 일부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께서는 봉헌물을 드린 자들을 세워주시고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봉헌물을 받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바로 인간들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와 헌물을 받으시고 드린 사람을 세상에서 물질로, 명예로, 권세로 높여 주시고, 세워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렇듯 사람이 하나님을 자랑하고 인정하는 행위가 바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주를 받았느니라](아라르)는 ‘저주하다, 저주받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여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도둑질을 멈추면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봉헌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관계를 회복하면 저주가 즉시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저주는 내가 피할 수 있다고 해서 피해지는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소홀히 생각하여 계속 도둑질을 하면 이 저주는 계속해서 나에게 임하게 되고 풀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 저주는 육적인 문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에게도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못을 깨달았다면 도둑질을 멈추고 하나님께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림으로 저주가 완전히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십일조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표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 사람과 구별된 표가 바로 십일조입니다. 세상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며, 천국에 가지 않기 때문에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은 대한민국 정부에 수입에 대한 세금을 내며, 또한 어디를 가서 무언가를 소비할 때에도 10%의 세금을 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국에 가서 살 사람들이기에, 천국에 세금을 내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정부에 세금을 내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립니다. 세금 포탈죄를 저지르면 감옥에 가 값을 치르듯이, 천국의 세금 포탈죄를 짓게 되면 삶이 어두워집니다. 세금 포탈한 사람은 언제 세무조사 나올지 몰라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세금을 포탈한 죄로 걸리게 되면 그 동안 내지 않았던 세금의 수십 배를 내야 합니다. 천국세금 내지 않는 교인은 교회에 나와도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세무조사 나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무조사에 걸리는 그날 삶이 비참케 됩니다.
이처럼 십일조는 하나님의 백성의 표인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서도 십일조를 드리는 자와 드리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을, 천국백성이 아님을, 천국에 갈 수 없음을 시인하는 행위입니다. 반면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자신과 사단과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백성이며 천국 백성임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에다 세금 내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만 대한민국 백성의 표로 대한민국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로 부인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시인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로 십일조는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언제나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열 개 중에 한 개를 드림으로 이기심이 사라집니다. 열 개를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다 가지려 하면 욕심이요, 이 욕심으로 인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림으로 이기심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평안가운데 살게 됩니다. 왜 십일조를 못 드리는 것일까요? 바로 이기심과 욕심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사단이 찾아와 “다 네꺼야.” 라고 말하며 사람의 이기심과 욕심을 드러나게 하며 유혹했습니다. 지금 현재 몇 십 만원도 욕심 때문에 못 드린다면 더 큰 재물을 주실 때에는 어떻게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주시고 싶어도 우리의 욕심으로 인해 결국 우리가 죽게 됨으로 주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길 원한다면 십일조를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섯 번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곳에 물질과 시간을 드립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아내나 자녀에게 십일조를 줍니까? 십일조가 아니라 더 많을 것을 줄 것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물질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아무 조건 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 약속하심으로 구원을 허락하신 주님께서 이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삶의 축복과 더불어 하늘의 상급까지 주시기 위해 조건적 약속으로 지키라고 하신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큰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나에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한 주님의 주권(소유권)을 인정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관계로 회복될 뿐만 아니라 육과 마음과 영혼의 저주에서 깨끗하게 정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 되었음을 시인하고, 늘 자랑하며,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광종 목사 / 인천성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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