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나단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주도홍 교수(기독신학대학원)

새벽지기1 2016. 2. 3. 06:54

에드워즈의 주요 저작들과 신학사상들

에드워즈의 본격적 저술활동은 23년의 열정적 노쓰햄톤 교회 목회를 정리하고 인디언 선교사로서 체류했던 1750년 이후 보다 여유로운 스탁브리지의 6년동안에 이루어졌다. 이 기간은 에드워즈의 55년 동안의 전생애를 두고 볼 때 1758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끝자락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그의 사상적 탁월성과 독특성을 보여주는 저작들이 대부분 이 기간에 세상에 나왔다. 1754년에 「의지의 자유」, 1755년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종말에 관하여」와 「진정한 덕의 본성」이 그리고 1758년에 「원죄」가 쓰여졌다.

에드워즈를 지성과 감성이 균형있게 갖추어진 독특한 사상가로 평가케 한 결정적 저작 「신앙과 정서」가 1746년에 노쓰햄톤 목회시절 쓰여진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또한 그의 전생애가 글을 쓰는 일과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일관되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벌써 19살 되던 해 석사논문 「존재에 관하여」을 시작으로 그는 일기를 그리고 그외 많은 저술활동을 본격화하였다. 20살에 「거미에 관한 연구」를 내어놓았고 또한 「계시록에 관한 글」을 시작하였다. 22살에 「우주의 아름다움」을, 25살에 「거룩한 것들의 이미지」를, 34살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에 관한 신실한 설명」을 당시 일어난 부흥운동을 변호하기위해 계몽주의적 비판에 맞서 저술하였다. 이러한 저술활동은 목회사역에서 행해진 다양한 설교집과 더불어 끊임없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저술들을 내용별로 보면, 먼저는 신학적 내용 그리고 개인적 관심에 의해서 쓰여진 다른 주제의 사적 내용으로 크게 분류될 수 있다. 신학적 내용에 해당되는 것으로는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설교들을 우선적으로 들 수 있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교리를 주제로 한 저작들과 아울러 에드워즈의 탁월한 신학적 사고(思考)의 진수를 보여주는 신학적 저술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중 「의지의 자유」는 알미니안주의가 가지는 잘못된 자유의지에 대한 이해를 겨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지나친 칼빈주의(Hyper-Calvinism)가 갖는 비복음적 운명론적 태도를 공격한다. 「원죄」는 테일러 박사(J. Tayler)와 논쟁하면서 2천년 전통의 거대한 기독교 교리를 확신있게 변호한다. 또한 「은혜론」은 「신앙과 정서」그리고 「의지의 자유」의 자매작품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약간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사적 관심에 의해 쓰여진 글들이란 물론 대부분 성경적이고 교리적이며 신학적이기도 하지만 출판과 공개를 염두에 공개성을 띤 작픔은 아니었다. 사적 경건과 헌신을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결단을 담고 있다. 「일기」, 「삶의 결단들」,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때 그때 기록하였던 「메모들」 그리고 13권 분량의 「잡기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자신을 점검하고, 각오를 새롭게 하면서 에드워즈는 인생의 지표 70가지를 설정하였다. 1722년에는 24가지를, 1723년에는 34가지의 생의 지침을 완성하였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의 지침을 죽음에 이르는 일주일 전까지도 점검하였다. 특히 인상깊은 19살 때 시작된「잡기들」(The Miscellanies)은 목회생활 전반을 포함하여 35년동안 그때 그때 상황을 진솔하게 숨김없이 기록한다. 미국의 위대한 사상가요, 목회자이며, 신학자였던 그가 어떻게 발전하였으며, 영적 성숙을 향해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였는지를 오늘 우리에게 숨소리와 함께 들려주고 있으니 그 어찌 보배롭지 않으리요! 에드워즈 목사를 친히 만나는 착각을 들게하는 생명감 넘치는 글들임이 분명하다. 마감하는 20세기가 18세기의 에드워즈를 만나는 타임머신은 바로 이러한 저술들이 아닐까.

에드워즈가 모으고 읽었던 책들

이제 역사에 부여된 특권을 가지고 18세기 에드워즈의 서재를 부담감없이 마음껏 들여다 볼 것이다. 그의 일기장을 들추어본다 할지라도, 역사가의 마땅한 할 일로 존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의 일기장을 들추는 일을 할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에드워즈가 모으고 사랑하고 읽었던 책들이 어떠한 책들이었고, 또한 얼마나 큰 기쁨과 애착을 가지고 책수집과 책읽기를 즐겨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에게 붙여진 또다른 이름들인 '독서광', '책벌레' 그리고 '수집광'은 과연 얼마정도의 타당성을 갖는 것일까?

책 모으기에 최선을 다했던 에드워즈의 모습을 자신의 편지들은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1737년 8월 8일 그는 원하는 책을 갖고저 무척이나 간곡한 편지를 한번도 아닌 두 번이나 썼다: "존경의 마음을 품고 편지를 드립니다 ... 저는 용기를 얻어서 전에 「의회판 백과사전」을 보내주십사고 요청했었고, 송구스러운 마음이지만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조심스럽게 저의 요청이 수락되었는지 아니면 거부되었는지를 매우 알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께서 그 책을 보내주셔서 제가 겨울이 오기 전에 받아볼 수 있을거라 기대해도 된다면 편지배달부에게 말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조금은 다른 내용이지만 1748년 8월 31일 에드워즈는 책선물을 받은 후 큰 기쁨과 함께 감사가 넘치는 편지를 동료 목사인 어스킨(J. Erskine)에게 보냈다: "저는 테일러의 책 두권을 얻게 되어 매우 기쁨니다. 원죄에 관한 테일러의 책을 전에 빌려 읽은 적이 있었는 데, 제 것이 생기니 너무나 기쁘군요. 당신께서 그 책을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제가 그것을 구하기가 쉼지 않았을 것입니다 ... 살아있는 한 이 책들은 제게 유용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마치 원하던 책을 받아들고 기뻐 어쩔줄 모르는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함을 연상케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당시로서는 책구하기가 오늘날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드워즈가 욕심쟁이처럼 그저 책수집 자체에만 목적을 두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광적이라 할 정도의 집착어린 책수집 배경에는 숨길 수 없는 진리의 보물을 찾아해매는 에드워즈의 열정적 독서열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사무엘 홉킨스는, "그는 모든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는 데 특히 신학서적을 읽었으며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의 지식추구에 있어서 독서를 통해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 그러므로 그의 생전에 모든 나날은 바쁜 벌과도 같이 활짝 핀 모든 꽃에서 꿀을 수집하듯, 실제로 달콤한 지식 더미를 저장했다. 그리고 해가 더하고 지식이 더함에 따라 그는 진보를 더했고, 그럴수록 그의 펜은 점점 더 바빠졌고, 그의 손은 갈수록 더 빨리 원고를 써내려갔다"고 묘사했다. 참으로 에드워즈는 독서의 유익을 그 누구보다도 확신하여 깊은 독서에 빠졌으며, 그 독서에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보다 깊이있는 신학과 사상에로 그리고 폭넓은 목회사역에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그의 서재에는 과연 어떠한 책들이 자리잡고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500개의 항목으로 분류된 43쪽 분량의 그의 책 카타로그는 가로 세로 약 20CmX16Cm의 크기로 되어있는 데, 주제뿐 아니라, 제목, 저자, 논평 그리고 메모와 묵상이 첨가되고 있다. 여기에 등장되는 책들중 에드워즈에게 친숙했던 몇몇 저자들을 일컬어 보면,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을 위시하여 마틴 루터, 윌리암 에임즈, 리차드 박스터, 토마스 굳윈, 휴고 흐로티우스, 토마스 홉즈, 존 로크, 찰스 오웬, 존 오웬, 윌리암 퍼킨스, 리차드 십스 그리고 초대교회의 터툴리안, 요셉푸스, 그리고 어거스틴도 보인다. 그의 손떼묻은 서재에는 당시로서는 결코 적지않는 천권 가까이의 책이 꽃혀있었다.(97.8.9, Seoul)

그의 부인 사라와 가정

에드워즈 부부는 새로이 결혼을 준비하는 많은 젊은 남녀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대설교자 조지 휫필드가 아직 총각시절 에드워즈 부부를 방문한 후, 영국으로 돌아온 즉시 결혼을 작정하였다. 참으로 축복받은 정겹고 사랑스러운 에드워즈 목사의 부부를 바라보며, 휫필드는 그의 감격을 억누를 수 없었다. 특히 사모 사라의 모습은 휫필드로 하여금 축복된 아내의 만남을 생각하며 자신의 결혼을 준비케 하였다. 휫필드의 말을 들어보자:

"그들은 지금까지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정다운 부부였다 ... 그녀는 온유하며 조용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다감하면서도 확신있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도 그런 내조자였으며 나로 하여금 여러 달 동안 기도를 드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지금의 내 아내 아브라함의 딸을 얻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물론 타국 먼길을 오랫동안 홀로 여행을 해야만 했던 부흥사 휫필드는 때때로 파도처럼 밀려드는 외로움을 하나님의 은혜로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도 거룩하게 서로를 정숙하게 사랑하고 존경하는 에드워즈 부부를 볼 때, 결혼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어떠한 것인지를 더욱 실감났던 것이다. 이러한 격찬은 휫필드에게서만은 아니었다. 작가 사무엘 홉킨스(Samuel Hopkins)도 에드워즈의 가정을 방문하고 나서 "그들이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고, 온전한 화목을 이룬다는 사실"에 경이로운 찬탄을 숨기지 아니했다. 이러한 거룩하고 축복스러운 가정과 부부애는 에드워즈의 수고도 크겠지만, 탁월한 사모 사라의 역할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오래전 20세의 뉴헤이븐에 거주하던 대학생 조나단이 13세의 소녀 사라를 보며 묘사하는 말은 더욱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당시 대학생 조나단이 사용했던 헬라어 문법책 앞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는 소녀 사라를 향한 한편의 시는 거룩한 느낌까지를 갖게 한다:

"그녀의 머리에는 남모르는 향기로움이, 그녀의 가슴에는 하나밖에 없는 순결이 있어 그녀의 행위가 지극히 올바르고 양심이 선해, 온 세상을 전부 준다해도 그릇된 일이나 죄된 일을 하도록 설득할 수 없으리 ... 그녀가 때때로 즐겁게 노래부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 언제든지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치는 것같이 보이나 어느 누구도 무엇때문인지 모른다네. 그녀는 들판과 숲속을 걸으며, 홀로 있기를 즐겨하며, 기쁨과 환희에 심취해 있으며, 항상 대화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분을 모시고 있는 것 같도다."
하 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생활화하고 있는 어린 소녀 사라를 향한 청년 조나단의 시선은 남달랐고 많은 기대로 가득찼던 것을 실감하게 된다. 4년 후 조나단이 24세, 사라가 17세 되던 어느 날 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 쌍의 젊은 남녀는 결혼을 하였다. 당시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고상한 인격을 소유한 젊은 숙녀였다.


에드워즈 목사부부는 세아들과 여덟명의 딸을 낳았다. 그러니까 11명의 자녀를 포함해 총 13명의 대식구가 함께 사랑 안에서 오손도손 살았다. 에드워즈의 사위로서 전기작가이기도 했던 드와이트(Dwight)는 그들 가정의 다정다감했던 모습을 아름다운 대화의 신앙공동체로 묘사하고 있다. "저녁 식사 후 거실에 앉아 약 한 시간 동안 힘든 공부에서 벗어나 자녀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으며 즐겁고 다정한 대화로 긴장을 풀었다. 자주 위트와 유모어가 폭발하며 흥겨운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다시 공부하러 들어가기 전에 점점 진지해져가는 대화를 나누며 큰 관심과 사랑으로 자녀들에게 구원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권위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아름다운 성도의 가정을 충분히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위트와 함께유모어가 폭발하는 여유를 목사의 가정에서 잃지 않으며 아울러 깊은 신앙의 대화가 끊이지 않았던 에드워즈 목사의 가정이야말로 오늘의 성직자의 가정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