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믿음을 조화시키려면? / 박신 목사
[질문]
취직 준비생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장소 안에서 최선을 다해 그 준비를 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말씀과 기도와 신앙서적을 읽는 일 등에만 온전히 정신을 쏟고 있습니다. 시간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허송세월만 하는 것 같아 제 자신을 바라 볼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범사를 주님이 선한 계획으로 인도하실 것은 믿지만 나이도 29살이라 집에 걱정시키는 것도 싫고 결혼도 해야 합니다. 이런 세상적인 걱정이 드는 것도 믿음에 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과정을 헤쳐 나가야 할까요?
[답변]
많은 믿음의 청년들이 형제님과 비슷한 고충을 호소합니다. 믿음과 현실의 조화와 균형을 어떻게 하면 잘 이루느냐는 것입니다. 대부분 말씀과 기도에 더욱 집중하면서 살고 싶은데 살아가는 문제로 방해 받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현실과 믿음생활 둘 중에 어느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 정해져 있지 않고 또 정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이는 신자의 소명과 소명을 이루는 방안에 대해 정확히 분별하지 못해 생기는 의문입니다. 또 그동안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무조건 믿음이 현실보다 우선한다고 잘못 가르쳐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신자들이 현실 삶에 매달리는 것이 하나님과 영적교제에 정진하는 일보다 열등하다고, 심지어 신자가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모든 신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 소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신자 자신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서 자신이 속한 모든 공동체에 예수님의 거룩한 빛이 비취게 해서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셋째는 아직도 십자가 구원의 길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자기 주변에서부터 시작하여 땅 끝까지 이르도록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세 소명은 목회자, 선교사만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가 자기 현재의 위치와 신분에서 최선을 다해 실현해야 합니다. 다만 그 소명을 실현하는 방안에서 크게 둘로 나뉠 뿐입니다. 첫째 풀타임을 투자해 전문적 구체적 종교 활동을 하는 방안과 둘째 세속적 직업을 통해 그 소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전자는 목회자, 선교사, 신학자, 기독교 관련전문기관 종사자등이며 후자는 일반 신자입니다.
반드시 주지해야 할 사항은 이 두 방안 사이에는 절대로 영적 우열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지위, 권능, 자격, 신분 등에 결코 차별이 없습니다. 현실의 직업도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일반 신자가 행하는 현실의 일은 불신 세상을 직접 상대하며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해야하므로 오히려 하나님 나라 확장의 첨병이자 실제 전투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엔 더더욱 소중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풀타임 사역자들은 그 십자가 군병을 교육 훈련시키거나 후원해주는 것이 주된 역할입니다.
요컨대 현실의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성직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의 실제적인 도구이자 통로입니다. 대학 공부하고, 직장 얻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정말로 고귀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방식으로 하면 목회자가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불신 세상은 일반신자의 삶을 보고 예수님과 그 십자가에 관해 관심을 갖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을 비롯해 모든 신자는 가장 먼저 풀타임 사역자가 될 것인지, 일반 신자로 세속 직업을 가질 것인지 부터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풀타임 사역자가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구체적, 개인적, 인격적, 직접적, 확정적인 대면과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부르심이 없으면 아무나 섣불리 하겠다고 나설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됩니다.
바꿔 말해 그런 부르심이 없는 신자는 세속 직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현실 삶에 장애가 될 만큼 종교생활에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주일 성수나 성경읽기 기도를 등한시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아침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정도는 현실생활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적으로 더욱 충만해져서 자기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만듭니다.
제 뜻은 일반 신자에겐 현실의 삶이 하나님의 일이자 더 소중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공부만 하라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만 모여도 됩니다. 성경적 참 복음이 선포되고 진리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현실과 동떨어진 수도원에서 성숙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도원에서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자는 신학자뿐입니다. 전문 사역자라도 종교적 일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 충실해야 하며 어떤 면에선 그 올바른 삶이 더 감동적이고도 영적인 설교가 됩니다.
교회는 십자가 군병을 훈련시켜 세상으로 파송시키는 곳입니다. 모든 신자는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세상에 나가, 그것도 죄악이 더 많은 곳으로 뛰어 들어가 하나님의 파수군 역할에 충성해야 합니다. 일주일 내내 교회에 붙들어 놓고 목사와 교회에 충성시키는 작금의 상황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주일에 예배와 성경공부로 모였으면 평일에는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신자는 세상에 떨어져 썩어 죽음으로써 다른 이의 생명이 수십 배의 결실을 맺게 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의 직업에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가능한 많이 끼쳐야 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직업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전문가가 되어서 그 일을 통해 인류의 복지가 증진되는데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회와 단체에서 꼭 필요한 사람, 다른 사람으로 영육 간에 강건케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바로 그것이 아주 거룩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신자로서 복음전파를 하기 이전에 의사로서 생명을 살리고, 경찰로서 시민을 보호하고, 공무원으로서 순리대로 법을 운용하고, 선생으로서 학생들의 지성과 인성을 함양하고, 과학자로서 질병치료나 공해방지 등의 일을 성실히 행해야 합니다. 신자는 더더욱 세상에서 전문적 실력은 물론 정직과 겸손과 섬김과 사랑으로 신자답게 행함으로써 사람들로 신자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쉽게 간과하는 영적 원리가 또 하나 있습니다. 믿음과 영성이 말씀과 기도에 집중만 한다고 쉽게 자라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깨우침의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지적 종교적 배움과 훈련이 아니라 실제 삶의 모든 부분에서 평생토록 하나님과 교제 동행하는 끈질기고도 고달프고 외로운 씨름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구체적으로는 현실의 고난과 문제들을 믿음으로 갈등, 고민, 기도, 인내, 소망, 맞서 싸움으로써 신자의 성품과 믿음과 영성이 자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사도 바울, 베드로 등등 성경의 믿음의 선진들이 다 그렇습니다.
혼자서 말씀 보고 기도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그것에 시간을 빼앗기는 일, 특별히 젊었을 때에 열정적으로 믿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질문자에게 이미 현실을 등한시 한다는 우려가 생겼다면 사실은 조금 과한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어쩌면 죄악으로 추해가는 세상과는 담을 쌓고 혼자만 경건하고 싶은 영적교만 내지는 질문자가 우려하는 대로 현실을 외면 도피하려는 게으름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시기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조만간 스스로 분명한 결단을 해야 한다는 의미임, 전임사역자의 길로 갈 것인지 세속 직업을 택할 것인지 여부를 정하십시오. 전자의 경우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어떤 방식이든 그 본인은 알 수 있음, 부르심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 직업을 어떻게 하면 잘 수행할지를 연구하고 그 준비에 시간과 노력을 우선적으로 투자하십시오.
삶에서 영성이 자란다는 것은 현실과 부딪혀서 겪는 갈등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그런 문제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하고 오묘한 인도와 간섭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 반추하여 발견하고 누린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현실을 잘 준비하는 것보다, 그 반대로 삶의 문제를 말씀과 기도로 해결할 때에 그 믿음이 훨씬 더 크게 자란다는 뜻입니다. 또 그런 작은 진보들이 매일매일 모여서 결국은 노년의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믿음의 거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에선 이런 삶으로 믿음을 실현해 보여주는 진정으로 경건한 신자들이 절실합니다. 전문사역자는 공급과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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