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길이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사유한다고 할 때 그 사유라는 사건이 도대체 무엇인가? 예컨대 바르트와 브룬너의 ‘자연신학’ 논쟁을 통해서 우리의 신학적 사유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그 이외에 수많은 신학적 사유를 공부했다는 것이 과연 우리의 신학적 사유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여기.. 좋은 말씀/-신학단상 2017.01.13
신학은 사유다 신학은 우리가 자동차 운전 기술을 배우듯이 몇 가지 요령을 체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신학적 사유를 배워야 한다는 데에 어려운 점이 있다.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의 근원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삶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그렇지 못한 것처럼 신학적 사.. 좋은 말씀/-신학단상 2017.01.12
신학은 영성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성’을 어딘가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김으로써 그것에 대한 인식과 경험도 역시 비현실적인 방식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다. 쉬운 예를 들자면 기도원에 들어가서 일정한 기간 기도를 하거나, 그것도 금식을 하면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영성이 깊다고 생각한다. .. 좋은 말씀/-신학단상 2017.01.11
신학의 현대성에 대해 신학을 신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때 굳이 ‘현대’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신학을 꾸미다보면 자칫 신학이 시대적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신학은 신학일 뿐이지 고대신학이 따로 있고, 중.. 좋은 말씀/-신학단상 2017.01.08
생명과 비생명 기독교 신앙은 창조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종말에 이르는 우주론적 역사를 예수의 부활 사건에 근거해서 해석하는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키워드, 즉 창조와 종말과 부활의 공통점은 생명이다. 생명의 시작이 부활로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런 기독교 신앙의 패러다임을 실질.. 좋은 말씀/-신학단상 2017.01.06
성령과 바람 성령과 바람 고대 유대인들이 ‘영’과 ‘바람’을 하나의 단어로 일컬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고 날카로운 통찰이다. 그 단어는 ‘루아흐’이다. 이는 곧 그들이 영을 바람과 동일한 어떤 현상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오늘은 아무도 영을 바람으로, 또는 바람을 영으로 생각하지 않는.. 좋은 말씀/-신학단상 2017.01.05
<그날이 오면> 설교집 <그날이 오면> 머리글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살아야 할 목사의 운명은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현실이 놓여 있습니다. 한 개인인 목사의 인식과 경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하나이고, 우주론적 지평에서 존재.. 좋은 말씀/-신학단상 2017.01.04
<설교의 절망과 희망> 설교비평집 <설교의 절망과 희망> 머리글 헬라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푸스는 신의 노여움을 받아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밀고 올라가는 징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힘들여 바위를 정상까지 끌어올린 그 순간에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지곤 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다시 바위와 씨름.. 좋은 말씀/-신학단상 2017.01.04
민중신학은 대화를 포기하는가? 민중신학은 대화를 포기하는가? 구로감리교회 조수현 목사님(이하 ‘조 목사’)은 필자가 <기독교사상> 4월호에 게재한 졸고 “진보신학, 비판적 성찰 -민중신학을 중심으로-”에 대한 반론을 5월호에 “신학은 민중신학이다 -정용섭 박사의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읽고.. 좋은 말씀/-신학단상 2017.01.02
사유의 길, 또는 지평? 사유의 길, 또는 지평? 신학의 자리인 하나님의 존재, 또는 그의 계시와 인간 인식의 변증법적 작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 작용의 힘은 무엇일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 힘을 성령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그렇게 명확하게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론이.. 좋은 말씀/-신학단상 2016.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