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논리로 살아가게 하소서!(삿 18:21-31) 말씀 순종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폭력적이고 탐욕적이다. 사사기는 하나님 백성이 말씀을 떠날 때,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크고, 많고, 강한 것에 집착하는 한국 교회는 사사기를 재현한다. 말씀은 없고 본능만 남았다. 아멘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15.10.07
말씀 부재는 욕망이 신이되는 자리(삿 18:1-20)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의 폐기를 의미한다. 말씀 부재는 욕망이 신이되는 자리이다. 욕망의 종교적 형상이 우상이다. 욕망은 종교성을 물질화한다. 제사장도 임명되지 않고 고용된다. 하나님도 섬기지 않고 갖다 쓴다. 아멘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15.10.06
하나님 중심의 삶(삿 17:1-13)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상을 섬기는 것을 혼합주의라 한다. 혼합주의는 탐욕이 왕이 되는 종교성이다. 레위인이 생계를 위해 개인 신당 제사장을 하는 것은, 성전 기능의 상실 때문이다. 성전 기능의 상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중심 예배를 버렸다는 증거이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15.10.05
삼손의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 능력의 승리(삿 16:15-31) 하나님께서 나실인은 머리를 밀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삼손의 힘의 원천은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는 데 있었다. 나실인의 정체성을 잃은 삼손은 힘도 잃고, 이방인들을 위한 재주꾼으로 전락한다. 삼손의 최후는 머리털이 자란 효과가 아니라, 나실인으로서의 자각과 회개의 역사이다. 삼..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15.10.04
맛잃은 소금이 되어가는 삼손(삿 16:1-14) 삼손은 나실인의 구별된 삶과 사사다운 진지함을 잃어버렸다. 삼손은 하나님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과도 소통하지 않고, 이방 여자들에게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다. 들릴라는 삼손의 방만함이 선택한 멸망의 근원이다. 분별없는 사랑이 불러들인 죽음의 사자이다. 삼손은 맛잃은 소금이 ..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15.10.03
삼손의 비극(삿 14:1-20) 삼손의 이방인 아내 선택과, 죽은 사자 만지는 것과, 딤나 사건은 나실인 답지 못한 행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삼손을 붙드시어 사사의 역할을 감당케 하신다. 그렇다면 나실인 다운 삶은 삼손의 책임이 아닌가? 직책과 사람됨의 불일치가 삼손의 비극이다. 아멘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15.10.01
말씀이 삶으로(삿 13:15-25)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가르친 것. 첫째, 오직 여호와께만 번제를 드려라. 둘째, 여호와의 이름만 존귀하게 여기라. 마노아에게 가르친 것이 삼손의 삶에도 적용 되도록, 여호와께서 삼손에게 복 주시고, 여호와의 영으로 분발하게 하신다. 아멘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15.09.30
영적 군사, 구별된 삶(삿 13:1-14) 태어나기 전에 나실인으로 바쳐진 삼손. 이전의 사사들과는 다른 선택이다. 하나님께서 삼손의 구별된 성장을 기대하신다. 가나안의 종교와 문화를 철저히 배격하는 성장. 삼손의 부모도 나실인의 책임을 감당한다. 온 가족이 가나안과 싸우는 영적 군사가 된다. 아멘!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15.09.29
불평은 패배의 과정이다(삿 12:1-15) 불평은 고생을 싫어하는 자들의 자기 방어 수단이다. 불평은 자기 노력보다 상대방의 성과에 관심이 더 많다. 불평은 싸움을 낳지만, 불평하는 자들이 싸움을 이기는 경우는 없다. 불평은 패배의 과정이다. 아멘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15.09.28
오직 주님만이 승리의 주역( 11:29-40) 입다는 간절히 승리의 주역이 되고 싶었다. 지나친 간절함은 무리한 서원을 걸게 되고, 무리한 서원은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을 낳고. 입다의 딸이 슬퍼한 것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입다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영적 죽음이다. 그녀의 죽음이 이스라엘을 살렸다.아멘 좋은 말씀/ 방광덕목사 201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