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래여애반다라(이성복)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5. 2. 7. 05:58

이성복

 

來如哀反多羅 1

 

추억의 생매장이 있었겠구나

저 나무가 저리도 푸르른 것은,

지금 저 나무의 푸른 잎이

게거품처럼 흘러내리는 것은

추억의 아가리도 울컬울컥

게워 올릴 때가 있다는 것!

아, 푸르게 살아 돌아왔구나,

허옇게 삭은 새끼줄 목에 감고

버팀대에 기대 선 저 나무는

제 뱃속이 온통 콘크리트 굳은

반죽 덩어리라는 것도 모르고

 

 
 

來如哀反多羅 2

 

바람의 어떤 딸들은

밤의 숯불 위에서 춤추고

오늘 밤 나의 숙제는

바람이 온 길을 돌아가는 것

돌아가면 볼 수 있을까,

바람의 어떤 딸들이

신음하는 어미의 자궁을 열고

피 묻은 나를 번쩍 들어 올릴 때

또 다른 딸들이 깔깔거리며

빛바랜 수의를 마름질하는 것

보다가, 보다가 어미의 삭은

탯줄 끌고 돌아올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죽고 없는 세상으로

 

 
 

來如哀反多羅 3

 

이 순간은 남의 순간이었던가

봄바람은 낡은 베니어판

덜 빠진 못에 걸려 있기도 하고

깊은 숨 들여 마시고 불어도

고운 먼지는 날아가지 않는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눈 감으면 벌건 살코기와

오돌토돌한 간처녑을 먹고 싶은 날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아무래도

나는 남의 순간을 사는 것만 같다

 

 

   * 來如哀反多羅(래여애반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최근 시집 제목이다. 이 시집에는 이 제목으로 된 시가 아홉 편 실려 있다. 세 편 씩 나눠 싣는다. 이성복 시인의 시는 말 그대로 ‘백척간두 진일보 시방세계'의 문학적 형상화다. 보기에 아슬 하다못해 아찔하다. 기독교 신앙과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그 아찔한 경험은 비슷한 것 같다. 그의 시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현묘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쁨일까 슬픔일까, 환희일까 공포일까? 이 세상에서 이미 그것을 보는 사람은 볼 것이다. 마치 부활 경험이 은폐의 방식으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듯이. 이 제목의 뜻이 무엇인지는 이 시집의 발문을 쓴 홍경님 선생의 설명을 조금 빌려오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향가 <풍요(風謠)>(<공덕가(功德歌)>)의 한 구절인 ‘래여애반다라’는 ‘오다, 서럽더라’라고 풀이됩니다. 신라 백성들이 불상을 빚기 위한 흙을 나르면서, 그 공덕으로 세상살이의 서러움을 위안하는 내용이라 알려진 저 오래된 노래. 선생님은 ‘공덕’이 아닌, ‘서러움’에 방점을 두고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라는 여섯 글자의 의미를 각각 따로 해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