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재홍목사

주님이 나의 목자시니 (시 23:1~6) / 김재홍 목사

새벽지기1 2025. 1. 2. 05:09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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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롭고 불안한 오늘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이 나라 위에도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지만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차분히 하고 살아온 날을 감사함 속에서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청파교회는 지난 한 해 동안 ‘서로의 짐을 져주는 마음으로’라는 표어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마음으로 은평청파교회와 숨빛청파교회를 분립파송했습니다. 지난 당회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일을 위해 330명이나 되는 많은 이가 파송되었고, 교회 예산도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보내는 이들은 두 교회에 최대한 힘을 실어주었고, 나가는 이들은 새롭게 교회를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이와 헤어지는 아쉬움은 컸지만, 두 개의 파송교회가 모두 건실한 교회로 잘 서가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세종청파교회도 크게 도왔습니다. 개척한지 5년이 지나며 교인은 더 늘어났고, 더 큰 예배 공간을 필요로 하던 차에 청파교회가 그 일도 돕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서로 짐을 져는 마음으로 애를 썼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청파교회는 담임자가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27년 동안 청파교회를 담임하셨던 김기석 목사님이 은퇴를 하셨습니다. 21년 전 제가 청파에 처음 왔을 때, 김기석 목사님은 제게 청파교회에 대해 소개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김 목사, 우리 청파교회는 서울 중심에 있지만, 시골 교회랑 비슷해. 어르신들이 많고 교인들도 그리 많지 않아.” 정말 2003년에는 주일 예배 인원이 200명 정도였고, 어르신들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청파교회 교인들을 향해서만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셨고, 이 시대를 향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공감을 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청파교회는 어느새 지역교회를 뛰어넘어 ‘평화 세상을 여는 녹색교회’라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청파교회가 오늘에 이른 데에는 목사님의 공이 큽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조금 일찍 은퇴를 하셨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건강유지를 잘하고 계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말씀 전하러 너무 바쁘게 많은 곳을 다니셔서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그저 계속 건강하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는 담임자가 되고 나서 익숙했던 공간에 새롭게 적응해야 했습니다. 21년 동안 지냈던 곳에서 무슨 새로운 적응이냐, 하실 수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부목사로서 드나들던 담임목사실과 담임목사가 되어 들어가게 된 담임목사실은 달랐습니다. 좀 낯설었습니다. 무게감이 달랐던 것이지요. 청파교회를 어디로 이끌어야 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한 주 한 주 말씀에서 청파가 가야할 길을 찾았고, 찾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많은 분이 공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청파교회는 두 개의 교회를 파송하고 김기석 목사님이 은퇴하신 이후에도 큰 흔들림 없이 서게 되었습니다. 펜데믹 이후 좀 주춤했던 소모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새교우들도 꾸준히 찾아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인 동시에 청파교회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과 의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를 보면 지난 1년은 감사한 일도 많았고 잘 지낸 것 같은데, 사회를 보면 지난 1년은 격랑의 시간이었습니다. 여야 갈등, 의정 갈등 등 갈등이 많은 해였고, 결국 12.3 비상계엄이라는 말 그대로 비상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빠르게 사태를 정리하고 질서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습니다. 죄책을 부인하고 면피하려 자꾸 수사와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중대범죄행위입니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일상을 파괴하는 범죄행위입니다. 사태 정리가 늦추어질수록 대한민국의 국제신뢰도는 낮아지고 국민의 일상은 힘들어집니다. 계엄 이후 우리나라 주식 시가 총액은 한 때 144조원이 줄어들었고, 원화가치는 점점 하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소비도 줄었는데 판매가 늘어난 품목도 있습니다. 술과 복권. 주류 판매량은 8%가 늘었고 복권 판매량은 10%가 늘었다고 합니다. 국민들은 삶이 괴롭고 불안한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사태가 정리될 때까지는 이 괴로움과 불안함은 지속될 것입니다.

2. 다윗


송년주일을 맞아 떠오른 말씀은 시편 23편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로 시작하는 목가적이고 평온한 시편. 그러나 시편 23편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다윗의 삶을 배경으로 시편 23편을 묵상해 보면 그렇게 목가적이거나 평온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성경(행13:22)은 그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신앙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것입니다. 물론 다윗에게도 과오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에게 과오가 있었음에도 그를 존경합니다. 그가 바닥에서부터 왕위에 오른 성공신화를 이룬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수많은 시련과 자신의 과오 속에서도 우리가 지표로 삼을 만한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 살던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양을 치던 다윗은 어느 날 전쟁에 나가게 되었고 거인 같은 적장 골리앗을 물맷돌로 쓰러뜨리며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안겼습니다. 이후 다윗은 사울 왕의 부하가 되었고 나가는 전쟁마다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삼았습니다. 다윗이 계속 전쟁에서 승리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보다 다윗에게 더 환호했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거기서부터였습니다. 다윗의 삶이 어려워진 것은.

사울은 다윗을 시기했고, 언젠가는 다윗이 사울 왕가에 해를 끼칠 것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미움은 나날이 커졌습니다. 어느 날 사울은 자기가 세운 장군이요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그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미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서 도망하였고, 광야와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따라온 사울을 몇 번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망명한 나라에서는 첩자가 아닌가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계속 받아야 했고, 다윗은 살기 위해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사람인냥 연기도 해야 했습니다.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전사한 이후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강력한 군대를 앞세워 팔레스타인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는 안정을 이루고 다윗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노년이 되었을 때 왕위계승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아들 압살롬은 왕의 자리에 욕심을 냈습니다. 사람들의 환심을 샀고 군을 장악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갔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적이 아니라 아들에게 쫓겨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쿠데타는 곧 진압이 되었고 압살롬은 군장관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다시 궁으로 돌아왔습니다.

장인이 자신에게 창을 던지던 순간, 아들이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던 순간이 다윗 삶에 있어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아니었을까합니다. 장인과 아들, 그 둘은 모두 다윗을 보호하고 돌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다윗에게 창을 던지고 목에 칼을 들이댄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든든한 보호막과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할 사람들이 역으로 우리의 삶을 가장 크게 위협할 때 우리의 마음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비참하고 참담한 상황을 슬퍼하기는 했지만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무너지지 않게 했던 것일까요?

3. 주님이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에는 다윗의 체험이 담겨 있습니다. 다윗 본인도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목자인 다윗은 자기의 양을 데리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찾아다니기도 했고, 양을 지키기 위해 사나운 짐승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꼭 그렇게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이 광야와 이방 땅 같이 황량하고 부정한 땅을 다닐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다윗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와 같은 시온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자와 늑대와 같은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을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대접하는 주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에도 다윗의 체험이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떠돌이였습니다. 광야와 이방 땅을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을 조롱하고 적대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을 당신의 집, 예루살렘으로 불러 다윗의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잔칫상을 차려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시고 그의 잔이 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이는 마치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왕의 자리에 오르는 장면을 보고 그대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윗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셨습니다. 떠돌이를 왕으로 세우시는 하나님.

6절의 말씀이 마음에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다윗을 평생 뒤따랐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망의 음침함과 원수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다윗이 처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자기를 따르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망의 음침함과 원수들이 나를 뒤따랐지만 앞으로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뒤따른다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자기의 뒤를 따른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놀라운 믿음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6절 후반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개역성경의 번역으로 다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윗은 몸과 마음 둘 곳 없는 떠돌이처럼 정처 없이 살았지만, 그런 중에도 다윗은 자기의 영혼이 항상 여호와의 집에 거하고 있다 믿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준 힘은. 사망의 음침함과 원수들이 뒤를 쫓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계속되고 있음을 믿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살아도 자신의 영혼이 항상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잊지 않은 것입니다. 그랬기에 다윗은 무너지지 않고 새롭게 힘을 낼 수 있었고 제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바른 길, 의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와서 쓴 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저는 순례길 마지막 날 숲을 지나가다가 진드기에 물려서 고생을 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너무 발이 가려워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보았더니 붉게 수포가 올라온 곳이 70 군데가 넘었습니다. 세게 긁은 곳에서는 물집이 터져 진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약국에 가서 바르는 약을 받아와 발랐습니다. 그 다음날은 몸에서 열까지 났습니다. 산티아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먹는 약을 처방받아 먹었습니다. 삼일 째에는 목 부위에도 새로운 발진이 생겨 임파선까지 부었습니다. 저는 임파선 결핵을 앓은 적이 있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800킬로미터를 걸으면서 정말 굉장한 경험들을 많이 했고 가슴 벅찬 일도 많았는데, 순례 끝에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순례를 마치고 큰 성취감에 빠지거나 우쭐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좀 낙심이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진드기들이 저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너, 800킬로미터 걸은 것, 그것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너 자신도 아무 것도 아니야. 너는 우리같이 작은 생물에 의해 죽을 수도 있어.”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순례길 걸은 것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 그리고 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어.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 안에 있어. 나는 계속 하나님 안에 있었고, 지금도 하나님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하나님의 안에 있을 거야. 나의 연약함까지 이미 하나님 안에 있는 거야. 나의 죽음도 하나님 안에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평온해지고 새로운 힘이 생겼습니다.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일들이 황량한 들판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버티고 서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상황들이 일상처럼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너무 괴로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베풀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이 우리를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자로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게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을 굳게 신뢰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힘으로 언제나 의의 길, 바른길을 걸어가는 우리 청파교우들과 믿음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