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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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둠은 계속되고
예수, 나심 좋을시고~. 청파교회의 성탄절 인사입니다. 우리 구주, 메시야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위로와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전쟁 많은 이 세계와 혼란 중인 이 나라와 신음하는 이 피조세계 위에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빛이신 주님이 찾아오셨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는 3년째 전쟁 중이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1년 3개월째 전쟁 중입니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전쟁은 휴전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지만 휴전 합의에 이르고 있지 못합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폭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20일에도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구 자발리아의 한 마을을 폭격했습니다. 그로인해 어린이 7명을 포함해 일가족 10 명이 숨졌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난민촌에 물공급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국제인권단체에 의하면, 전쟁 전 가자지구에 한 사람당 하루 83ℓ의 물이 공급되었으나 현재는 2~9ℓ의 물이 공급되고 있어 수 천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는 아주 비인도적인 범죄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가자지구의 환경오염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무너진 건물과 쓰레기더미에서 오폐수가 흘러나오고 비가 오면 아이들은 그 오염된 물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물자 공급이 안 되고 있는 가자 지구에서는 모든 생필품 가격이 비싼데 비누 한 장에 만 원이 넘습니다. 물도 부족하고 세제도 부족해 아이들을 잘 씻기지 못해 많은 아이가 피부병에 걸리고 있습니다. 1년 3개월 전쟁 기간 중 가자지구에서는 17,000명의 어린이들이 폭격과 질병으로 죽었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 예수님이 사셨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이라 더욱 안타깝습니다. 하루속히 그 땅 위에도 휴전과 평화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나라 또한 어둡습니다. 이 나라에 드리운 어둠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정황이 논란의 여지없이 이미 명확하게 드러났기에 수사와 재판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 있지 않습니다. 자기가 한 모든 일에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사람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모든 잘못을 부인하며 수사와 재판에 전혀 협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 안정을 위해 빠르게 수사와 재판을 진행시켜야 할 이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중요한 결정들을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어둠의 시간이 길어질까봐.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행여 공정하고 바른 결과에 이르지 못할까봐. 해외 언론들은 대한민국과 같이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한 나라에서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적인 일을 국민들이 나서서 상당히 빠른 시간에 바르게 정리해 나가는 것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와 안전 신뢰도는 많이 떨어졌습니다. 하루속히 이 혼란을 잘 정리해서 안정을 되찾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2. 빛이 사라지다
예수님은 어두운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9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빛’으로 체험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본 별은 그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실 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아니었습니다. 그 별은 예수님께서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살아가실 분임을 미리 알리는 표징이기도 했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은 빛으로 변화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옆에 모세와 엘리야 나타나더니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예언을 상징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율법과 예언이 한 인격 안에서 온전히 성취된 것을 본 것입니다. 말씀을 삶으로 이룬 사람에게서는 빛이 납니다.
예수님에서 빛을 본 사람들이 이스라엘 곳곳에서 몰려나왔습니다. 산상수훈을 말씀하셨던 갈릴리 호숫가의 언덕,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던 벳새다의 들판, 삭개오가 살던 여리고 마을 등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수 백 수 천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났고,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부르며 환호했습니다. 옷을 벗어 바닥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세자들은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나라와 민족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백성을 선동해 예수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누가 보아도 자기들의 자리와 권력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며 삶으로 그것을 온전히 이루는 사람을 통해서는 빛과 생명이 나오지만,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처럼 입으로는 대의명분을 말하지만 삶으로는 자기 욕망을 이루는 사람을 통해서는 어둠과 죽음이 나올 뿐입니다. 그 어둠과 죽음이 빛과 생명을 죽였습니다.
빛이 사라졌습니다. 빛이 있다가 사라지자 어둠은 더 짙은 어둠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마치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갈릴리에 물고기를 잡으러 간 것입니다. 글로바라는 제자와 다른 제자도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새로운 동행자를 만났습니다. 그 둘은 새로운 동행자에게 그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지도자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분에게 소망을 걸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시제가 다 과거형입니다. 그는 예언자였다. 우리는 그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다. 참으로 슬픈 과거형입니다. 과거에 예수는 빛이었는데 이제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3. 빛을 이어가는 사람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지내던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자기들을 해칠까 두려워 문을 닫아걸고 지냈습니다. 문을 닫아 건 어두운 다락방, 그 어두운 다락방은 빛을 잃은 제자들의 영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 50일 동안 계속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기도는 여러 말로 정의가 가능하겠습니다만, 여기서의 기도는 ‘예수님에 대한 끈질긴 기억’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억은 사실 위험한 기억이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잊어야 하는 기억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왜 잊을 수 없었습니까? 이미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참된 빛과 생명 - 죽음의 위협에도 잊을 수 없는 참된 빛과 생명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이전보다 한층 더 짙어진 어둠 속에서도 제자들은 끈질기게 예수님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끈질기게 기억하자, 끈질기게 기도하자 예수님 안에 있던 빛이 제자들에게 임했습니다.
요한복음 1:9의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참 빛이 있었다’, 과거형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현재형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 빛은 결코 과거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참 빛은 영원한 현재진행형입니다. 참 빛이 찾아오자 제자들은 바뀌었습니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참 빛이 하던 일을 이어갔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주린 사람을 먹이고,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냈습니다. 빛을 전해 받은 사람들은 같은 일을 합니다.
성탄절은 단순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 아닙니다. 성탄, 거룩한 탄생이 우리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날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속에서 빛이신 예수님이 되살아나야 하는 날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탄인 것입니다. 나라에 드리운 짙은 어둠에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안고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자 저마다 작은 불을 밝혔습니다. 형형색색 저마다 다른 모양 다른 색깔의 불을 밝혔지만, 그 불은 모두 어둠을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큰 빛의 강물을 이룬 빛들을 보니, 우울했던 마음은 뭉클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들은 다른 빛들과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그 빛은 1919년 3월 1일,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빛이었고, 1960년 4월 19일, 독재자의 하야를 외치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빛이었으며, 1980년 5월 18일, 비상계엄을 해제하라 외치던 사람들 마음속에 있던 빛이었습니다. 그 빛들은 모두 정의와 진리의 하나님으로부터 이어진 빛이었습니다.
이 세계와 이 나라 위에 드리운 어둠이 여전히 짙습니다. 우리에게도 참 빛이 필요합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 예수님에게 있던 빛이 우리들에게도 임하길, 제자들에게 전해졌던 빛이 우리들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또 하나의 빛이 되어 이 시대에 드리워진 어둠을 몰아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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