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재홍목사

마음에 새겨진 소리 (막1:9~13) / 김재홍 목사

새벽지기1 2025. 1. 9. 05:49

'그 무렵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께서 물 속에서 막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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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와 주현절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소망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신동엽 시인은 <새해 새 아침은>이란 시에서 새해 새 아침은 신년 첫 해가 산너머에서 떴다고 저절로 오는 것도 아니고, 달력이 바뀌었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대화와 우리들의 눈빛 속에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진정한 새로움이란 너와 내가 나누는 대화가 새롭게 바뀌어야 찾아오는 것이며,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찾아온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서로 너무 거친 말을 하며 살아왔고 차가운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제자리걸음을 할 뿐 더 나은 세상으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025년 새해에는 우리가 좀 더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하고 좀 더 서로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살아 이 세상을 새롭게 바꾸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충격이 쉬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희생자들과 유가족에 대한 모욕과 비하 발언 등이 온라인을 통해 적지 않게 나돌고 있습니다. 돈에 대한 이야기, 희생자를 희화화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차마 입으로 옮길 수 없는 말들입니다. 경찰이 수백 건을 삭제 차단했고, 그 정도가 심한 몇 건은 입건해서 수사 중이라고 합니다. 누구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차라리 자기가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고통인데,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한낱 놀이꺼리로 여기기도 합니다. 인간이 참으로 악합니다. 커다란 인명 피해로 온 국민이 슬퍼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금요일 불법비상계엄의 피의자는 수사를 거부하더니 체포에도 불응함으로 또 한 번 국민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법을 수호해야 할 사람이 법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것밖에 안 되는 나라였나, 한 사람으로 인해 나라가 이렇게까지 무너져야 하는가,라는 비통한 마음이 듭니다. 비상계엄 이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엄정한 법 집행으로 우리나라가 속히 안정을 되찾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일 1월 6일은 교회력으로 주현절입니다. 주님 주主에 나타날 현顯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주현절에 대한 이해가 교회 전통에 따라 좀 다릅니다. 서방교회에서는 동방에서 온 세 명의 박사가 처음으로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본 것을 기념하는 날로 지킵니다. 그에 반해 동방교회에서는 성년이 되신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당신의 모습을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내셨음을 기념하는 날로 지킵니다. 이날 서방교회에는 세 명의 동방박사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대단위의 악단과 함께 거리로 나와 퍼레이드하기도 합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주님의 세례일 행사를 크게 치릅니다. 추운 겨울날, 영하 20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호수나 저수지에 얼음을 깨고 들어가 머리끝까지 물속에 세 번 담구고 나옵니다. 남녀노소 많은 이들이 참가합니다.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을 기념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새해를 맞아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세례 받으신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믿음을 바르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세례를 받아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그 나라를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폭력적 지배와 유대교의 율법적 지배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은 마른 땅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셨고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 또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사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과 함께 요단강에 들어가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머리에 손을 올렸고 예수님은 머리끝까지 요단강에 담그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속에서 막 올라오시는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께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이런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공식적인 등장에 아주 어울리는 멘트입니다. 그전부터 이런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행해지는 세례식 때도 이 멘트가 세례 받는 이에게 선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아가라는 의미에서.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곧바로 광야로 내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을 계셨는데, 악마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가복음은 시험의 내용을 말하지 않았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따르면 그 시험은 다음의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로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둘째,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셋째, 나에게 엎드려 절하면 이 세상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네게 주겠다. 악마가 예수님을 시험한 세 가지의 유혹에 담긴 의미도 중요합니다만, 악마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앞에 붙인 말 또한 중요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것 해 봐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저것 해봐라.” 악마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해 주신 소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지우고 싶어했습니다. 악마는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새겨 주신 소리를 지우고,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배고프면 먹고 싶어하는 연약한 인간이다. 너는 높은 곳에 서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너는 많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하는 욕심 많은 인간이다.”라는 소리를 예수님 스스로 자기의 내면에 새기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1:13절 하반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따르면,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악마의 시험을 모두 이기신 후의 장면입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다고 말했습니다. ‘들짐승들’, 복수형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에 사는 들짐승들은 종류가 많습니다. 이리, 표범, 사자, 들소, 사슴, 산양 등등.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는 예수님의 모습은 에덴동산에서 온갖 짐승들과 함께 지냈던 아담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내다보았던 하나님 나라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동산에서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고 했습니다.(사11:6) 곧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광야 같은 세상을 에덴동산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실 것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3. 마음에 새겨진 소리


그런데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의 시험을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이었을까요? 성경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악마를 물리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시험을 이길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 외에도 다른 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시험 받는 동안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연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것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님께 들려주신 소리와 그 소리가 만든 정체성이었습니다. ‘내가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파도, 내가 높은 곳에 서지 못해도, 내가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지 못해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신다는 사실은 결코 변치 않는다.’ 그 소리와 그 소리가 만든 정체성이 악마의 시험을 물리치게 만든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들려주신 소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라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만 들려주신 소리로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소리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시는 소리로 생각하셨습니다. 아니,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하는 소리로 생각하셨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것은 로마와 유대교였습니다. 로마는 정치적으로 지배했고, 유대교는 종교적으로 지배했습니다. 로마가 보았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금의 수입원과 노동력일 뿐이었습니다. 유대교가 보았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리 율법을 가르쳐주어도 잘 지키지 못하는 죄인이자 율법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렁이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마디로, 사람 취급 받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당신과 똑같이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참 좋아하시는 자녀들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에 의해 소모품 취급받고 유대교에 의해 죄인 취급받던 이들을 찾아가 당신이 하나님께 들었던 소리를 전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참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소리를 말로 들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사랑함으로,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심으로, 그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그들이 마음으로 그 소리를 듣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광야 같이 척박하고 황량한 세상을 다시 에덴동산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가신 방법은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들려주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라는 소리와 그 소리로 만든 정체성을 그 어떤 유혹과 시련에도 흔들림 없이 붙들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세상이 부여한 그릇된 정체성에 짓눌려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당신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참 좋아하십니다.”라를 소리를 말이 아닌 삶으로 전해주어 그들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 그 두 가지가 광야와 같은 세상을 에덴으로 바꾸는 방법이었습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희생자들과 유가족을 모욕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깊게 애도하고 있습니다. 전국 100여 곳에 합동 분향소가 마련되었고 15만 명 이상이 조문을 하였습니다. 저도 어제 서울시청 분향소에 가서 조문을 하고 왔습니다. 참사는 슬픈 일이었지만 길게 줄을 서 조문하는 분들을 향해서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뉴스를 통해 깊은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유족들에게 작은 도움과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휴가를 내거나 월차를 써서 직접 무안공항까지 내려가 봉사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루에 봉사자가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유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이들, 임시 거처가 된 공간을 청소하는 이들, 건강 상담을 해 주는 이들.. 몇몇 봉사자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가족 같아서” “뭐라도 위해서 하고 싶었어요” 유가족 대표단은 사고 이후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고 지내지만, 아픔을 함께 해주시는 국민 여러분의 마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전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동엽 시인의 말처럼 새로운 날은 새해가 왔다고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뀌어야 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전히 광야에 가깝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광야 같은 세상을 에덴과 하나님 나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부여하려는 그릇된 정체성을 지우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소리, “너는 나의 자녀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답게, 하나님이 참 좋아하시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만 향한 소리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을 향한 소리임을 깨닫고 척박하고 거친 광야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다가가 말이 아닌 삶으로 그들 또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광야는 에덴과 하나님의 나라로 바뀔 것이고, 진정한 새날은 올 것입니다. 2025년 새해에 그 귀한 일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청파의 교우들과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