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성탄은 믿음의 용기를 요구한다.(마태복음 1:18~25) / 이재훈 목사

새벽지기1 2024. 12. 28. 05:03
성탄절에 자주 잊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입니다. 크리스마스카드에도 마리아는 항상 등장하고,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은 자주 등장하는데 요셉과 예수님은 아직 못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탄생에서 귀한 믿음으로 통로가 된 사람입니다. 성탄의 사건에서 요셉이 보여준 믿음과 그 믿음으로 그가 감당했던 역할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인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존조차 할 수 없는 매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 육신의 아버지의 보호와 돌봄 없이 마리아가 혼자 예수님을 양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예수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초점을 두고, <마태복음>은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 육신의 아버지 요셉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소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17절까지 족보가 나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족보를 통해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등 구약 곳곳에 족보가 등장합니다. 당시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에게 족보는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나 변화를 알리는 중요한 기능을 했습니다. 족보를 통해 소개되는 인물이 누구인지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11절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소개하는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자손과 땅을 주시고, 열방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강력한 통치와 견고한 왕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합하면 하나님 나라의 약속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하나님 나라의 영토, 하나님 나라의 주권을 이루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되 육신의 아버지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인 요셉을 통해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목수였습니다. 왕의 후손이면서 목수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왕권이 몰락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후손이었던 요셉 가문은 아마 바벨론 포로 기간부터 목수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나사렛에 목수들이 많이 필요해서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요셉은 목수였을 뿐만 아니라 회당에서 열심히 히브리어를 배워서 성경을 읽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람어는 당시 생활 언어였기 때문에 당연히 했을 것이고, 어쩌면 헬라어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이 언어들을 사용하시는 것으로 보아 어릴 적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
“마리마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19절).
이 표현은 요셉이 가정과 일터, 신앙의 모든 영역에서 올바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의로운 요셉이 자신과 정혼한 마리아가 동거하기 전에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요? 마리아가 천사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계시대로 아기가 잉태된 것을 느꼈을 때 요셉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말을 들은 요셉이 세 가지를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어서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첫째,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하는 마리아의 말을 믿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시는 젊은 남녀가 자유롭게 교제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친밀하게 알고 결혼하기보다 잘 알지 못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둘째, 처녀가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했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셋째, 그것이 다 믿어진다 해도 왜 나와 마리아에게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직접 계시를 듣고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겠지만, 요셉은 마리아의 말을 믿어야 하고, 그 모든 상황에서 요구되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정혼한 관계에 있는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게 했을까요? 정혼이라는 독특한 유대 문화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의 결혼 문화에는 공식적인 부부가 되기 전에 정혼 혹은 약혼이라고 부르는 1년을 보냅니다. 이 기간을 보내고 공식적인 결혼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시대 약혼보다 훨씬 강한 법적 구속력을 가집니다. 이 기간에는 남편과 아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기간에 파혼하려면 이혼과 동일한 절차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함께 살지는 않습니다. 이 시대에는 없는 문화입니다. 정혼한 상태에서 자녀를 가지게 되면 적법하게 결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인정받는 법적 보호를 받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수치와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구약의 모든 예언에서 처녀에게서 태어남과 동시에 다윗의 법적 후손으로 오시며,  적법한 자녀의 신분을 얻고, 육신 부모의 보호를 받는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려고 정혼이라는 독특한 관계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임신한 것이 나타났을 때 파혼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율법에 근거하면 정혼한 상태에서 부정한 관계를 맺은 여인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수치스러운 일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만일 요셉이 마리아를 버리면 공개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고, 묵인하고 혼인하면 그가 수치를 당하며 살게 됩니다. 처음에는 요셉이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마리아를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마리아가 위험해 질수 있어서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서 나타납니다. 만일 그가 신중하지 못하고, 쉽게 분노하고, 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면 마리아와 예수님 모두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매우 신중했고,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마리아를 사랑하고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순종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할 때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라. 마리아가 가진 아기는 성령으로 임신된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가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다’”(20~21절).
요셉에게도 동일한 계시가 주어졌습니다. 꿈을 통해 주어진 계시이기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종하는 훈련이 안됐더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였고, 마리아가 받은 계시와 동일한 계시임을 확인했습니다.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순종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받았던 감정적인 아픔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용기 있게 마리아를 받아들였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받아들임으로 일어난 성탄은 그에게 믿음의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요셉이 수치를 당하는 일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조차 마리아를 믿을 수 없었는데, 누가 두 사람이 받은 계시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모든 수치와 불명예, 비난을 받아들일 것을 용기 있게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한 이후 요셉이 또 꿈을 꿨을 때 헤롯을 피해 도망하라고 했습니다. 짙은 새벽에 가족을 끌고 애굽으로 가서 2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요셉이 꿈꾸던 결혼 생활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성탄은 믿음의 용기를 요구
 
예수님의 탄생이 이루어질 때 요셉에게 요구되었던 믿음의 용기가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도 요구됩니다. 예수님 오심은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살던 이들에게 예수님이 주인 된 삶으로 나오라는 믿음의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왕으로 군림하던 삶에서 예수님이 왕이심을 고백하는 삶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휩쓸리는 삶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때때로 요셉이 받았던 오해와 조롱, 수치와 불명예를 당할 때 믿음의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받았을 때 아무리 큰 희생이 요구된다 할지라도 따르는 믿음의 용기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탄은 믿음의 용기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계시된 것을 따를 수 있는 힘이 바로 믿음의 용기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그저 우리가 즐거운 문화생활을 즐기라고, 기분 전환하라고, 역사의 한 의미 있는 사건이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에 성탄의 시간에 믿음의 결단을 다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고, 역사의 주인이시고, 심판자이시고, 다시 오실 주님이심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용기로 성탄을 맞이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