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여호와의 열정 (사 9:1~7) / 이재훈 목사

새벽지기1 2024. 12. 13. 04:33
세상의 어떤 사람도 예고되어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출생은 오랜 역사 속에 예언된 출생입니다. 예수님만이 역사 속에 많은 예언을 통해 오래전부터 준비된 출생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시기 오래전부터 역사에 큰 영향력을 미치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전체가 그분의 출생을 준비하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한 시대 이르러서는 매우 뚜렷하고 분명하게 예수님의 출생에 대한 예언이 나타납니다. 그때는 다윗 왕국이 무너져 가는 가장 어두웠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치적, 사회적, 경제 군사적으로 가장 어두운 절망의 시대를 겪고 있었던 때입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에게 사해 서쪽 일부를 제외하고 점령당했던 시대입니다. 가장 풍부하고, 영광스러웠던 지역이 앗시리아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짓밟히고, 모욕과 고통을 당하는 시대에 예수님의 오심이 예언되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둠은 이제 사라졌다. 전에는 그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모욕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셨지만, 이후로는 바닷길과 요단 강 저편의 땅과 이방 사람들이 사는 갈릴리를 영광스럽게 하셨다. 어둠 속에서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 위에 빛이 비쳤다”(1~2절). 
가장 어두운 역사적 상황에서 가장 밝고 기쁜 소식이 전해집니다. 가장 모욕당하고 있는 지역에 가장 영광스러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출생에 대한 예언, 곧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은 여러 시대, 여러 상황에서 주어졌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장 절망적일 때 하나님이 희망과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예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첫 예언은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인간의 타락 직후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이가 사단의 머리를 부숨으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예언부터 모든 상황이 가장 절망적인 시대에 희망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를 통해 이루실 놀라운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어둠이 사라지고, 모욕을 당한 땅이 영광스럽게 되고, 어둠 속을 걷던 백성들이 큰 빛을 보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춰진다는 예언입니다. 가장 큰 모욕을 당한 갈릴리 땅을 영광스럽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고, 가장 많은 사역을 한 지역이 갈릴리라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최후의 일주일을 보내시는 여정이었을 뿐입니다. 잠시 방문한 것이고,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성탄, 죽음의 땅에 생명이 임한 사건
“예수께서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의 호숫가가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그곳에 사셨습니다. 이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여, 호수로 가는 길목, 요단 강 건너편, 이방 사람의 갈릴리여, 어둠 가운데 살고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 그때부터 예수께서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 4:13~17).
<이사야> 9장에서 말씀하신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이방 사람의 갈릴리’라고 일컫는 지역에서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사역을 위해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 지역에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언을 통해 오셨을 뿐만 아니라 구약에 나타난 메시아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 가장 큰 모욕을 당한 갈릴리 지역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갈릴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빛을 비추어 주셨고, 그 땅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고통 속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죽음의 땅이었던 그곳을 생명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들에게만 큰 빛을 비춰주시는 것일까요? 갈릴리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들을 보십시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에도 고통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어둠 속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어둠은 죄를 의미합니다. 죄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이 어둠 속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죽음의 그림자의 드리워져 있습니다. 갈릴리는 죄와 죽음과 고통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을 대표하는 한 지역입니다. 예수님은 고통과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세상에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성탄은 어두운 세상에 빛이 임하고, 모욕의 땅에 영광이 임하고, 죽음의 땅에 생명이 임한 사건입니다. 어둠에 임한 빛과 함께 더불어 오는 것이 기쁨입니다. 큰 빛이 임했을 때 큰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어둠과 고통, 절망에 빛을 비추고
기쁨을 가져다줄 한 아이가 태어났다”
“주께서 이 백성을 번성케 하셨고 기쁨을 키워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추수할 때 기뻐하고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이 그들이 주 앞에서 기뻐합니다”(3절). 
밝은 빛, 큰 빛과 더불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게 큰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빛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기에 거룩한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설명할 때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추수할 때의 기쁨’과 ‘전쟁에서 승리하며 전리품을 나눌 때 누리는 기쁨’입니다. 하나는 농부가 누리는 기쁨이고, 또 하나는 군사가 누리는 기쁨입니다. 농부의 기쁨은 눈물로 씨를 뿌리며 인내로 열매를 기다리는 고된 수고 이후 찾아오는 기쁨입니다. 병사의 기쁨은 전리품을 얻는 기쁨입니다. 전리품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생명을 거는 싸움에서 승리를 얻은 이후에야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농부의 수고와 고난, 생명을 걸고 싸우는 군사의 헌신 이후에 오는 기쁨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주어지는 이유는 예수님이 고난과 희생으로 얻은 승리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영적 추수를 바라보며 고난 받으시는 수고와 영적 승리를 바라보며 십자가로 사단과 싸워 이기신 승리를 우리에게 선물로 나눠 주셨습니다. 
“한 아이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의 어깨는 주권이 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이다”(6절).
한글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6절이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을 보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렇게 고통과 어둠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추수의 기쁨과 승리의 기쁨이 올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입니다. 그 아이는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는 아이요, 어둔 세상에 기쁨을 주는 아이입니다. “한 아이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태어난 한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동시에 한 아들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사야>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이미 일어난 사건처럼 완료된 것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구약 예언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정말 확실한 일을 설명할 때 이루어진 것으로, 완료된 것으로 시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의 어둠과 고통과 절망에 빛을 비추고 기쁨을 가져다줄 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의 출생은 한 가정이나 한 사회의 관심 정도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아야 할 출생입니다. 가장 연약한 존재로 세상에 오신 그 아기가 어둠에서 빛이 되고,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입니다. 모든 사람의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가 보여 주신 겸손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연약한 아기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기로 오시지 않았더라면 태어날 때부터 고통당하는 아기들을 대신하는 메시아가 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실 때 아담을 창조 하실 때처럼 성인을 보내실 수도 있었을 텐데 아기로 보내셨습니다. 한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겪는 고통마저 담당하실 수 있는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서, 출생 때부터 상처받고 고통 받는 영혼을 구속하시는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아이의 네 가지 이름
6절을 보면 이 아이의 이름 네 가지를 소개합니다. 이 아이의 신성을 소개하는 이름입니다. 그 아이는 존귀하고 지극히 높으신 능력을 가진 분입니다. 첫 번째 이름은 기묘자, 모사입니다. 두 단어를 분리하기도 하고, 한 단어로 보기도 합니다. 이 단어는 ‘놀라움’, ‘경의’, ‘기적적인’ 의미를 표현합니다. 영어로는 ‘원더풀 카운슬러(wonderful counselor)’라고 합니다. 그분은 가장 경이로운 지혜를 가지셨고, 놀라운 안내자이시고, 상담자이시고, 인도자입니다. 그분은 아이로 세상에 오셨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겪는 모든 고통에 대하여 안내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인생의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놀라운 지혜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두 번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만물은 우연히 생긴 게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물의 근원이신 그분이 만물의 일부가 되셨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세 번째 이름은 ‘영원하신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라 함은 그분이 우리의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돌보시고, 보호하시고, 양육하신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 양육을 책임지고, 공급하고, 돌보고, 보호하듯이 영원하신 아버지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이 우리 가운데 주어졌습니다. 때로 우리가 고난 속에서 두려워할 때 영원하신 아버지가 돌봄과 보호자가 되심을 말씀합니다.
네 번째 이름은 ‘평화의 왕’입니다. 통치하심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힘과 무기가 있어야 평화가 지켜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리적인 힘을 의지하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강으로 다스리는 분입니다.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평화가 깨진 원인인 죄를 십자가로 해결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주신 분입니다. 그분의 통치는 공평과 정의입니다. 
“그분의 넘치는 주권과 평화는 다윗의 보좌와 그의 왕국 위에 끝없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견고히 세우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정이 이것을 이루실 것이다”(7절). 
그분의 통치하심은 공평과 정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공평과 정의로 통치한 왕은 다윗 왕입니다. 그러나 그 또한 죄인이었기에 온전한 공평과 정의의 통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한 아이는 공평과 정의로 온전히 통치하시고, 영원히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제국은 언제나 소멸합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연약한 이들을 지배하고 학대했던 나라들은 붕괴했습니다. 앗시리아 제국, 바벨론 제국,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 등 세계 역사는 제국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과 물리력을 의지하는 통치는 모두 무너집니다. 그러나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시는 그분의 통치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근원입니다. 영원하신 아버지, 우리를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그 분이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그 중간에 기묘자, 모사가 되십니다. 놀랍고 경이로운 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끄시며,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한 아이로 오셨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원하신 아버지요. 평화의 왕위를 가지고 계신 놀랍고 경이로운 분입니다. 세상의 구원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통치자로 그분의 나라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7절에서 “만군의 여호와와의 열정이 이것을 이루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열정으로 구약의 역사 속에서 예수님 오심을 예언하셨고, 그 열정으로 그분이 오시도록 역사하셨고, 그 열정으로 지금도  전능하신 아버지, 영원하신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평화의 왕이신 그분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이뤄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 나라를 위해 존재합니다. 교회는 때로 쇠퇴할지 모르지만, 그분의 나라는 결코 쇠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성탄은 여호와의 열정이 이루신 그분의 나라가 임한 사건입니다. 예수가 오심으로 이루어진 나라, 그분의 통치가 계속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기뻐하면서 성탄을 맞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