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 연재 글의 마지막이오. 그대가 좀 지루해 할 것 같아서 일단 접겠소. 제목이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었소. 대답이라고 하지 않고 질문이라고 했소. 우리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오. 대답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소. 이런 말이 그대에게 심감 있게 전달되는지 모르겠소. 한국교회 신자들은 뭔가 딱 부러진 대답들을 원하오. “믿는 대로 될지어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오. “십일조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이 만 배로 갚아주십니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는 설마 하면서도 “아멘”으로 맞장구를 치면서 그렇게 믿고 싶어 하오.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시오. 아무리 선의라고 하더라도 속임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는 결국 자기도 모르게 세뇌되고 말 거요.
하나님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다는 말은 아주 명백한 것이오. 그대는 생명이 무엇인지 대답할 수 있겠소? 우리는 그것을 모르오. 의학전문가도, 생물학자도, 물리학자도 그것을 모르오. 지금 우리가 살아있지만 살아있다는 사실이 무엇인지 모르오. 이상하지 않소? 생명현상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생명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오. 어떤 이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먹고 마시고 사는 것이 생명이 아니냐, 하고 생각할 거요. 그것으로 모든 질문이 끝난 것은 아니오.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삶에 참된 만족이 없는지, 스피노자와 하이데거 식으로 말해서 왜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하고 무(無)는 없는지, 민들레와 우리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지, 왜 남자와 여자로 존재하는지 등등, 질문은 끝이 없소. 이 중에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소. 이런 질문의 과정을 통해서 생명의 깊이로 들어갈 것이오.
그대가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쉬운 대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질문하는 걸 배우시오. 성경도 질문하는 식으로 읽으시오. 질문이 그냥 되는 건 아니오. 아는 게 있어야 질문도 가능하오. 그런 질문하는 과정에서 그대는 우리를 늘 초월하지만 우리의 삶과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것이오.(2010년 12월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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