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하나님이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세우신다고 말하오. 죽음이 없는 영생의 세계요. 성서가 말하는 영생이 도대체 무엇이오?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하게 산다는 말에 실감이 가오? 어제 묵상에서 영생은 곧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소. 죽음을 전제할 때가 삶이 의미가 있다는 뜻이오. 의미는 무슨 의미, 그냥 오래, 아니 영원히 살았으면 무조건 좋겠다고 생각하시오? 오래 전에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소. 어떤 사람이 신으로부터 영생의 선물을 받았소. 세월이 흘러 자기가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이 죽었지만 자기만은 늙어가면서도 계속 살아남았소. 처음에는 그것이 축복인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신에게 죽음을 달라고 호소하는 이야기요.
천국, 또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은 무한정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오. 그런 시간은 삶을 무화시키오. 삶의 질을 파괴하는 거요. 성서가 말하는 영생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런 시간에 의한 생명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생명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한 신앙적 메타포요. 성서가 그런 세계를 말하는 이유는 지금의 생명형식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오. 지금의 생명형식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뜻이오. 우리가 모두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확증하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길 거요.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가 왜 불완전하냐고 말이오. 성서는 그 대답을 죄에서 찾소. 죄로 인해서 창조의 선함이 파손되었다고 말이오. 그 죄의 결과로 죽음이 우리의 실존이 되었다고 말이오. 이 문제는 보충설명이 필요하나 지금은 줄이겠소.
영생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실증적으로 설명할 수 없소. 이렇게 말하는 게 좋겠소. 영생은 하나님과의 일치라고 말이오. 하나님과의 일치에서 이 땅의 제한적인 삶을 넘어설 수 있소. 그게 성서의 가르침이오. 그래서 성서는 줄기차게 하나님의 임재(parusia)를 외치고 있소. 그것 말고는 죽음의 숙명을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오. 이런 말이 ‘공자 왈’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소. (2010년 11월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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