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죽음(3)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7. 26. 06:05

    나는 1953년 1월4일 생이오. 그대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나에게도 스무 살 시절이 있었소. 아, 스무 살의 청년 시절이라! 더 어린 시절도 있었소. 부분적으로 기억이 나오. 나의 사춘기와 청년 시절이라고 해봐야 거의 교회에서 보냈기에 뭐 특별한 것은 없소. 그래도 기분은 다른 청년들과 다를 게 없었소. 여자 청년들에 대한 호기심도 똑같이 많았소. 헷세, 루이제린저, 전혜린, 릴케, 도스토예프스키, 에릭 프롬 등의 책을 밤새워 읽던 시절이오. 그 시절이 꿈결처럼 지나갔소. 그리고 지금 이렇게 옛 추억의 그림자를 (아주) 간혹 기억하는 나이가 되어버렸소.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그 시절이 쏜살같이 내 앞에 당도했소. 그대도 마찬가지요. 나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늙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에 좀 놀랄 거요. 나는 젊은이들을 별로 부러워하지 않소. 그 젊음이라는 것도 구름과 같기 때문이오.

 

     지금 나는 천천히, 또는 쏜살같이 세월의 화살을 타고 날아가오. 아직 늙어간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지만 실감과는 상관없이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오. 요즘은 움직이다가 벽 모서리에 부딪쳐도 몸의 중심 자체가 흔들리오. 테니스 운동 중에도 숨이 찰 때가 많소. 그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고 있소. 아마 살만큼 살았다는, 그래서 늙어간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소.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염려하지는 마시오. 늙는다는 사실을 애처롭게 생각하는 게 아니오. 낙엽이 결국 나무에서 떨어져야 하는 것처럼 늙는다는 것은 생명의 순리요. 늙는다는 게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뿐이오. 늙음의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오. 신앙적인 관점으로 말하면,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고 궁극적인 생명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오. 궁극적인 생명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지금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소. 그걸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소. 그것은 하나님의 배타적인 사건에 속하오. 그 세계는 우리에게 올 뿐이지 우리가 그 세계를 만들 수가 없소. 그 세계에 참여하는 길은 단 하나요. 기다림이오. 참된 기다림은 이전의 것을 버리거나 최소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오. 제 정신으로 살려면 현실과 꿈을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나도 이제 지금까지의 삶을 앞으로 올 궁극적인 생명의 세계와 혼동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소. 아직 젊은 그대여, 죽음을 기억하면서 잘 살아보시오.(2010년 11월1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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