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오늘 하루도 잘 살았소? 뭘 했소? 학생이면 학교에 나가 공부했을 거고, 선생이면 학생들을 가르쳤을 거요. 나처럼 목사면 심방을 하든지 교회 청소를 했을지 모르겠구려. 나도 젊은 목사 시절에 교회 청소를 많이 했소. 혼자 작은 교회를 맡다보니 청소는 물론이고, 교회 봉고차를 운전할 때가 많았소. 그대가 노동자면 오늘 하루 땀을 많이 흘렸을 거요. 전업 주부면 걸레 빨고, 빨래하고, 밥과 반찬 만들기, 아이들 돌보기,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을 거요. 혹시나 빈둥대며 하루를 보낸 건 아니오? 그것도 쉽지는 않은 노릇이오.
이 모든 게 한 순간이오. 오늘 하루만 한 순간이 아니라 우리의 평생이 한 순간이오. 옛 어른들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소. 번갯불을 본 적이 있소? 하늘 꼭대기에서 저 땅바닥까지 한 순간에 번쩍하고 전기를 보내오. 한 순간이오. 우리의 삶의 그와 다를 게 없소. 젊었을 때는 이런 말을 들어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거요. 시간이라는 게 참으로 신기해서, 지난 뒤에야 그 실체를 실감할 수 있소. 그걸 미리 절절하게 느끼고 사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하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영원하게 살 것처럼 잘난 척하기도 하오.
이 한 순간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우리는 여기에 손을 댈 수가 없소. 엄청난 힘이 여기에 개입되어 있는 것 같소. 마치 빅뱅을 우리가 손 댈 수 없는 것과 같소. 그런 힘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오.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고, 깊은 허무에 빠지기도 하오.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오. 우리의 한 평생이 한 순간이기 때문에 허무한 것은 결코 아니오. 한 순간이기 때문에 더 값진 것이오. 한 순간이 영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을 놓치지 마시오. 그대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이것을 잘 알고 있을 거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해도 시간의 신비만은 알고 있을 거요. 순간은 전체 시간인 영원과 깊이 연결되어 있소. 순간이 없으면 영원도 없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다면 결국 영원에도 충실한 거요. 순간에 집착하지는 말아야하지만, 순간에 소홀하지도 말아야 하오. 이 순간을 통해서만 우리는 영원에 참여하게 될 거요. 오늘 하루, 참으로 수고가 많았소. (2010년 11월9일, 화, 하양 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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