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종교개혁 493주년(7)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7. 23. 07:25

     마틴 루터가 제시한 중요한 신학 개념 중의 하나는 ‘만인제사장직’이오. 이것은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분명하오. 사제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사장이라는 뜻이오. 당시에 이건 혁명적인 주장이오.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신부만이 제사장이오. 죄의 용서도 신부를 통해서만 가능하오. 신부만 하나님께 미사를 집전할 수 있소. 신부가 없는 교회는 교회도 아니고 신부가 없는 미사는 미사도 아니오. 신부 없는 성당을 공소라고 하고, 신부 없이 드리는 미사를 공소예절이라고 하오.

 

     개신교 신자들은 로마가톨릭의 이런 제도를 성직자 중심주의라고 비판하오. 성직자와 일반 신자를 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보고 있으니, 비판할 만하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해 못할 것도 없소. 개신교도 명색만 만인제사장 제도를 말하지 내용적으로 성직자 중심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오. 당회의 교권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을 거요. 집사도 장립집사와 서리집사로 나누오. 한국교인들이 직분을 꽤나 좋아한다는 증거요.

 

     로마가톨릭교회는 철저하게 성직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소. 요즘 나는 중구난방으로 돌아가는 개신교회의 당회 중심주의, 또는 회중중심주의보다는 성직자 중심주의가 오히려 교회가 크게 잘못되는 걸 막는 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오. 실제로 헌신할 준비가 된 성직자들이라고 한다면 교회의 본질을 최선으로 추구할 것이오. 성직자들이 신학과 영성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통해서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는 걸 전제하는 거요.

 

     지금 한국의 실정만 놓고 본다면 로마가톨릭교회가 개신교회보다 전반적으로 더 건강하오. 그 내용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소. 한 가지만 말하겠소. 로마가톨릭교회는 개교회끼리 경쟁하지 않소. 교회의 보편성이 확보되어 있소. 교구 전체가 바로 교회인 거요. 지금 개신교회는 개교회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소. 교회가 크기만 하면 무서운 게 없소. 개신교회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오. 로마가톨릭교회는 제도적으로 그게 불가능하오. 마틴 루터도 지금 한국의 개신교회를 예상하지는 못했을 거요. 한국교회가 이렇게 개교회 이기주의로 흘러간 것에 대한 교회사적인 근거를 설명해야하는데, 지금은 힘들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하겠소.

 

     만인제사장직을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하게 제사장이니 목사도 필요 없다는 식이오. 좋은 뜻이겠지만, 목사도 자기 먹을 것을 자기가 벌어먹으면서 교회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소. 이게 말이 되겠소? 이게 가능한 일이오? 이런 방식으로 성서를 가르칠 수 있으며, 설교를 할 수 있으며, 고도의 영적 훈련을 할 수 있겠소? 주경야독의 자세로 못할 것도 없지만, 그것은 결국 목회와 설교의 전문성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오. 이런 오해는 모두 목사들의 자업자득이오.(2010년 11월5일,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