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가끔이라도 과학에 관한 책을 읽소?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교회 봉사에 바빠서 과학 서적에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건 불행한 일이오. 과학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을 모른 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예 말이 되지 않소.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그 대상이야말로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오. 태양, 지구, 은하계, 그리고 지구와 우주에서 벌어지는 물리 화학적인 현상과 생물학적인 현상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들이오. 그런 것을 모르고 우리가 어찌 창조의 하나님을 안다고,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소. 과학을 도외시하고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말한다는 것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소. 물론 지금도 무당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운명을 주술에다 맡기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기독교 신앙을 그런 차원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남아있을 수는 있소. 그러나 세상과 역사의 중심에서 살아가기 원한다면 과학을 피할 수 없소.
기독교의 입장에서 과학은 위기이면서 기회요. 위기라는 말은 과학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뜻이오. 지난날 신의 행위였다고 본 많은 것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설명되고 있소. 성서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고대인들은 질병을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했소. 문둥병은 천형이었소. 이제 의학이 질병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소. 신의 역할이 줄어든 거요. 진화론은 이제 과학적 사실의 초보에 속하오. 진화론이 생명 현상을 완벽하게 해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화론 없이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은 분명하오. 앞으로 기독교의 고유한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영혼의 문제도 과학이 설명할 날이 오지 말란 법은 없소.
그렇지만 그대는 너무 실망하거나 걱정하지 마시오. 과학이 근본적으로 반기독교적인 것은 아니오. 과학자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명할 뿐이오. 일부러 기독교를 공격하지는 않소. 문제는 우리가 과학을 선입견 없이 공정하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소.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창했을 때 기독교는 과학을 공정하게 대하지 않았소. 종교 재판에 처했소. 공정하게 대한다는 것은 과학을 과학의 언어로 이해해주는 것이오. 과학을 종교의 언어로 재단하는 것이 불공정한 태도요. 지동설과 진화론으로 기독교가 해체되지 않은 것처럼, 당연한 말이지만, 앞으로 그 어떤 과학적인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기독교가 해체되지는 않소. 기독교가 과학에 대해서 공정한 태도를 취하고, 신학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과학은 기독교의 진리성을 확대하는데 오히려 기회를 제공할 거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내일 이야기 하겠소. (2010년 10월2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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