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주기도(6)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6. 21. 06:12

     세계 교회가 모두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소. 기도한다는 것은 거기에 우리의 영혼을 담는 신앙행위요. 그 기도의 내용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이기도 하오. 잘 보시오. 우리 아버지를 함께 부른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형제라는 말이오. 도대체 형제라는 것은 무슨 뜻이겠소? 우리가 보통 교회에서도 형제, 자매라는 말을 흔하게 하니, 묻는 말이오. 이런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소. 실제로 마음은 형제와 자매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입만 나불거리는 것 같소.

 

     기독교 역사에는 이런 형제관계를 현실로 담아내려는 노력이 꾸준히 제시되었소. 소위 공동체 운동이오. 지금도 잘 알려진 브루더호프라는 공동체를 그대도 알고 있을 거요. 창시자는 에버하르트 아놀드는 이 운동을 독일에서 시작했지만 1930년 대 말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옮겼소. 지금은 세계적으로 미국에 6 곳, 영국에 2 곳, 호주에 1 곳의 공동체가 활동하고 있다 하오. 각각의 공동체는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방식에 따라서 사유재산 없이 공동의 삶을 누리고 있소. 헨리 나우엔은 브루터호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소.

 

     “브루더호프의 글들은 제자도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 안에서 체득한 경험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우리는 이런 공동체 안에서 연단되고 정화된다. 용서와 치유의 모든 것을 배우는 곳은 바로 공동체이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배우는 곳이 공동체이다. 공동체야말로 참된 사랑의 학교이다. 아놀드는 그의 전 생애를 공동체에서 생활하였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공동체의 필요와 그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복음 속의 그리스도를 만나는 곳이 다름 아닌 공동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Henry J.M.Nouwen)

 

     가장 원초적인 공동체는 수도원이라 할 수 있소. 수도원과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차이는 가족을 허용하는가에 달려 있을 거요. 수도원의 구성원들은 모두 독신 수도사들이지만, 브루더호프 구성원들은 가족이오. 그들은 일단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그 이외의 모든 육체적인 탐욕을 멀리한다는 특징이 있소. 건강이 허락되는 한 모든 이들은 노동을 하오. 그리고 경건생활을 규칙적으로 하오. 이런 공동체에는 어떤 다툼이 있을 수 없소. 명실상부하게 형제 관계로 살아갈 수 있을 거요.

 

     그대는 공동체 생활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시오? 일단 커피, 술 등의 기호식품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할 것이오. 소유로 삶을 확인하던 사람들도 이런 공동체 생활은 불가능하오. 그런 습관 말고도 공동체가 어려운 이유는 부지기수요. 한국에서 여려 공동체가 있었지만 수도원이나 수녀원처럼 수사들이 구성원이 아닌 일반적 공동체는 거의 실패했소. 그럴 수밖에 없소이다. 일단 성격 차이를 뛰어넘기가 힘드오. 이런 공동체의 기초는 가족이오. 가족을 꾸리는 것도 쉽지 않소. ‘적과의 동침’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부부도 결혼이라는 강제적인 틀로만 겨우 지탱될 수 있소. 그렇다면 출가한 수도자들이나 그에 버금갈 정도로 종교적인 훈련이 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실제적인 공동체 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 되오. (2010년 7월25일, 주일, 높은 구름, 낮은 구름, 그리고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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