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 나라(24)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25. 05:53

그대는 성령집회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오? 주로 은사 중심의 집회를 가리키오. 안수 기도를 통해서 불치병이 낫는다거나, 장애가 치료된다고 하오. 신유집회로 불리오. 이런 전통은 초기 기독교로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현상이 심한 것 같소. 이런 일에는 주로 평신도 지도자들이 앞장선다는 게 특이하오. 아무개 권사가 수십 년 전부터 한창 이름을 떨치더니 지금은 손 아무개 장로가 대타로 나섰소. 이런 현상은 이미 기존 교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소. 이는 마치 무당이 치병 굿을 하듯이 성령을 치병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작태라 할 수 있소.

 

     전문적인 신유집회에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통전적으로 새롭게 하고 구원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불신하는 것도 잘못이오. 성령은 생명의 영이오. 그렇다면 우리의 병든 몸을 고치는 분도 성령이라고 말해야 옳소. 의사와 약이 인간의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오. 그들은 기술적으로 도울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성령이 고친다오. 어떤 면에서는 성령이 면역능력과 비슷한 것처럼 보일 거요. 그럴지도 모르오. 성령과 면역능력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해명할 필요도 있소. 의학이 말하는 면역능력과 성령의 차이는 기계적인가, 역동적인가에 있소. 생명은 기술로 재단될 수 없을 정도로 심층적이라오. 성령만이 생명을 가능하게 한다오. 어쨌든지 그대에게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이거요. 병이 들었으면 기도하시오. 성령의 도움을 구하시오. 정신적인 병이든지 육체적인 병이든지 병은 죽이는 힘이고, 성령은 살리는 힘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오. 아래 인용하는 판넨베르크 선생의 글을 천천히 읽어보시구려.

 

     성령의 신적 존엄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은 성령이 인간에 의해서 조종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기도와 기타의 조작을 이용하려고 하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영의 임재가 생명의 모든 차원에 대해서 치유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격적 성숙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면 안 된다. 교회에는 성령의 임재가 억압당하는 일이 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참으로 인간적인 삶의 충만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수십 번의 설교보다 훨씬 더 많은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