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한 교회의 기능은 두 가지이다. 첫째, 교회는 정치 기구나 그 대표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궁극적이고 인간적인 중요성을 확보한다는 주장을 못하게 한다. 교회는 국가 권력에 대해서 그 지배의 잠정적 성격을 좀더 현실적으로 승인하도록 압박한다. 교회는 정치적 신화들을 탈신화화 하는 과제와, 자기의 권력 소유에 도취해 있는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과제를 지닌다. 둘째, 교회는 제 2의 극적인 방법으로 그 기능을 수행한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날 인류의 미래적 성취를 증언함으로써 교회는 사회 실천에 대한 상상력을 환기시키고 사회 변혁에 대한 비전을 고취하는데 도움을 준다. 인류에게 미래가 있는지를 많은 지식인들이 의심하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는 더욱 끈질기고 설득력 있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만 한다.'(119)
오늘 하루를 마감하며 그대에게 안부 인사를 드리오. 오늘 하루도 잘 사셨소? 그대가 오늘 하루 마신 공기는 얼마나 되는 거요? 오늘 하루 그대는 무엇을 보았고, 무슨 소리를 들었소? 그대가 쏟아낸 말은 얼마나 되는 거요.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오.
위에 인용한 글은 판넨베르크 선생의 것이오. 지금 그대에게 계속해서 그의 글을 소개하고 있소. 오늘은 열아홉 번째구려. 우리가 기억해 둬야 할 내용이오. 오늘날은 정치 과잉 시대요. 모든 뉴스가 정치와 연관되어 있소. 그런 탓에 정치권력을 가진 이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소. 정치적인 문제와 정치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별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시대가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소. 그런 꿈의 실현은 아마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불가능할 거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시대를 위해서 우리가 투쟁하는 수밖에 없소이다. 위 글은 그런 투쟁의 길을 안내하고 있소.
정치권력의 잠정성을 교회가 지적해야 하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소. 오늘 교회는 오히려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소. 정치가 곧 구원인 것처럼 착각한다는 말이오. 복지가 구원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소. 교회는 정치와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선전하는 국가나 이념과 투쟁해야 하오. 이를 위해서 성서가 말하는 종말론적 상상력을 알아야 하오. 예컨대 남북이 적대심으로 대치하지 않는 세상을 우리가 미리 외쳐야 한다는 말이오. 어떤 교회 지도자들은 ‘레드콤플레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소. 그에게는 종말론적 상상력이 궁핍한 거요. 그런 상태에서 교회는 세상에서 예언자적 역할을 할 수 없소. 이런 일이 어디 남북문제에 한정되겠소. 지천으로 널려 있아오. 하나님 나라의 미래에 대한 꿈을 꾸어보시구려.(2010년 4월6일, 화요일, 가까운 기사식당에서 촌국수를 맛있게 먹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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