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소망할 수 있는 원천이 있습니까?
내일이 없는 사람은 삶이 매우 불행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단지 사는 것이 개인적인 풍요와 평안뿐이라면 내일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는 오늘보다 나은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삶의 이유가 단지 평안과 부요에 있다면 노동하는 것은 가치가 없어집니다. 노동은 의미가 아니라 기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노동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간섭없이 혼자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게 됩니다. 노동이 의미를 상실하면 삶은 매우 무의미하게 흘러갑니다. 공부하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삶을 관조하는 것도 쓸데없는 일입니다. 창조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도 부질없는 일입니다.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산다는 것이 중요하고, 내일을 소망하는 것이 의미 있다는 사실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모든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전제가 삶을 의미 있게 할 수 있고,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전제는 우주가 하나님의 창조로 이뤄졌음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다른 어떤 말로도 하나님을 이처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받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으로 지으심은 인간이 비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인격적 존재임을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진화론자들이 말하듯이 어느 순간에 유인원 가운데 한 종인 사피엔스가 인지 혁명을 일으켜서 문화를 만들고, 언어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인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격적 물질만 존재합니다. 그러나 언제 인지 혁명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긴 시간 속에서 우연한 가운데 비인격체들이 사람이 되었고 문화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우주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우연을 기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내일을 희망하는 것은 너무나 거대한 도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연의 연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기반을 상실하였거나, 아예 기반이 없는 이들은 항상 우연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살아갑니다. 과학은 절대적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같은 답을 찾는 일입니다. 2 ⨯ 2는 항상 4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우연이 들어가면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과학이라 말하면서 우연을 추종하며 살아갑니다.
내일 올지 안 올지를 우연과 통계에 맡긴다면 어떻게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겠습니까? 또한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내일은 결코 희망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상당수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심각한 질병에 빠져 있음을 봅니다.
질병에서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있습니다. 현대인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진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처방을 생각해야 합니다. 삶의 의미가 분명할수록 내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내일이 소망이 있으려면 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인격적 존재입니다.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이 사람에게 심겨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서로 다른 곳에 살아도 종교를 갖는 것은 신의식이 심겨있기 때문입니다. 그 의식이 복음을 들을 때 발현됩니다. 그러기에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심겨진 신의식이 나타나고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이들은 삶의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유일한 위로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는 것이 인간의 본질임을 깨닫습니다, 비로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함이 나타납니다. 여기에 내일을 소망할 수 있는 원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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