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막14:59)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를 모함하는 이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지적합니다. 그것이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미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불가사의입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으로도 안 되는 것이고, 로마의 법으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법의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그 법은 칼과 같아서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정의를 세우기도 하지만 허물기도 합니다.
김두식 경북대학교 로스쿨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에는 법조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판검사와 변호사들이 법을 두고 경쟁을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한 가족처럼 똘똘 뭉쳐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브로커들과 기자들도 한 몫 가세합니다. 법조계에서 벌어지는 관행과 문화가 문제라고 합니다. 신성가족의 일원이 되면 그들끼리의 리그가 펼쳐집니다. 예컨대 부장 판사였던 분이 변호사가 되면 지난날 배석으로 가르쳤던 판사들 앞에서 여전히 선배 판사처럼 행동한다고 합니다. 전관예우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검사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분위기에서는 법이 엄정하게 집행될 수 없습니다.
법이 중요하긴 하지만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정의롭지 않으면 결국 정의를 세울 수 없습니다. 판검사 선발과 교육과정에서 인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중요하게 취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 삶에 대한 심층적 인식과 경험인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등에 대한 공부를 통해서 법실증주의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 의해서 불법적으로 일어난 전형적인 사건입니다. 합법을 가장한 불법의 역사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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