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대제사장 관저에서(7)

새벽지기1 2024. 3. 4. 05:44

'어떤 사람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하여 이르되'(막14:57)

 

사람들이 왜 거짓으로 증언할까요? 그 이유는 가지각색이겠지요. 어제의 묵상에서 말씀드린 대로 친분에 따라서, 또는 금전적 이익에 따라서 거짓으로 증언합니다. 그런 증언은 악입니다. 그렇다면 선의의 거짓 증언은 어떨까요? 사람이 살다보면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는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기독교 윤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규범윤리이고, 다른 하나는 상황윤리입니다. 규범 윤리는 무조건 규범에 따라야 행동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성서의 모든 윤리는 기본적으로 규범적입니다. 십계명은 무엇을 ‘하라’와 ‘하지 말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성서가 거짓말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고 하면 신자들은 무조건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상황윤리는 규범윤리의 한계에서 시작됩니다. 히틀러의 나치가 유대인들을 색출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유대인을 숨겨주고 있는 집에 게슈타포가 들이닥쳐서 집주인에게 유대인들이 이 집에 숨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주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규범윤리에 따라서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요, 아니면 없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 또 하나의 다른 윤리 개념인 메타-윤리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단순히 인간 행위에 대한 가치론적 판단인 윤리 너머(meta-ethics)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 너머는 곧 임박한 하나님 나라, 그의 통치, 또는 생명이겠지요.

 

우리도 언젠가 한두 번은 증언을 했거나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법정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일어납니다. 교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묘한 방식으로 자기를 합리화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예수를 쳐서 거짓으로 증언하던 사람도 자기가 하는 행위가 어떤 사태인지 몰랐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