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

역사를 바라보는 성경적 세계관 / 신동식목사

새벽지기1 2024. 2. 11. 05:04

역사를 바라보는 성경적 세계관

 

세계관은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만들어 냅니다.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삶, 복음이 증거하는 삶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성경적 세계관도 적용의 측면에서 시대와 나라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분단의 경험이 있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다인종 국가와 단일 민족 국가, 자본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국가, 왕권 국가와 독재 국가, 물론 종교의 중심성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도교, 카톨릭과 개신교 가운데 어떤 종교를 중심로 하는지에 따라서 적용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순결하게 성경적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온전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적 세계관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바로 상황적 세계관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적 세계관을 말해도 서로 다른 지형에 머물 수 있습니다. 자신은 성경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주장하지만 서로 같은 답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성경을 근거로 말하는 사람들이 다투고 의가 상하는 이유입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지만 실제는 이러한 모습이 비일비재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성경이 나의 생각의 근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권위도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그리스도인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원으로 돌아가면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어려움이 생깁니다. 속상하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성경관에 대한 차이와 해석에 대한 이해로 인하여 같은 상황에 다르게 적용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서로 다른 세계관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는 향하여 좌파, 우파라는 말을 하는 것은 성경의 어떤 근거에서 말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이 정한 기준을 신학적 비판 없이 받아들인 역사의 산물입니다.

 

일례로 가나안 성도라는 말도 사회학적 용어를 신학적 반성없이 받아들인 용어입니다. 사회학적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학교수들도 비평 없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사회학적 의미에서도 가나안 성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온라인 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이해를 신학적 반성 없이 받아들일 때 혼란이 옵니다.

 

정치적 이념은 사회학적 이해입니다. 그런데 아무 반성없이 사용하면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누가 좌파이고, 우파입니까? 예수님 좌우편에 해달라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찾으시겠습니까? 참으로 우스운 꼴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시대를 이끌어갈 때는 이러한 논쟁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교회를 이끌어 갈 때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독일 나치 시대의 독일 루터교회였습니다.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이 교회를 이끌자,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게르만족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릅니다.

 

성경은 하나님 중심과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우상숭배는 이 땅의 정치적 이념이 어떠하든지 관계없이 심판받습니다. 그래서 인본주의가 죄악입니다. 인본주의 선언은 대놓고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존 듀이와 같은 도구주의 철학자들이 현대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을 추구하였고, 그것이 현대 교육의 이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현대 교육의 피해자들입니다. 하나님 없이 생각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학에 사로잡혔습니다. 성경적 세계관을 말하지만, 사회학적 세계관으로 적용합니다.

 

이것은 역사를 바라볼 때도 동일합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역사를 아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역사가를 의지합니다. E.H 카는 역사는 역사가의 기록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서운 말입니다. 역사가의 세계관이 역사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결국 기록된 역사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준비와 세계관이 역사를 해석하게 합니다.

 

그러나 전제로 생각하였듯이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기준을 통하여 역사를 관통하는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인가? 사람 중심인가?입니다. 그러면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 관점에서 모두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동식 목사, 문설연 대표/빛과소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