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피론의 돼지 이야기’를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입니다’ 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6세기 르네상스 철학자인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 철학자 ‘피론’의 이야기가 소개합니다.
그리스 철학자 피론은 여행 중 사나운 폭풍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파도가 배를 몰아치자 두려워 허둥지둥했습니다. 피론 자신도 피할 방법을 찾지 못해 당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도 유일하게 평정심을 잃지 않고 평화롭게 잠자고 있는 존재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돼지입니다.
피론은 이를 가리키며 “현자는 언제나 이 새끼 돼지와 같은 흐트러짐이 없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디 이것이 쉬울까요? 몽테뉴는 이 사실을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수상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이성이 있는 것은 우리를 고문하기 위해서라고 감히 말해도 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지식을 얻게 되어, 오히려 그것을 얻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평정과 안식을 잃게 된다면, 그리고 그 지식이란 것이 우리의 처지를 피론의 돼지보다 더 열악하게 만든다면, 지식이란 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앎이 무지(無智)보다 못한 때, 지식은 오히려 해악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지식 문명이 가져다 준 앎이란 때로는 근심과 걱정의 근원이 될 수 있고,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에 대한 지식은 늘어나지만, ‘진리’에 대한 지식은 외면하면서,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악을 적게 행하고 선을 많이 행하며 살 수 있는가에 관한 지식은 적어집니다. 인간의 지식은 점점 더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앎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지식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지혜와 행복과는 무관하게 오히려 인생을 고통스럽고 추악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예지(叡智)는 아닙니다. 예지는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이 가장 필요한 지식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지식 가운데 최고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역사의 태초부터 인생을 주장하고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것이 우리가 습득해야 할 최고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형식적인 제사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호세아서 6장 6절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6:6)
여기서의 ‘앎’은 마치 부부가 서로를 깊이 경험하듯이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것,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살아 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벧후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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