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의 아들 (막 1:1)

새벽지기1 2023. 2. 28. 06:10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로부터 복음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우리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하게 만듭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성서의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하는 헬라 신화의 여러 신들처럼 자식을 두었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이 말을 예수님의 초월적 능력의 근거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그 진술들이 곧 ‘해석’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해석했다는 뜻입니다. 신약성서 공동체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여러 방식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서에는 예수님에 대한 칭호가 많습니다. 메시아, 퀴리오스, 다윗의 후손, 재림주, 인자, 외아들 등등, 많은 칭호가 때로는 겹치기도 하고 때로는 단독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에게서 전혀 새로운 구원을 경험한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그 당시 전승되던 칭호를 통해서 이 예수님을 해명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마가의 해석은 어떻게 나온 걸까요?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이미 구약성서에도 나옵니다. 약간 간접적인 표현이지만 시편 2:7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스라엘의 왕이 즉위할 때 이런 시편이 합창대에 의해 불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구약의 전통에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되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했다는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런 진술의 핵심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경험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진술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할까요? 혹시 여성신학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닐까요? 아들이 뭐냐, 딸이라고 하자. 예수님이 생물학적으로 남자이기 때문에 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하자. 대충 이렇게 나오면 저로서는 할 말이 궁합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영지주의자들과 비슷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진술에서 예수님의 인간성을 부정할 수도 있겠군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 인간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나오면 성서를 바르게 읽는 게 아닙니다. 성서와 기독교 전통은 예수님의 인간성을 축소하기 위해서 이런 호칭을 받아들인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메시아로 경험되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경험에 대한 여러 표현 중에서 하나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무슨 일이 발생했기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까요? 그들의 경험이 오늘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나요? 이 질문은 다시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군요.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게 중요합니다. 무조건 믿는다거나, 단순하게 교리를 외우는 것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 자체에 우리의 영혼을 쏟아야 합니다. 그럴 때만 우리의 삶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곧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 1:1)  (0) 2023.02.28
<예수 그리스도>(막 1:1)  (0) 2023.02.28
언어장애(막 7:32)  (0) 2023.02.27
다시 갈릴리 호수로!(막 7:31)  (0) 2023.02.27
귀신이 나갔더라.(막 7:29)  (0) 2023.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