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권능의 역동성 (막 6:5)

새벽지기1 2022. 11. 26. 07:10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막 6:5)

예수님은 고향에서 아무런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다고 합니다. 몇몇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셨다는 보도가 뒤따르는 걸 보면 권능을 완전히 행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은 예수님의 권능이 발휘될 수 없었던 곳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향의 비극이겠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권능이 기계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을 때 그의 권능은 그들에게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권능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이것은 무한이나 한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권능의 역동성을 가리킵니다. 이 역동성은 기계론과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도 그렇습니다. 그는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었지만 기계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역동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아름다운 피조물입니다. 이 역동성이 타락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다시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땅에 보내는 은총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완전하다면 왜 인간의 역사가 왜 이렇게 복잡하냐,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무력한 상태로 내놓았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역동적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그의 권능이 인간에 의해서 처분된 사건인데, 이는 곧 그에게는 무력이 곧 능력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빌 2장에서 언급된 ‘케노시스’ 신학입니다. 그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고향에서 푸대접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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