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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이레의 기한 (단 9:20-27)

새벽지기1 2022. 11. 21. 07:05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단 9:24) 

다니엘이 회개의 기도를 할 즈음에 하나님은 이미 가브리엘을 통하여 대답을 준비하셨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어짐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기브리엘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환상과 다른 종말의 환상을 알려줍니다.

가브리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70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다는 말씀입니다. 70이레는 이레가 7년으로 생각한다면 490년입니다. 물론 성경은 이레가 7년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단지 일레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7년으로 생각합니다. 이렇듯 490년이 지나면 허물이 그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고 환상과 예언이 성취되고,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을 것입니다(24절). 다니엘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가브리엘은 70 이레 즉 490년 동안 예루살렘의 중건하라는 영을 받을 때라고 말합니다. 이때가 언제인지 분분합니다. 여기서 예루살렘 중건은 두 개의 시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의 중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에스라 1:2절에 기록된 고레스 왕의 명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느헤미야 시대(느2;1-8)의 아닥스다 왕의 조서로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는 시점으로도 봅니다. 이렇게 볼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를 일곱 이레(7☓7)로 봅니다. 이렇게 첫 번째 기간에 기름 부음 받은 왕 즉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 일곱이레 동안 성읍이 재건됩니다.

그리고 두번째 기간인 62이레 434년이 지날 것입니다. 62이레 후에는 기름 부음 받은 왕이 끊어집니다. 메시야가 십자가 상에서 죽으심으로 예루살렘과 헤어집니다(마23;38). 그리고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것입니다. 이때에는 홍수에 휩쓸림 같이 성읍이 사라지고, 끝까지 전쟁이 있어서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를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헤롯성전이 파괴되는 해인 A.D 70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디도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완전히 황폐하게 되고, 성전은 파괴됩니다(마24:15).

그런 후에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 언약을 굳게 맺습니다(마 26:28).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순종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이레의 절반 즉 3년 6개월 동안에 포악하고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입니다. 즉 적그리스도의 발악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리에 쏟아질 것입니다. 이 말은 주님 재림하시기전까지의 교회 시대가 감당할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계 12:2-3,13:5).

가브리엘로부터 다니엘이 받은 이 환상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넘어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고 정한 때에 이뤄질 종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일반 역사를 넘어서 구속의 완성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다니엘이 이 놀라운 말씀은 신약 시대에 놀랍게 증거되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예수님이 나심을 살펴보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율법에 능통하였던 시므온과 경건한 여인 안나가 주님 오심을 기대하다가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의 말씀을 인용하여 고난의 시기를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은 약속의 말씀을 확신함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의지하는 성도가 영광을 봅니다. 교회만 왔다가 가는 자는 결코 그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말씀이 심장에 박혀있을 때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기대하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는 종말의 시간은 반드시 지나갑니다. 그리고 영광의 날이 다가옵니다. 고난을 잠시이지만, 영광은 영원합니다. 이 믿음을 잘 간직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