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이 세상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불의한 인간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건져주시고, 의롭다 하심으로 우리를 전혀 새로운 존재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었던 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의로워 진 내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인간들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새 창조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통하여 어떻게 사람들이 새롭게 되고, 어떻게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지를 의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한 새로운 변화와 구원에 의문을 갖기 전에 이 세상이 어떻게 죄와 죽음으로 가득하게 되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초대교회 교부 성 크리소스톰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어떻게 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세상이 구원받은 일이 가능한가라고 묻는다면 그에게 ‘ 어떻게 한 불순종한 인간 아담을 통해서 세상 전체가 저주받는 일이 가능했는가?’ 라고 질문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여러분,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위기에 몰아넣었고 전 세계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단 한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전 세계로 퍼진 것이 가능하다면 죄의 바이러스 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세상 가운데 죄가 퍼져있고, 죄로 인하여 세상이 망가진 것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이 세상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도 한 사람으로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인류의 조상 아담의 죄와 불순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순종이 온 세상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죄가 우리의 죄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또 죄로 인해 죽음이 들어온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롬 5:12). 이 말씀에는 3단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들어왔다’ 는 것은 죄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일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는 외부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 창조의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지 않았다면 죄가 없었을 것입니다. 반역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기계적인 존재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 판단하고, 심지어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하나님과 자유의지를 통해서 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배반이 없는 기계적인 상 태의 인간이 아닙니다. 배반할 가능성이 있지만, 인격적인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인간을 원하셨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선하신 능력을 조금도 위협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타락을 해결할 능력이 없으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 의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아담이 죄가 세상에 들어온 통로가 된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말씀은 창세기에 나타난 타락의 역사, 에덴동산의 역사, 창세기 3장 역사가 실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타락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매우 의도적인 불순종입니다. 그들의 인격적인 판단, 결심, 과정이 있는 불순종입니다. 타락의 순서대로 말하면 하와가 먼저고 아담이 두 번째지만, 여기서 한 사람을 아담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누가 타락의 책임이 있고 대표성을 가지는지를 의미합니다. 모든 인류의 대표성은 아담에게 있습니다. 지음 받은 순서의 책임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둘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 습니다. 죄가 세상에 사망이 들어오도록 하는 문이 된 것입니다. 죽음은 죄를 따라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죽음은 최고의 법이요, 권력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담과 하와 이후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죽음이 존재하고 왕 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한 즉시 죽지 않았습니다. 900년대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이미 죽었습 니다. 하나님이 영적인 죽음과 육체의 죽음을 분리한 이유는 우리에게 구원의 계시를 주시고, 타락한 인간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죽음으로부터 회복되고 구원받을 길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셋째,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고,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 또한 모두에게 이르렀습니다. 역사적으로 ‘ 이와 같이’ 라는 단어를 정반대로 해석합니다. 첫째, 아담이 죄를 지은 것처럼 죄를 지음으로써 인간이 죄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방이라는 것입니다. 원죄를 부인합니다. 아담처럼 죄를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원죄를 부인하고, 죄를 짓는 사람도 있지만, 죄를 짓지 않으므로 외롭게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원죄를 부인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둘째,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은 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는 곧 우리의 죄이며, 아담 안에서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했던 아담 안에 있던 죄의 DNA가 모든 인간에게 전염된 상태로 태어납니다. 아담의 죄가 우리의 죄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주신 명령은 아담을 통하여 태어날 모든 인간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아담에게 주신 모든 약속은 후손 들과 함께 맺은 것이므로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린 것은 모든 후손이 깨뜨린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됐을 뿐만 아니라 아담이 범한 죄의 대표성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죄의 전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5번이나 아담의 죄가 우리에 게 미치는 영향을 강조합니다. 15절에 보면 “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 16절 “심판은 한 사람으로 인해 정죄에 이르렀으나”, 17절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죽음이 바로 그 한 사람을 통해 왕 노릇 했다면”, 18절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처럼”, 19절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처럼”이라고 반복하면서 한 사람의 죄와 불순 종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정죄와 심판에 이르 렀다고 말씀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와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죄의 근본은 인류의 조상이 한 사건, 한 불순종, 한 범죄 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오늘 본문에는 ‘ 또 다른 한 분’ 의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친 영향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5절 후반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주어지는 선물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넘쳤습니다.” 17절 후반 부에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 안에 서 왕 노릇 할 것입니다.” 18절 후반부에 “한 분의 의로운 행동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19 절 후반부에 “한 분의 순종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 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일어난 죄와 죽음과 심판의 결과와 또 다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와 생명의 선물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사는 아담의 범죄와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주어지는 선물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넘쳤습니다. 또한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인해 생긴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심판은 한 사람으로 인해 정죄에 이르렀으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사는 많은 범죄로 인해 의롭다 하심에 이르게 됩니다”(15~16절).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와 사망의 세상에 들어와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한 분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이십니다. 아담은 종의 역할을 거부했지만, 그리스도는 종의 자세를 취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처럼 되기를 추구함으로 범죄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아담은 자신을 높였으나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아담은 죽기까지 불순종했으나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하셨 습니다. 아담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정죄와 심판을 받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왕 노릇을 하는 통로가 된 아담과는 달리 그리스도는 의인들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을 하는 통로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의 범죄가 가져온 결과를 완전히 뒤집는 결과를 가져오는 의의 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담은 ‘ 오실 자의 모형’ 입니다. 예수님에게 또 다른 별명은 ‘ 둘째 아담’ 이라고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표현했습니다. 아담의 죄는 모든 사람에게 정죄와 심판을 가져왔지만,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은 모든 사 람에게 의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한 사람의 범죄 행위에 의존되어 죄와 죽음에 결속된 것처럼,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의 행위에 의존되어 의와 생명에 결속된다”는 진리가 성립됩니다. 우리 모두 아담 한 사람의 범죄 행위에 의존되어 태어날 때 부터 죄인이며, 죽음의 그늘 아래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망의 그림자 속에 살고,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은혜의 행위에 의존되어 의롭게 될 뿐만 아니라 생명이 결속되어 살아갑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의 현실은 죽음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은 삶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여러분, 죄와 죽음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와 생명입니다. 새로운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죽음이 지배하지 않아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이라고 하려면 죄가 해결되고, 죽음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죽음은 죄가 가져온 것이고, 죄는 인간이 문을 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간이 새로워져야 하고, 죄를 이길 수 있어야 하고,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이긴 생명을 통해 우리를 생명의 왕 노릇을 하는 세상으로 이끄십니다. 이 세상에는 죽음을 이긴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죽음을 이기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았지만, 죽음을 이긴 생명은 아닙니다. 나사로처럼 잠시 죽었다가 소생한 사람은 있지만,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이긴 생명은 인간의 생명 가운데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형체를 입어 죽기까지 낮아지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로운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의 생명이 우리에게 죽음을 이기는 생명으로 전달되는 것입 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님은 죽음을 이기는 생명을 전달해 주는 배달자 역할을 하십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시는 자들에게 죽음을 이긴 생명을 배달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의와 생명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담의 몸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류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와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났고, 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입니다.
인류의 인구가 약 80억 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인류는 두 사람 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입니다. 아담에게 속한 사람들과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청교도 신학자 토마 굿윈은 “하나님의 면전에서는 두 사람만 있다.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허리끈에 매달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두 종류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죄와 죽음이 왕 노릇을 하는 공동체가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생명이 왕 노릇을 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담의 몸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옮겨지는 것입니 다. 소속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새로운 공동체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상, 새 하늘 과 새 땅에 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에 속한 아담 의 몸으로는 결코 그 세상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된 자들이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을 덧입은 자들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이 죄와 죽음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통치하는 세상으로 옮겨졌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꼭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습니다.“은혜는 언제나 주지만, 죄는 언제나 빼앗는다”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빼앗고, 그 가족 간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하나님과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빼앗았고, 평화를 빼앗았습니다. 죄와 죽음은 수없이 많은 것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언제나 줍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죽음이 바로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왕 노릇 했다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도록 받는 사람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율법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 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습니다”(17절, 20절). 하나님의 은혜는 죄가 가져간 것을 정확하게 보상하는 게 아닙니다. 더욱 넘치는 것입니다. 죄가 없을 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누렸던 관계보다 은혜를 받은 자들이 더 깊이 하나님을 깊이 알고, 하나님을 더 찬양하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은혜의 구원은 타락 이전의 상태로 복귀시키는 차원이 아닙니다. 더욱 넘치는 것입니다. 타락 이전의 아담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해 구속받은 이들은 타락 이전에 아담이 몰랐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은혜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죄의 무서움을 알고, 영향력을 알고, 불순종의 대가를 알기에 은혜와 생명이 왕 노릇을 하는 세상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백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죄가 죽음 안에서 왕 노릇 한 것처럼 은혜도 의로 인해 왕 노릇 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인해 영생에 이르 게 하려는 것입니다”(21절). 아담 안에서 영원히 죽은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담은 죄와 죽음을 세상에 갖고 왔지만,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의와 생명을 세상에 가지고 오셨습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 세상이 망가졌지만, 한 분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변화시키십니다. 이 시대는 아담에 속한 자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함께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고 전하는 것은 아담에게 속한 자들을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 로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면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아담에게 속한 이들을 하나님께로 옮겨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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