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은 다윗의 고백입니다. 표제에 ‘다윗의 마스길’이라고 되어 있는데, ‘마스길’은 지혜의 가르침 또는 묵상에 초첨을 맞춘 찬양시입니다. 이 시편은 ‘회개시편’ 중 하나인데, 회개한 후에 경험한 용서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회개시편들(6, 38, 51, 102, 130, 142편)과 차별성을 가집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이 가장 복된 일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1-2절). 인간이 짓는 모든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1절)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진실하게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해 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경험한 사람의 기쁨과 행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구절에서 우리는 바울의 복음의 메아리를 듣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죄 없다는 선고를 받는 것 즉 칭의의 은혜는 오직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 경험한 고통을 솔직하게 묘사합니다. 이것도 역시 다윗 자신이 뼈저리게 경험 했던 일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죄책을 마음에 품고 살 때 그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뼈가 녹아 내리는 것과 같았고 혀는 가뭄에 풀이 마르는 것처럼 말라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3-4절).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다”(4절)는 말은 실제로 하나님이 그렇게 했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이 그렇게 느꼈다는 뜻입니다. 죄책을 안고 사는 것은 영적으로 질식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 하였고,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5절).
6절부터 다윗은 믿는 이들에게 말합니다.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 자신처럼 기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6절).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주 고난을 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고난 가운데서 경건한 사람이 할 일은 기도로써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윗 자신도 그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을 자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은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합니다.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7절).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의 길을 인도하고 친히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8절). 또한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9절).
마지막으로 다윗은 악한 자에게는 고통이 많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넘친다고 결론을 짓습니다(10절). 그러므로 하나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11절). “의인들”, “정직한 사람들”(11절), “경건한 사람”(6절)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10절)은 모두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때로 고통을 당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경험적 고백인 것입니다.
묵상: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결코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둘 다 죄인입니다. 다만 자신의 참 모습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죄인이면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의식’ 혹은 ‘자기의'(self-righteousness)라고 부릅니다. 그것을 다윗은 마음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간 것이라고 봅니다(2절).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미혹하여 스스로 의인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의식은 죄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죄입니다. 회개의 가능성을 뿌리부터 잘라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자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하셨습니다.
5절에서 다윗은 죄를 의미하는 세 개의 히브리어를 모두 사용합니다. 첫째는 “잘못”(개역개정 “허물”)으로 번역된 ‘하타트’입니다. 이 단어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는 것에 죄를 비유합니다. 둘째는 “죄”로 번역된 ‘페샤’로서 구부러지거나 뒤틀린 것에 죄를 비유합니다. 셋째는 “죄악”으로 번역된 ‘아본’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구체적인 행동을 가리킵니다. 죄란 우선적으로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빗나가 있고 뒤틀려 있는 존재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존재 상태가 왜곡 되면 눈빛과 말과 행동으로 죄악을 행합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이와 같은 자신의 존재 상태에 눈 뜨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너져 회개하고, 깨어진 마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회개의 눈물을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셔서 용서해 주십니다. 자신의 죄성을 자각 하고도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회개 하기를 미루는 것은 스스로의 영적 숨통을 조이는 일입니다. 반면,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그 모든 것을 쏟아 놓고 용서를 받으면, 묵직했던 존재가 새의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환한 빛이 내리쪼이는 것을 경험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잡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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