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은 내용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1-6절)은 피조 세계에 대한 묵상입니다. 한 화가의 성품과 마음이 그가 그린 그림 안에 반영되는 법입니다. 그것처럼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과 신비와 위엄을 말 없이 드러냅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 보아도, 눈을 내려 작은 들꽃을 들여다 보아도, 우리는 창조자의 영광과 신비와 위엄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에 함몰된 바람에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눈 어두워졌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를 잊고 삽니다. 열린 마음으로 피조 세계를 관조한다면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간다”(4절)는 고백에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으로 넘어갑니다(7-11절). 하나님은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해 놓고 멀리 퇴각하여 팔짱을 끼고 지켜 보고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의 형상을 닮아 창조한 인간과 소통 하면서 당신의 창조 사역을 이어 가십니다. 여기서 다윗은 “교훈”, “증거”(7절), “계명”(8절), “말씀”, “법규”(9절) 등의 여러 용어를 사용합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람들이 사용하던 모든 용어들을 망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입니다. 그 말씀은 “완전하고 참되며”(7절) “정직하고 순수하며”(8절) “맑고 견고”(9절)합니다. 그렇기에 그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충분한 안내자가 됩니다. 말씀의 맛을 맛보고 나면 그것 없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10절). 이렇듯 우리는 피조 세계를 관조함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과 위엄을 깨닫고, 말씀을 묵상함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묵상에 기초하여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12-14절). 피조 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그리고 말씀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대면하고 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죄성을 자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마치 거대한 MRI 기계 앞에 서 있는 듯,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이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감찰하시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순간 자신은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미쳐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깨끗하게 씻어 주십시오”(12절)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죄의 손아귀에 다시는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13절)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고 나서야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때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변호 하기도 했습니다만,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고 나니 진상을 알겠습니다. 그 자신의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때에야 나는 온전하게 되어서, 모든 끔찍한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13절)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드릴 최고의 기도를 드립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14절).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라는 번역보다는 개역개정의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번역이 더 좋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입술의 말도 하나님께 올리는 제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묵상: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인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계시”(revelation)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이 보여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 보여주시는 것조차도 충분히 깨닫지 못합니다.
신학자들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구분합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드러난 것이 일반계시입니다. 다윗이 1절부터 6절까지에서 고백한 것이 하나님의 일반계시에 대한 것입니가.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마음의 눈을 열고 보면 피조세계 안에서 창조주의 모습을 봅니다. 사진사는 사진 속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이 있다는 말은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사진의 수준을 보면 사진 찍은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인지 아니면 사진 작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피조세계는 창조주가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피조세계의 아름다움과 조화와 신비는 창조주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알게 합니다.
특별계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셔서 당신의 뜻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때가 찼을 때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셔서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특별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만들어낸 전통에 불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일부 광신도들의 전유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은 그분의 뜻을 보여주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품을 보여 줍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모두 보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 있음을 압니다. 예배 드릴 때 혹은 기도할 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늘 하나님 앞에 있음을 압니다. 그렇기에 마음의 생각과 입술의 말까지도 하나님께 올리는 제물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전임 예배자'(full time worshipper)로 살아갑니다.
'좋은 말씀 > -사귐의 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1편: 왕을 위한 감사의 기도 (0) | 2021.12.25 |
---|---|
시편 20편: 기름 부음을 받은 이 (0) | 2021.12.24 |
시편 18편: 성공과 번영 중에 드리는 기도 (0) | 2021.12.22 |
시편 17편: 주님과 함께 하는 삶 (0) | 2021.12.21 |
시편 16편: 가장 빛나는 유산 (0) | 2021.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