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오락가락하시는 하나님

새벽지기1 2021. 5. 23. 07:03

예언서를 읽다보면 혼돈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경고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희망 찬 약속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런가 하고 읽다 보면 다시는 소망을 찾을 수 없는 절망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호1:5-6, 9)

그러시다가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호 1:7, 10-11)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무지 어느 말씀이 사실인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러시는 것일까요?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방종이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하나님께서 이에 대한 조치로 달래기도 하시고 징계하기도 하십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자 마지막으로 예언자를 택하여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를 전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래서 위로와 소망의 약속을 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은, 아들을 감옥에 보낸 어머니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읽어 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출발부터 두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신 11:29) 그리심 산은 통상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던 산이라 생각합니다. 에발 산은 ‘민둥산’이란 뜻으로 그리심 산과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산을 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과 저주를 상기하며 언제나 올바른 선택으로 그 삶이 풍성해지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주를 피하고 복을 누리는 길을 제시합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을 따르면 저주를 받을지라.”(신 11:27-28) ‘듣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샤마’는 ‘깊이 자각하고 이해하고’ 나아가서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 제단 곁에 아세라 상을 세우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지으신 분인 것을 심각하게 생각지 못하고, 번영과 풍요를 위해서는 아세라와 바알을 섬겨야 한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제단 옆에 아세라 상을 슬그머니 올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할 때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롬 11:22)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와 심판의 말씀은 하나님의 준엄하심에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말씀은 그분의 인자하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호1:5)고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으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호 1:11) 이 때의 이스르엘은 정 반대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뿌리시다‘는 뜻입니다. 파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심판은 똑같은 크기가 아닙니다.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그 크기가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은 모든 것을 덮고도 남습니다. 내 작은 결단도 하나님께서 뛸 듯이 기뻐하시고, 그동안의 죄과는 말끔히 ‘이스르엘’하시고(흩어버리시고) 내 앞날에는 생명의 씨앗을 하나 가득 ‘이스르엘’하십니다(파종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힘차게 한발을 내딛기를, 그리하여 큰 나무가 되어 백배의 결실을 맺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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