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나이가 일 백 사십 칠 세가 되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자 생애를 정리하는 세 가지 중요한 일을 행합니다.
야곱은 요셉을 불러,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창세기 47:30)고 말합니다. 요셉은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야곱은 재차 확인시켰습니다. “내게 맹세하라” 이것이 첫 번째 준비였습니다.
원래 히브리인들은 떠돌이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들의 원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아브라함이 떠나왔던 “하란” 땅입니다. 야곱이 말하는 선영은 하란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와 아브라함과 이삭이 묻힌 ‘세겜 땅 마므레 상수리나무 근처’를 말합니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여기에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묻힘으로써 후손들로 하여금 그 곳에서 자신들을 기리며 하나님 신앙을 공고히 하라는 당부입니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성경은 자녀를 화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시편 127:3-5)
화살은 멀리 날아가야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과녁을 빗나가면 소용이 없습니다. 죄의 원래 뜻은 “과녁을 빗나가다”입니다. 과녁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정확하게 멀리 날아갈 때, 자녀들은 여호와의 진정한 기업이 되고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상급이 됩니다. 야곱은 그 과녁을 재차 확인시키는 일을 마지막 작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두 번째 취한 조치는 요셉의 아들들을 불러 축복한 일입니다.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창세기 48:5)
요셉이 낳은 두 아들, 야곱에게는 손자가 되는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동생이 된다는 말입니다. 왜 야곱은 이런 이상한 조치를 내린 것일까요? 이것은 장자권 때문입니다.
장자는 여러 가지 특권이 있지만, 특히 중요한 특권은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의 분깃을 상속받는다는 점입니다. 이 두 배의 분깃을 성경에서는 “배나 되는 축복” 즉 Double grac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1:7에,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배나”라는 것이 바로 장자에게 허락된 분깃입니다.
훗날 야곱의 열 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형성할 때 요셉 지파는 없어지고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 독립하게 됩니다. 이것은 요셉이 장자권을 확보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들이 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불러 자신 앞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안수를 하려는 것입니다. 용의주도한 요셉은 아버지가 실수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합니다.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창세기 48:14)
아버지 야곱이 돌출행동을 보인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야곱은 손을 엇갈리게 하여 안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놀라서 아버지에게 말씀을 올립니다.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그러자 아버지 야곱이 말합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창세기 48:19) 야곱은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8:29)
믿음의 맏아들은 태어난 순서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누구나 될 수 있으며, 누구나 믿음의 맏아들이 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장자권에 관한 모든 사건에서 태어난 순서가 무시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야곱이 마지막 행한 것은 모든 아들들을 불러 후일에 당할 일들을 일일이 이른 것입니다. 창세기 49장에 길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49:22-26이 요셉에 관한 언급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에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을 ‘무성한 가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창 미래를 준비했어야 했던 시절을 노예로, 죄수로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많은 열매를 맺는 큰 나무로 성장한 것입니다. 요셉은 많은 열매를 맺는 가장 큰 나무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연유를 성경은 한 마리로 말합니다. “곧 샘 곁에 심겨진 나무라.” 요셉을 큰 나무로 성장시킨 물이 무엇입니까? 그가 노예였을 때도, 죄인이었을 때도, 총리대신이었을 때도, 그는 언제나 하나님 곁에 있었습니다. 위로가 필요하면 위로를, 지혜가 필요하면 지혜를, 용기가 필요하면 용기를 주셨습니다. 먹을 것이 필요하면 양식을 공급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은혜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라고 말합니다.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는 것은 오직 내 식구, 내 집안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유익한 존재,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성숙과 향유’,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겨자씨 같은 보잘것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겨자씨 안에는 이미 나무만큼 크게 자랄 잠재력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내 뿌리를 하나님의 샘 곁에 내려야 합니다. 내가 할 일은 내 의지를 좌절시키는 모든 것을 기도로 믿음으로 물리치는 일입니다. 그리고 내 가지가 담을 넘어 풍성한 열매를 향유하고, 다른 사람들을 윤택하게 하는 큰 나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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