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거짓의 사람들에 대한 죄와 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 3:19-21)
악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치 않으며, 그 죄를 자신의 방법으로 처리해버립니다. 점점 더 지옥의 깊은 곳으로 빠져듭니다. 반면 선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그 죄를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알고 빛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옵니다. 자신의 죄를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천국의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직시하고 어둠을 향하는 길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드디어 자신을 노예로 판 형들이 등장합니다. 요셉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입니다. 과연 요셉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요셉이 그들에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창세기 42:9) 과연 하나님의 꿈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형들에게 엉뚱한 누명을 씌우고 있습니다. 형들에게 복수하려는 것일까요?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 형들을 복수하고픈 생각이나, 자신이 옳았고 그래서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올랐음을 과시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다만 요셉이 보기를 원했던 것은 형들의 마음 상태였습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형들이 요셉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이 왔다는 말을 듣고는, 그들을 자신의 사저로 들이고 연회를 준비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퇴정한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는 동생 베냐민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의 유일한 동생이며, 같은 어머니 라헬에게서 난 혈육을 보자 도저히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이어서 연회가 시작되었고, 보고 싶었던 동생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되는 음식을 주어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불안을 벗어버리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을 향한 시험은 여기서 끝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양식을 담고 다시 돈을 집어넣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의 양식자루에는 요셉의 은잔을 넣게 하였습니다. 다음날 해가 뜨고 그들을 떠나보내고, 얼마 후에 자신의 병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추적하게 하였습니다. 성으로 압송된 형들과 베냐민이 다시 요셉 앞에 섰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고 힐난하는 요셉 앞에 이제는 유다가 앞에 나섰습니다. “내 주께 무슨 말을 하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그러나 요셉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이 나의 종이 되리라.” 그러자 유다가 요셉에게 매달려 간청합니다. 유다의 간청은 너무나 간곡하였습니다.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요셉의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를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유다는 자신을 걱정하지 아니하고 베냐민과 아버지를 걱정하였습니다.
자신을 미워하여 노예로 팔았던 형들이 앞을 다퉈, 자신이 대신 벌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기를 원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형들이 빛으로 나오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악한 사람, 거짓의 사람에서 변화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형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겠다는 선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바라시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변화된 모습에 그동안 억제했던 정을 더 이상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로 뒤범벅이 된 목소리로 말합니다.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가까이 오소서.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이곳에 나를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7-8)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는 요셉의 고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하는 고백입니다. 마치 흰개미들이 모이면 자동적으로 집을 짓듯이, 별들이 태어나면 정해진 궤도를 따라 자동적으로 돌듯이. 이것이 원래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고난과 역경까지도 하나님의 처사로 받고 인내로 성숙을 이뤄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고 약속에 참여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