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성숙과 향유

새벽지기1 2021. 5. 19. 06:14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았던 당시의 감옥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열악했으며, 당시 기독교인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고난은 훨씬 더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감사’와 ‘기쁨’이란 단어를 무려 14번에 걸쳐 사용합니다. 그 혹독한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이 넘쳤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그리고 이어서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삶의 일체의 비결을 배워, 삶의 높낮이 일희일비하지 아니하고 늘 감사와 기쁨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영적성숙을 이뤄 큰 그릇이 되어 어떤 상황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숙에 비례하여 향유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성숙합니까? 비례하여 더 큰 향유를 누리고 기쁨과 보람은 더욱 커져 하는 일도 잘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마 25:29)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1-31)
이 비유는 ‘성숙과 향유’에 관한 말씀입니다. 겨자씨처럼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내가 큰 나무가 됩니다. 그러자 새들까지 와서 내가 받은 복을 함께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숙과 향유’가 다름이 아닌 ‘천국의 본질’입니다. 내가 성숙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향유하는 삶이 곧 천국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어는, 겨자씨가 아니라, 농부라는 사실입니다. 농부는 그 씨앗이 장차 큰 나무가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농부는 곧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절망의 척박한 땅에 하늘의 큰 소망을 심기 위해서 오셨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씨를 뿌리자 하늘 아버지께서 햇빛과 비를 주셔서 그 씨앗을 키우십니다. 씨앗은 그에 힘입어 메마른 대지를 뚫고 싹을 틔우며 자라납니다. 성장과 성숙의 의지는 대단히 소중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자라나고, 성숙하리라” 결단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보호와 공급을 믿고 소망 가운데 한걸음 내딛으라는 것입니다. 소망의 근거는 나를 반드시 큰 나무로 키우시겠다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자라나게 하십니다.

겨자씨 같은 내가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해야 할 일은 ‘사람 의존증’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성숙과 향유’의 반대말은 ‘집착과 중독’입니다. 사랑과 그 겉모습이 가장 유사한 것이 바로 ‘집착’입니다. 집착이란 생각 없이 내 자신을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착의 대상에 의해서 일희일비하고 그것이 사라지면 그 자신도 무너집니다. 성숙은 누리며 베풀어 더 큰 성숙으로 가게 하지만, 집착은 중독되게 만들어 더 깊은 지옥으로 빠지게 합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선지자와 장로와 귀인과 모사.....”(사 3:1-2)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바로 이 사랑이 성숙의 밑거름입니다. 그 사랑을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즉 사랑은 상대방의 가치를 알고 그를 성숙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치와 그분의 뜻을 헤아리고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왜 믿으시며 왜 참으시며 왜 견디시는지 헤아리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풀이 큰 나무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을 받으셔야 합니다. 성령은 우선 예수님의 가르침이 생각나게 하는 ‘진리의 영’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숙을 이뤄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와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 지리라.”(잠 11:25)

큰 나무가 되어 어떤 일에도 흔들림이 없는 영적 장자가 되시기를, 배나 되는 복을 누리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하여서 성령의 열매를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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