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2장 | 롬13장 | 롬14장 | 롬15장 |
성도의 의무 | 성도들에 대한 권면 | ||
①하나님에 대한 의무 (롬12:1-2) ②교회에 대한 의무 (롬12:3-13) ③사회에 대한 의무 (롬12:14-21) | ④국가에 대한 의무(롬13:1-7) ⑤이웃에 대한 의무(롬13:8-10) ☀성도의 종말적 자세(롬13:11-14) | ①판단하지 말 것에 대한 권고(롬14:1-12) -서로 비판하지 말라! ②덕을 세움에 대한 권고(롬14:13-23) -서로 덕을 세우라! ◦믿음 있는 자!-네 형제를 근심케 말라! ◦믿음 적은 자!-믿음을 좇아 행하라! | ☀교회 화합에 관한 권고 (롬15:1-15:13) -너희도 서로 받으라! |
교회와 세상 | 교회 안 성도간 | ||
하나님의 의와 성도(의의 적용)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롬13:1-7 국가에 대한 성도의 자세)
▶본문
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해석과 설명
☀바울은 본문에서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시민으로 하나님과 성도간의 의무 뿐 아니라 세상 권세에 대해서도 순종하며 의무를 다할 것을 강조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여기서 ‘각 사람’은 이 서신서의 수신자를 말한다. 그리고 ‘위에 있는 권세’란 문맥상 국가의 정치 세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복종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탓세스도’는 원래 군사 용어로 지휘관에게 뱅사들이 철저히 복종하는 자세를 가리키는 용어다. 즉 이 표현은 단순한 순종 보다는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상관이 의도에 따르는 보다 포괄적이고 엄격한 의미의 복종을 뜻한다.(머레이)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이것은 앞의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할 이유는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신자들은 그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듯 세상이 권세에도 복종해야한다는 것이다.
☀<주>본 절의 시대적 배경
한편 바울이 이러한 국가에 대한 자세를 교훈 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의 반영이었다. 즉 본서를 기록할 때는 A.D.57년경이라고 본다면 그 때는 아직 네로의 학정(A.D.64-68년)이 시작되기 전이었고, 따라서 로마정권의 기독교 박해시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로마 정부의 호의적인 대우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때는 그라우디우스 황제(A.D.41-54)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한지 4,5년이 지난 상태로(행18:2) 그리스도인은 로마 사회에서 유대인과 동등하게 취급되었다. 또 바울 개인적으로도 갈리오 총독은 A.D.51년경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바울 고소(불법 종교를 선전한다)에 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행18:12이하) 이러한 결정이 전례가 되어 그는 거의 방해 없이 로마의 속숙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당시 기독교에 대한 큰 박해는 없었고 로마 당국이 복음 전파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은 중립적 상황이었다. 따라서 바울의 국가에 대한 본절의 교훈은 이러한 정황에서 보다 호소력 있는 권면이었다.(김전2:1-2). 왜냐하면 권세자가 하나님의 명령과 배치되는 것을 강요할 때에는 그들에 대한 복종보다는 순교 또는 합법적인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행4:19, 5:29) 또한 본절의 의미가 불법적인 권세를 용인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이나 부도덕한 정권에 대해서는 보다 보편적인 법(하나님의 율법 또는 인류 공동의 자연법)에 순응하기 위해 합법적인 저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2절)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여기서 ‘그러므로’는 본절이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는 1절의 당연한 결과임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거스리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티탓소메노스’는 본래 ‘전투에서 반대편에 서다’라는 의미를 내포한 단어다. 이는 합법적인 꾸가의 권세에 반대하는 대열에 정당한 이유 없이 계속 동참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권위로서 통치자에게 위임하신 질서 유지를 위한 취지에 대항하는 것으로 본다.(데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여기서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자취하리라’는 단어 그래도 ‘자취(自取)-자기 스스로 선택함)한다는 의미로 형벌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한번 강조 되어야 할 것은 본절에서 국가 권력이 완전히 정직하고 무오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정부의 제도에대해 가장 기본적인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모든 경우를 포괄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거나 적용해서는 안 된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3절)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여기서 ‘관원들’은 앞에서 언급한 ‘권세’가 여러 계층의 관리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반영한 표현이다.
한편 국가의 통치자들은 통상적으로 선을 장려하고 악을 징벌하는 보편적인 정치 원리를 채택하는 법이다.
따라서 국가는 ‘선한 일’ 즉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보다는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당시 본 서신을 받았던 로마 교회에는 부도덕한 황제와 민중을 수탈하는 지배계층으로 인하여, 또한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이란 의식 때문에 로마 정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러한 교훈을 준 것은 하늘 시민인 동시에 이 땅에 현존하는 국가의 국민이기도 한 성도에게 보다 모법적인 국민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울의 교훈은 후에 성도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여러 차례 모진 박해를 받지만 이에 무력적으로 항쟁하지 않고 계속 선을 행함으로써 마침내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배경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4절)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여기서 ‘그’는 1절의 ‘위에 있는 권세’ 즉 국가의 정치 세력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역자(헬 디아코노스)는 ’행동하는 종 혹은 일꾼(servant)를 의미한다. 구약에서는 선민을 다스리도록 부름 받은 ‘사사’나 ‘왕’ 혹은 모세와 같은 지도자들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이나 깊은 신뢰가 없었던 이방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왕(렘25:9, 27:6)이나 바사왕 고레스(사44:28)를‘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이는 당시 권력자들 즉 관원들이 보통 칼을 차고 있었는데, 그것은 악에 대한 처벌의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바울은 관원들의 그 ‘칼’을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합법적 권력과 관련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진노하심(헬 오르겐)’은 그 주체가 명확히 지시되지 않았지만 그 문장 가운데에 ‘하나님의 사자’라는 표현이 다시 한번 강조되어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핸드릭슨) 즉 하나님께서 통치자들을 통해 주시는 형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가 형벌을 부과하고 집행할 때에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5절)
바울의 설명에는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그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유래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체 문맥을 통해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그 전제에 기초하여 이어 두 가지의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이유(외적)로는 권세에 반항할 때 하나님이나 권세자의 진노가 오기 때문이며, 둘째 이유(내적)는 양심이 권세의 권리와 기능을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두 가지는 바울이 지금까지 논의한 권세에 대한 복종의 필연적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양심(헬 쉬네이데시스)’는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의무감’이라는 의미로 쓰인다.(행23:1, 롬9:, 고후1:12, 딤전1:5, 딤후1:3)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6절)
바울은 성도가 세금을 내는 것은 국민의 의무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납세의 의무가 초대교회에서 강조된 것은 이미 예수의 가르침 속에 들어 있었다.(마22:21)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바울이 국가의 역할, 특히 징세에 대한 언급을 할 때 통치자들을 이렇게 종교적인 의미로 부르는 것은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 교회나 기독교 내에서 납세 문제가 중요한 논란거리로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한편, ‘항상 힘쓰느리라’는 표현은 국가의 통치자들이 징세의 일뿐 아니라 모든 공무에 최선을 다해야 함도 함께 언급한 것이다. 또한 세금이 거두어지고 그것이 올바른 용도에 쓰여야 한다는 사실도 반영되어 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7절)
여기서 ‘줄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페일레’는 ‘갚아야 할 것’ 혹은 ‘빚’을 의미하는데 이는 ‘세금’ 뿐만 아니라 백성(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각종 의무를 말한다. 한편, ‘조세’는 사람과 재산에 대하여 부과된 세금으로 세리에게 바치는 것이며, ‘관세’는 물건의 인출에 부과되는 간접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핸드릭슨) 그리고 하반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는 의무를 다하는 자에게 권력자(관원)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며, 공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자를 오히려 존경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교훈과 적용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하지만 모든 말씀이 진리는 아니다.
본질적인 진리의 문제와 저자의 권면이 함께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론, 죄론,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등이다.
하지만 먹는 문제라든가 풍습에 관한 문제등 비본질적인 것들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문은 아주 ‘예민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본문의 제목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이다.
하지만 <이 말씀 때문에> 지난 70-80년대 민주화시대에 <우리 교회는 진통>을 겪었다.
우리 교회가 <보수와 진보>로 갈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쪽은 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을 근거로 성도는 데모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있었고,
한쪽은 반대로 ‘인권을 탄압하는 권력은 타도되어야 한다’는 목회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학생들은 어느 교회에 다니고 있었느냐에 때라 정치성향이 갈리기도 했다.
그러면 바울은 왜 이런 예민한 문제를 거론할 수 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바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의 반영이었다.
즉 본서를 기록할 때는 로마정권의 기독교 박해시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로마 정부의 호의적인 대우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로마 당국이 복음 전파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은 중립적 상황에서의 권면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면 바울은 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권면하는가?
첫째,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1)
둘째,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이기 때문이다.(3)
셋째,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보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3)
넷째,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자신이 맡겨진 일에 힘쓰는 자이기 때문이다.(5)
참고로 여기서 ‘사역자’라 함은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사’나 ‘왕’ 혹은 모세와 같은 지도자들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이나 깊은 신뢰가 없었던 이방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왕(렘25:9,
27:6)이나 바사왕 고레스(사44:28)를‘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면 민주화 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성도의 태도는 어떻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서 ‘민주화를 위해 반정부 투쟁을 해야 하는냐?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이나 베트남의 성도들 말이다.
나는 우선순위에 문제에서 ‘민주화’ 보다 ‘복음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서로 상충되고 있는 현실이 성도들의 고민이 있다.
하지만 권세자가 하나님의 명령과 배치되는 것을 강요할 때에는
그들에 대한 복종보다는 순교 또는 합법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행4:19, 5:29)
다만 본문의 의미가 불법적인 권세를 용인하라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이나 부도덕한 정권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율법 또는 인류 공동의 자연법에 순응하기 위해 합법적인 저항을 할 수 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1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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