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순종!
(사6:1-8)
◆본문
1.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서론
-시대적 배경(1절)-
1 웃시야(뜻;하나님의 힘)왕의 죽던 해에...
이 짦은 표현이 그 당시 시대상 모두가 담겨있습니다.
그는 유대왕 아마샤의 아들 16세에 즉위하여 52년간 재위중 보필자 스가랴가 살아있는 동안 다윗왕과 같이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그의 명성이 천하에 높아지자 마음이 교만하여 져서 성전에 들어가 사사로히 분향한 죄로 문둥병에 걸려 종신토록 별궁 에 있다가 주전 756 년에 죽었습니다.
웃시아 왕의 병중에는 그의 아들 요담이 섭정하였습니다다(대하26)
웃시아 왕을 평가한다면
-초기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을 구하였던 왕!'
-주변 나라에서 조공을 받을 정도로 아주 부강한 나라/ 국운이 융성했던 시기
-그러나 말년에 교만 불순종으로 문등병에 걸려 죽은 왕!
*처음은 창대했으나 나중은 비참했던 왕!
바로 이 웃시아의 때!
이사야가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본론
그러면 이사야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첫째,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합니다(1-4)
1.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계21:22)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코데쉬)! 거룩하다(코데쉬)! 거룩하다(코데쉬)!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여기서 ‘스랍’은 천사이거나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이며 인격적 존재입니다.
그가 얼굴을 가린 이유는 지존하신 하나님을 감히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이사야가 경험한 이 경험이 어떤 것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 앞에 압도되어 이렇게 외쳤습니다.
거룩하다(코데쉬)! 거룩하다(코데쉬)! 거룩하다(코데쉬)!
어떤 목사님이 이 부분을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세상에서 찌든 생활하다가 주일 예배당에 와서 털석 주저 앉는 순간!
주님의 은혜에 앞도 되어 눈물이 쏟아지는 은혜를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예배 시작 송을 부를 때 주르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어쩌면 그 때 그 심정이 주님의 품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합니까?
언제 경험했습니까?
고형원형제의 이런 복음성가 가사가 떠오릅니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그 빛난 영광 온 하늘 덮고 그 찬송 온땅 가득해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찬송 가운데 서신 주님
주님의 얼굴은 온 세상 향하네 권능의 팔을 드셨네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우린 서네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는 전진하리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
여러분은 이 찬송을 부를 때 어떤 느낌입니까?
시편(8편) 기자는 온 우주에 가득한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엘리야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추격꾼에 쫒겨 호렙산에 홀로 남아 있을 때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19:11-12)“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과 이상으로만 나타나실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 가운데 임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집회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도 있습니다.
예배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 묵상 중에도, 골방 기도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커서 우주로도 담을 수 없고,
하나님은 너무 작아서 내 가슴 속에 모실 수도 있다.>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우주에 가득찬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 나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어떻게 나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주하시는 하나님(성령님)을 자기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조용히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힘들고 지칠 때 하나님의 보좌 앞에 겸손히 나갑시다.
그러면 이사야가 뵈었던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것이며
하나님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사야가 경험한 주님의 그 영광을 체험하기를 사모합시다.
온 우주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
오늘 이 밤에 그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사야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둘째, 이사야는 ‘죄 사함의 은혜’를 입습니다(5-7)
본문 5절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화로다 나로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것은 이사야가 '죄 된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내가 문제입니다. 이런 고백은 은혜를 받아야 나올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은혜 받아 본적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 보지 못하면 이런 체험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오늘 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죄 된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고 '화로다 나로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 외쳤습니다.
이사야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스랍의 화저를 통해 이사야의 입에 대는 순간 그이 죄가 사함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이사야는 자신의 죄가 드러난 순간 죄를 고백했고 죄 사함의 은혜를 입게 되었던 것입니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만 하면, 아버지 앞에 고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해주시고, 낫게 해주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바로 성경입니다.
제가 성경의 그 약속의 말씀 몇 곳을 다시 읽겠습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요한1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그 사실을 다윗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게했습니다.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때까지만 해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찾아가 그의 죄를 지적하자 하나님께 무릎 꿇었습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삼하12:13)”
다윗의 그 엄청난 죄가 사함 받게 된 것은 철저한 죄의 자백입니다.
다윗이 범죄한 후 회개한 모습과 내용은 시편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시6편과 51편이 대표적입니다. 시6편 가운데 일부를 제가 읽겠습니다.
1.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6.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깨달은 후 뼈가 떨릴 만큼 두려웠습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울 만큼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죄의 대가’입니다. 즉 ‘죄 사함’과 ‘죄의 대가 지불’은 별개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범죄에 대한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죄의 심판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 지었을 때 가져야 할 두려움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누군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평생, 1년 365일 단 하루도 죄를 짖지 않은 적이 없다.”
따지고 보면 그게 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사함의 은총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거룩함으로 주님의 보좌를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사야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셋째, 이사야는 '소명'을 깨닫게 됩니다(8)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강제 소환형’입니다.
성경의 등장하는 하나님의 종들 대부분이 강제소환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광야에 잘 살던(?)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끌어 내라가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불러 니느웨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어부로 잘 살고 있던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을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너희로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
또하나는 ‘자발적 순종형’입니다.
구약의 대표적 인물은 ‘이사야’입니다.
신약의 대표적 인물은 ‘사도 바울’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읽겠습니다.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러면 이사야는 어떻게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이사야가 ‘하나님의 심정’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이 참 된 제자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본문을 '내가 여기 있나이다'에 초점을 맞춰 '소명'에 대한 설교를 합니다.
하지만 본문의 본질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부르짖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사야가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바로 사1-5장까지의 내용을 통해서입니다.
먼저 우리는 이사야서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선지서에서 1장에 선지자를 부르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사야의 부르심은 6장에 나옵니다.
그럼 1-5장은 어떤 내용일까요?
그것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중에 배은망덕한 죄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에 관한 기록이 1장입니다.
2.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배은 망덕한 죄!‘입니다.
그랬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배은 망덕의 죄'를 질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양육했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책망은 계속됩니다.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들의 또 다른 죄는 '형식적인 신앙의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예배)를 거절하셨습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더 이상 기뻐하지 않는다.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내가 견딜 수 없다.
이 말씀입니다.
주님의 책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방나라를 의지한 죄(2장)를 책망하셨습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22)”
당시 남유다는 여호사밧의 그릇된 판단으로 이루어진 북이스라엘 아합왕과의 정략결혼 이후 마치 침몰하는 배처럼 영적 도덕적 암흑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돌아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이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의 소명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자발적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자발적 순종은 신약에서 바울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수원지구 성구인 행20:24이 바로 그 고백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런 자발적 순종으로 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이사야는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둘째, ‘죄 사함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셋째, '소명'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저는 세 번째 은혜에 주목합니다.
저는 앞에서 부르심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강제 소환형’! 그리고 또 하나는 ‘자발적 순종형!’
여기서 후자에 속하는 두 사람!
한 사람은 이사야! 또 한사람은 사도 바울!
저는 이 두 사람의 그 위대한 삶에 도전 받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제가 어제 5월을 ‘전도 집중의 달’로 선포했습니다.
저는 오늘 그 연정선에서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아멘!
오늘도 주님은 같은 심정으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누가 캠퍼스에 있는 저들에게 가겠느냐?”
‘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느냐?“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이 5월에는 자발적 순종으로 복음 전도에 힘쓰는 제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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