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 10장 | 11장 |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본심 | 왜 이스라엘을 유기하셨는가! |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
①바울의 고통과 근심(1-3) ②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4-13) ★하나님의 주권(예정)론(11-13) ③하나님이 주권(토기장이 비유) (14-24) ④하나님의 주권과 이방인(25-29) | ①행위로 의를 구했기 때문! (9:30-33) ②그리스도를 거부했기 때문! (10:1-5) ③선지자들을 거부했기 때문! (16-21) | ①이스라엘의 남은자의 구원(1-10) ②이방인의 구원과 자만경고(11-24)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14) ③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약속(25-32) ★이스라엘 유기의 기간: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25) |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의(의의 변론) |
롬9장 구속역사를 이끄는 유일한 주체이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함에 있어서 과거 구약 시대에도 구속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전개되기는 했으나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다 구원 받은 것은 아니며, 오직 진정한 약속의 자녀와 ‘남은 자(remnant)’들만이 구원 받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은 이같은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이해하시 못하고, 계속해서 믿음이 아닌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얻고자 하다가 실족하게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
내 형제가 구원 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저주 받아도 좋다!
(롬9:1-3: 바울의 고통과 근심의 이유)
▶본문
1.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2.(1절에 포함되어 있음)
3.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해석과 설명
☀본문은 바울이 동족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슬픔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바울이 이토록 상심하며 괴로워한 이유는 동족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인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1-2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표현한 것은 바울의 전형적인 문구로서 바울 서신에 수없이 등장하는 문구다.
이는 바울이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를 계속하고 있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결합함으로써 그 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신앙 고백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어 나오는 ‘참말’은 바울이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논리전개의 신실성을 나타낸 말로 자신의 말이 추호도 거짓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사역을 주로 담당하는 사도였지만 자기 동족에 대해서도 역시 깊은 사랑을 지니고 있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비록 지금까지 유대인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표현들을 자주 사용했지만(롬2:5, 17-24) 실은 바울이 진정으로 자기 동족을 사랑하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8장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됨에 대한 기쁜 마음을 표현하였으나, 여기서는 동족의 불신앙에 대한 극도의 슬픔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이 구절의 원문을 좀 더 명확히 살린다면, ‘성령 안에서 나의 양심이 나와 함께 연대 증언한다’는 의미다. 서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가 ‘참 말’을 강조하였듯이, 본 구절에서는 ‘성령 안에서’라는 표현이 ‘성령의 관할 하에서’라는 의미로 양심의 진실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조명을 받은 ‘양심’은 율법의 행위를 드러내는데 불과한 사람들의 양심과 구분된다. 한편, 바울은 ‘내 양심’과 ‘나’를 중복하여 표현함으로써 자기 고백의 확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히브리인들이 법정에서 2명의 증인이 있어야 효력이 있는 것처럼 바울도 이런 중복적 문장 표현을 사용한 것 같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
이 말은 흔히 혈연적 근친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적자 이삭을 통해 난 이스라엘 언약 백성을 가리킨다.(갈4:21-26) 즉 바울은 언약의 백성이었던 동족들과 유대감을 강조하기 위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 말은 바울이 자신이 ‘그리스도와의 언약이 파기되어 지옥의 멸망에 처해질지라도 동족의 구원만 될 수 있다면’이란 뜻이다. 여기서 ‘원하는 바로라’는 ‘만약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원한다’라는 의미다. 이렇게 사실상 불가능한 소원을 바울이 말하는 것은 바울 자신이 불신앙 가운데 있는 동족의 구원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훈과 적용
◦거룩한 근심! 위대한 기도!
오늘 본문은 사실상 2절 밖에 안 되는 짧은 내용이다.
하지만 내게 주는 무게감과 도전은 무척 무겁고 크다.
어떤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산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가족만을 위해 산다.
그리고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웃을 위한 희생을 감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울처럼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동족의 구원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찍이 바울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모세가 그랬다.
형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상을 만들고 하나님을 배역했을 때
모세는 동족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중보 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출32:32)“
이거 결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애국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바울처럼 모세처럼 목숨 걸고 동족의 구원을 기도하는 사람이다.
나는 70-80년대 ‘민족 복음화’를 기도했던 세대다.
그리고 우리는 민족의 부흥을 목도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민족교회는 영적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에게도 동족을 향한 거룩한 근심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도 모세의 기도! 바울의 기도가 절실하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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