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시험을 통해 진정한 믿음이 됩니다. 시험이 다가오지 않을 때는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믿고 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생각 자체가 믿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고, 그 시험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어떻게 발걸음을 내딛는지에 따라서 진짜 믿음인지가 증명됩니다. 사탄의 공격 같은 악의 공격도 우리의 믿음을 진보하게 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탄 마귀의 공격을 이기고 승리하게 함으로써 믿음을 더욱 굳세고 강하게 변화시키십니다.
믿음에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내 능력으로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없고, 모든 악의 세력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훈련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극적이고 위대한 훈련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때가 자정쯤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3~6시 사이에 제자들이 거센 물결에 휩쓸리며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수 시간 동안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예수님의 임재를 제자들에게 체험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유령이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베드로는 신약 성경에서 언제나 새로운 장면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제자들이 놀라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라고 고백하며 사건이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자청으로 인해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고,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때가 자정쯤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3~6시 사이에 제자들이 거센 물결에 휩쓸리며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수 시간 동안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예수님의 임재를 제자들에게 체험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유령이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베드로는 신약 성경에서 언제나 새로운 장면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제자들이 놀라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라고 고백하며 사건이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자청으로 인해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고,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나타난 기적
“주여 정말로 주이시면 제게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28절).
지금은 폭풍 때문에 두려워 떠는 상황입니다. 배가 앞으로 가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베드로가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주문을 합니다.
“만일 주님이시면 나에게 명령하셔서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해주십시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분이 정말 주님이신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고, 또 그분이 정말 예수님이시라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모험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모험심과 단순함이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그릇이 되기도 합니다. 엉뚱해 보이는 베드로의 모습이 때로는 안전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배에서 나와 하나님과 함께 걷는 믿음의 발걸음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베드로의 장점은 주님께로부터 어떤 약속을 받아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전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단지 주님의 임재, 주님의 능력, 주님의 역사, 주님의 살아계심만을 바라보며 “만일 주님이시면 명하여 나를 물 위를 걷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폭풍 때문에 두려워 떠는 상황입니다. 배가 앞으로 가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베드로가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주문을 합니다.
“만일 주님이시면 나에게 명령하셔서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해주십시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분이 정말 주님이신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고, 또 그분이 정말 예수님이시라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모험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모험심과 단순함이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그릇이 되기도 합니다. 엉뚱해 보이는 베드로의 모습이 때로는 안전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배에서 나와 하나님과 함께 걷는 믿음의 발걸음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베드로의 장점은 주님께로부터 어떤 약속을 받아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전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단지 주님의 임재, 주님의 능력, 주님의 역사, 주님의 살아계심만을 바라보며 “만일 주님이시면 명하여 나를 물 위를 걷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배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배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약속하고,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세상의 그 무엇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위치일 수 있고, 재물일 수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고, 은밀한 사생활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여기게 하는 그 무엇입니다. 그것이 베드로가 타고 있던 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젊은 부자 관원에게 “네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그들은 그 배가 너무 좋아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선택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배 밖으로 나와야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배 밖으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배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분명 위험하지만 배 안에 있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것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안전은 없습니다.
베드로의 엉뚱해 보이는 요청에 예수님께서 어쩌면 웃으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러한 부분 때문에 그를 리더로, 지도자로 세웠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예수님, 농담도 못합니까? 한번 해본 말인데 진짜 오라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배 밖으로 발을 내 딛었습니다.
배드로가 물 위를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지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습니다. 베드로의 기적은 예수님이 “오라”고 하신 말씀에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 없이 “나도 예수님처럼 물위를 걷고야 말겠어”라고 결심하고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본질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은 나의 결심, 나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라고 하신 분이 있느냐 입니다. 오라고 하신 분의 음성과 말씀 없이 가면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라고 하신 분의 말씀을 신뢰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이 나타난 것입니다. 믿음은 나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성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젊은 부자 관원에게 “네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그들은 그 배가 너무 좋아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선택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배 밖으로 나와야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배 밖으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배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분명 위험하지만 배 안에 있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것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안전은 없습니다.
베드로의 엉뚱해 보이는 요청에 예수님께서 어쩌면 웃으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러한 부분 때문에 그를 리더로, 지도자로 세웠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예수님, 농담도 못합니까? 한번 해본 말인데 진짜 오라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배 밖으로 발을 내 딛었습니다.
배드로가 물 위를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지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습니다. 베드로의 기적은 예수님이 “오라”고 하신 말씀에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 없이 “나도 예수님처럼 물위를 걷고야 말겠어”라고 결심하고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본질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은 나의 결심, 나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라고 하신 분이 있느냐 입니다. 오라고 하신 분의 음성과 말씀 없이 가면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라고 하신 분의 말씀을 신뢰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이 나타난 것입니다. 믿음은 나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성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믿음의 발걸음
이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이 언제였을까요? 배 밖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습니다. 믿음이 요구되는 첫걸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오라”는 음성을 들었을 때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생각했다면 절대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물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갈릴리호수는 그가 늘 물고기를 잡던 곳이었습니다. 물이 어떤 속성이 있는지 몰라서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에게 물속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택하라고 했다면 수영을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경험했던 상식과 경험을 모두 내려놓고 “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새로운 세계, 새로운 경험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을 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걸음 내딛는 것이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경험했던 상식과 경험을 모두 내려놓고 “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새로운 세계, 새로운 경험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을 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걸음 내딛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그것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그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뱀의 꼬리를 잡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뱀을 잡을 때는 머리를 잡아야 합니다. 꼬리를 잡는 순간 뱀이 돌아서 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았을 때 뱀이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하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 섰을 때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의 발을 홍해에 담가라.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길을 열기 전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먼저 명령을 주셨습니다. 바다물이 확실하게 갈라진 것을 보고 간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홍해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요단강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수아 3장 1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야 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온 땅의 주되시는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담그고 선 순간 아래로 흐르던 물이 끊기고 벽을 이루어 서게 될 것이다”(수 3:13).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 섰을 때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의 발을 홍해에 담가라.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길을 열기 전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먼저 명령을 주셨습니다. 바다물이 확실하게 갈라진 것을 보고 간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홍해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요단강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수아 3장 1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야 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온 땅의 주되시는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담그고 선 순간 아래로 흐르던 물이 끊기고 벽을 이루어 서게 될 것이다”(수 3:13).
여러분, 발을 담가야 합니다.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이제 요단당의 물이 끊기고 그 물 벽이 서게 될 때 너희들은 걸어가라”고 말씀하지 않고 먼저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란 말씀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시대에 블레셋 군사가 쳐들어왔을 때 사울왕이 벌벌 떨었습니다. 600명의 군사들도 벌벌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병력은 병거가 3만이요, 마병이 6천,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사울의 아들이었던 요나단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자살행위와 같은, 죽을 수 있는 그 길을 향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이스라엘 시대에 블레셋 군사가 쳐들어왔을 때 사울왕이 벌벌 떨었습니다. 600명의 군사들도 벌벌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병력은 병거가 3만이요, 마병이 6천,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사울의 아들이었던 요나단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자살행위와 같은, 죽을 수 있는 그 길을 향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믿음, 말씀대로 한 걸음 내딛기
요나단의 발걸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걸음, 모세의 발걸음, 베드로의 발걸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언제나 말씀대로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엄청난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순종의 한 걸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는 “내 믿음은 부족해. 내 믿음은 더 많아져야 해. 내 믿음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라고 생각하지만 마틴 루터는 그것이 “마귀에게 속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부인이 루터에게 와서 “저는 믿음이 너무 부족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루터는 “부인 사도신경을 믿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부인이 “네 당연히 믿습니다”라고 하자 “당신은 나보다 믿음이 더 좋은 분이시군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부인이 루터에게 와서 “저는 믿음이 너무 부족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루터는 “부인 사도신경을 믿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부인이 “네 당연히 믿습니다”라고 하자 “당신은 나보다 믿음이 더 좋은 분이시군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얼마큼의 믿음이 필요합니까? 믿음을 실제 역사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얼마큼의 믿음이 필요합니까? 한 걸음 내딛을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너희에게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을지라도”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자녀의 아픔을 가진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 할 수 있거든 도와주십시오. 고쳐주십시오”라고 하자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아버지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오는 믿음입니다. 이 아버지는 믿음이 부족하니까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무슨 말이냐? 네가 지금 내게 나와 있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한 걸음 내딛는 믿음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실 때 한 번에 정상까지 점프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계단 한 계단,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을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아픔을 가진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 할 수 있거든 도와주십시오. 고쳐주십시오”라고 하자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아버지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오는 믿음입니다. 이 아버지는 믿음이 부족하니까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무슨 말이냐? 네가 지금 내게 나와 있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한 걸음 내딛는 믿음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실 때 한 번에 정상까지 점프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계단 한 계단,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을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처럼 우리가 생각하기에 안전하다고 여기는 배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믿음의 한 걸음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의 소명을 분명하게 발견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할 믿음의 발걸음을 찾고 계십니다.
베드로의 실패와 믿음의 성장
왜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과 충만이 임하지 않습니까? 믿음의 한 걸음, 하나님께 나오는 한 걸음, 배 밖으로 발을 내딛는 한 걸음,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셨을 때 내딛을 수 있는 한 걸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어느 정도 걸었는지 모르지만 물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오라고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의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의심이 있고, 믿는 자들의 의심은 예수님 이외의 것을 바라보는 의심입니다. 의심이란 ‘나누어진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시선만 돌리면 금방 빠져드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한 걸음 내딛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는데 의심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은 그렇게 쉽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께 고정되어야 합니다.
물속에 빠지는 베드로를 보면서 “참 불쌍한 사람이군. 믿음이 없는 사람이군. 어떻게 저렇게 의심해서 물속에 빠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했다며 베드로를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있는 베드로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너희는 물 위를 걸어보기나 했니? 너희 중에 물 위를 걸어본 사람 나와 봐. 적어도 나는 한 걸음은 걸었어.”
여러분, 베드로의 실패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베드로는 무엇인가를 체험한 것입니다. 새로운 경험을 한 것입니다.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잠시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어느 정도 걸었는지 모르지만 물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오라고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의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의심이 있고, 믿는 자들의 의심은 예수님 이외의 것을 바라보는 의심입니다. 의심이란 ‘나누어진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시선만 돌리면 금방 빠져드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한 걸음 내딛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는데 의심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은 그렇게 쉽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께 고정되어야 합니다.
물속에 빠지는 베드로를 보면서 “참 불쌍한 사람이군. 믿음이 없는 사람이군. 어떻게 저렇게 의심해서 물속에 빠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했다며 베드로를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있는 베드로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너희는 물 위를 걸어보기나 했니? 너희 중에 물 위를 걸어본 사람 나와 봐. 적어도 나는 한 걸음은 걸었어.”
여러분, 베드로의 실패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베드로는 무엇인가를 체험한 것입니다. 새로운 경험을 한 것입니다.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잠시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분명 실패했지만 배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더 큰 실패를 한 것입니다. “오라”는 음성이 있었지만 베드로 외에는 아무도 배 밖으로 한 걸음도 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길을 걷다가 실패한 사람들에게 실패했다고 말하면서 자기는 믿음을 사용하지 않고 안전한 세상의 배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더 큰 실패인 줄 모르고, 믿음으로 한 걸음 걸은 사람들을 실패자라고 조롱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실패가 두려워 배 밖으로 한 걸음 내딛지 않는 배 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결국 베드로가 경험했던 이 놀라운 체험을 하지 못합니다. 자신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의 일에 쓰임 받지 못합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실패한 것에 대하여 책망한 적이 없으십니다. 도리어 아무 일도 시도하지 않고 배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실패로 여기셨습니다. 저도 어떤 프로젝트를 하다가 완전히 실패했는데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레슨비를 비싸게 치렀지?” 실패했다는 책망이 아니라 좋은 경험을 했다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시도를 하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물 위를 걷는 하나님의 임재의 기적을 체험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다가 불신의 위험까지 경험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셨지만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하시며 손을 잡아 배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실패는 언제나 새로운 성장의 기회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진실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책망만 하지 않고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시도를 하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물 위를 걷는 하나님의 임재의 기적을 체험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다가 불신의 위험까지 경험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셨지만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하시며 손을 잡아 배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실패는 언제나 새로운 성장의 기회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진실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책망만 하지 않고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불편한 교훈을 하실 때 손을 잡아 주십니다. 지적만 하지 않으십니다. 손을 잡아 주십니다.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할 때 손을 잡고 해보십시오. 저 멀리서, 보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을 통해서, 뒤에서, 비열하게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단도직입적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면서 불편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믿음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실패는 성장에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시험을 통과해야 믿음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매일매일 한 걸음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이것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목표를 정하십시오. 올 한 해 동안 한 걸음만 걷는 체험을 하겠다고 말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강건한 믿음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선교사님들은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배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안전한 삶의 터전을 떠나서 선교지로 간 것입니다. 그들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매일매일 한 걸음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이것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목표를 정하십시오. 올 한 해 동안 한 걸음만 걷는 체험을 하겠다고 말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강건한 믿음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선교사님들은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배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안전한 삶의 터전을 떠나서 선교지로 간 것입니다. 그들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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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전파하라 (딤후 4:1~5) (0) | 2019.01.14 |
내게 소망이 있습니다.(예레미야애가 3:17~23) (0) | 2019.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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