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혁승교수

인간의 본분과 하나님의 판단 (전 12:13-14)

새벽지기1 2018. 2. 22. 07:45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3-14) 

 

오늘은 금년의 마지막 달 12월을 시작하는 첫 날입니다. 이제 2011년 한 해도 이제는 한 달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이때쯤이면 한 해를 잘 보낸다는 만족감이나 보람보다는 벌써 한 해가 지나간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해마다 겪는 한 해의 아쉬움은 이제 연례행사가 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늘 부족감을 느끼며 살 아 가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연말 때마다 더 없이 큰 아쉬움을 느끼는 원인 중 하나는 소중한 시간이 조금치의 쉼도 없이 계속 흐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모두에게 금쪽같이 소중한 시간을 주셨는데,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아쉬움을 갖고 한 해의 마지막 시간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한 해의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노력을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생겨서 해놓은 일을 망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작년 말에서 금년 초까지 축산 농가를 강타한 구제역으로 살 처분시킨 소와 돼지가 무려 346만 마리였습니다(돼지 330만/소 15만; 국내 전체 사육두수의 33%). 피해 규모만도 직접 피해액 2조 8000억 원을 포함하여 전체 피해액은 6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 곳에서의 허술한 방역 실수로 인하여 전국 축산농가가 그토록 막대한 피해를 본 것입니다. 잘 키운 소와 돼지를 하루아침에 산 채로 땅에 묻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들에게 아쉬움과 한탄을 자아내게 하는 크고 작은 그런 종류의 일들은 우리 주변에 다반사처럼 퍼져있습니다. 전 세계가 한 동네처럼 가깝게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시대’인 요즈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은 곧장 우리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성경 가운데 전도서는 그런 우리의 아쉬움을 잘 대변해주는 책입니다. 첫 시작이기도 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탄식은 전도서 12장 전체를 이끌어가는 중심 기조입니다. ‘헛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벨’은 어원적으로 ‘숨’ ‘수증기’ ‘안개’ ‘연기’ 등을 의미합니다. 모두가 실체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헛것들입니다. 여기에서 ‘헛됨’ 혹은 ‘덧없음’이란 의미가 파생하였습니다. 전도서는 인간의 애쓰는 수고와 그 결실(2:11; 6:2),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6:9), 심지어는 지혜로움(2:15)이나 인간의 존재(2:12), 그리고 죽음(11:8)마저도 헛되다고 토로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혜를 갖고 부와 영예를 누린다고 하여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어지고 말 헛된 것들입니다.

 

전도서가 강조하는 ‘헛됨’(헤벨) 속에는 ‘불합리함’이란 뜻도 담겨있습니다. “우매자가 당하는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개 무슨 유익이 있었으리요. 이에 내가 내 마음 속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2:15) 여기에서 ‘헛되다’는 표현은 지혜와 우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삶의 부조리를 지적합니다. 전도서 8:14도 공의가 시행되지 않고 악인과 의인이 같은 취급을 받는 불합리성을 지적합니다.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8:14) 바울도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라고 하면서 자신이 겪는 내면의 도덕적 모순성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전도서가 강조하고 있는 ‘헛됨’의 탄식과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불합리성’의 고발은 전도서의 중심부분을 이루고 있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전반부인 1:12-6:9은 6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단락마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라는 반복적 표현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후반부인 6:10-11:6은 8개 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단락마다 ‘능히 알지 못 하겠다’는 불평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전반부는 헛됨의 탄식이고, 후반부는 불합리성에 대한 고발과 불평입니다.

 

그렇다고 전도서의 내용이 단순히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살이의 헛됨과 불합리성을 털어놓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게 되는데,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탄식과 불평의 끝자락에는 문제의 열쇠를 쥐고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12:1)고 권면하면서 오늘의 본문 속에서 마지막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바른 자세를 의미합니다.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바른 실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인간의 본분이요 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시며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숨겨질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의 판단을 따라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한 일을 당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도서의 마지막 결론은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전도서의 결론 속에 강조되어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전자가 하나님을 향한 기본적 마음자세라면, 후자는 우리들의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이런 결론적 해답과 관련하여 전도서는 우리들에게 두 가지 삶의 지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첫째는 ‘받아들이라’입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헛된 것처럼 보이고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일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받아들이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해 보여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자신의 목적과 뜻을 이루시는 분입니다(롬 8:28).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전도서는 그런 것들을 전적으로 수긍하라고 권면합니다. ‘수긍할 수 없음을 넘어선 수긍’ 그것이 전도서가 강조하는 가르침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그분에게 모든 것을 위탁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판단에 근거한 주장을 접고 하나님의 판단기준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헛되다’라는 평가나 ‘불합리하다’는 불평은 모두 자신의 좁은 이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야레’는 ‘두려워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능력과 위엄 앞에 압도당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뒤로 물러서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 앞으로 이끌려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신뢰의 두려움입니다. 그런 점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뜻과 목적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적 자세입니다.

 

   (2) 두 번째는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도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분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2:24; 3:12-13, 22; 5:18-20; 8:15; 9:7-10).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3:22) 여기에서 ‘분복’은 ‘나누어 준 몫’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에게 각자에게 적합한 능력과 은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값진 금맥과도 같습니다. 그것을 그냥 두면, 땅 속에 묻혀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을 찾아서 계발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값진 보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시면서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그냥 두고 감상할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꾸며 지켜야 할 일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에게도 그런 에덴동산을 하나씩 마련해 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삶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곧 여러분들의 에덴동산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을 정성껏 가꾸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의 헛됨과 불합리성을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명령은 모두가 우리들의 에덴동산을 잘 가꾸는 매뉴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꼼짝 못하도록 얽어매는 간섭조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된 길을 바르게 걸어가도록 이끌어주는 등불과도 같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대강절의 첫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12월의 마지막 주일이기도 한 성탄절까지 계속됩니다. 대강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2000년 전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면서 앞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거룩한 절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주심으로 삶의 참된 의미를 되찾게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그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대망하면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등불을 준비하고 풍성한 결산이 있도록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 달란트를 적극적으로 계발하고 활용할 때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달 12월은 모두가 결산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결산은 자신의 지나간 모습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지혜입니다. 지난 한 해를 잘 결산을 해야 다가오는 새해를 바르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달 12월을 보내면서 장차 하나님 앞에 내놓을 인생결산서를 미리 점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엄격하신 판단기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을 바르게 점검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