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혁승교수

딸을 시집보내면서 ...

새벽지기1 2018. 2. 15. 08:19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특별한 이유는 따로 없었습니다. 다만 지난 9월 24일에 있었던 큰 딸 결혼식이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혼사를 치루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것 역시 큰 딸을 떠나보낸 마음의 공백을 잘 극복하지 못한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블로그에 다시 글을 다시 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았다는 즐거운 확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들 ‘혼사’를 ‘대사’(大事)라고들 합니다. 다 큰 자녀를 새 식구로 맞아들이기도 하고 또 남의 집 식구로 내보내는 일은 분명히 중요한 큰 변화입니다. 이번에 저의 집 ‘대사’를 치르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딸을 시집보내는 일이 아들을 장가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것은 떠난 보낸 빈자리가 너무도 확연하게 표시가 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빈자리는 나름대로 어느 정도 정리정돈이 가능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빈자리는 생각처럼 쉽게 메워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딸을 시집보내면서 겪었던 마음의 흔들림은 저에게 매우 소중한 배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대나무가 매듭을 짓듯이 커다란 의미의 배움과 성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배움 중의 하나가 오늘의 본문에 대한 묵상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결혼과 관련된 핵심 내용입니다. 예수께서도 신약에서 이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신 적이 있습니다(마 19:5; 막 10:7). 그래서 이 본문은 결혼식 주례 설교 본문으로 가장 선호되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하나님께서 결혼하는 신혼부부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본문 내용을 자세하게 분석해 보면, 전체가 신혼부부에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첫 부분은 결혼 당사자들이 아니라 부모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떠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자브’는 ‘버리다’ ‘유기하다’ 등을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결혼하는 두 남녀는 이미 부모를 떠나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부모는 쉽게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합니다. 그동안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겹겹이 쌓인 마음의 정도 있겠지만, 자녀를 사랑하도록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심어 놓으신 원초적 사랑의 자리가 너무도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도 부모는 자신들을 ‘유기’하고 떠나가는 자녀들을 박수치며 미련 없이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지시입니다.

 

그렇다고 자녀를 무작정 떠나보내라는 것은 아닙니다. 떠나보내는 목적은 자녀로 하여금 독립된 건강한 가정을 이루게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에서는 부모를 떠난 남자가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합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크’는 풀로 붙이듯이 ‘달라붙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한 몸을 이루는 부부, 그것이 건강한 가정의 기본입니다. 자녀로 하여금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떠나보내는 적극적이면서도 바른 방법은 가정이 지켜온 신앙을 분양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독립시킨다는 것은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분립이 아니라 가정이 이제껏 지켜온 신앙의 큰 줄기에서 새 가지의 싹을 틔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는 부모의 보호와 지도 아래에서 신앙을 지켰다면, 이제부터는 독자적으로 스스로 신앙의 싹을 키워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녀를 떠나보내는 목적입니다.

 

이번에 딸을 시집보내는 것을 계기로 앞서 4년 전에 결혼한 큰 아들 가정을 포함하여 전체 가족이 신앙을 분양하는 의미 있는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4대째 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가족의 신앙역사를 비교적 소상하게 알려주었으며, 가족의 신앙 속에 흐르고 있는 영적 축복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각 가정이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할 것과 그 기도시간에 다른 어떤 기도보다 앞서 모든 가족이 공동으로 드릴 기도제목을 나누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1) 신앙의 명문 가문을 이루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2) 통일시대를 맞이하여 북방선교와 땅 끝 선교의 주역이 되게 하소서!

   (3) 주어진 은사 위에 세워진 전공분야에서 최고가 되게 하소서!

 

위의 세 기도를 우리 가정의 공동기도 제목을 정한 것은 그 기도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위에 소개한 기도 내용은 이렇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는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된 것이고, 두 번째 기도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과 관련된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 기도는 각자 개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관련된 것입니다.

 

아침 새벽기도에서 그날의 첫 기도를 드리면서 우리 가족의 공동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먼저 아룁니다. 그럴 때마다 하늘로부터 각 가정과 온 가족들 하나하나 위로 넘쳐흐르는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며 확신하게 됩니다. 그것이 떠나보낸 자리를 메워주는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모두가 신앙 안에서 담장을 넘는 무성한 가지로 성장하여 풍성한 삶의 결실을 맺는 모습을 기대하는 벅찬 감격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