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성숙한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가?[2]

새벽지기1 2017. 8. 27. 08:51


성숙한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가?[2]

 

가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성숙함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봄에 피었던 나뭇잎들이 이제 자신의 일을 다 하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신비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땅으로 돌아감이 없다면 다음 봄은 기약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성숙함이 있을 때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신앙의 성숙 역시 개인의 영적 만족뿐 아니라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이렇게 영적인 성숙을 가져다주는 여섯 번째 모습은 온전한 예배입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면 일상의 기쁨은 결코 다가오지 않습니다. 예배는 성숙한 믿음의 첩경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자신의 죄를 지적받고 회개함을 통하여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류의 시작부터 예배를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는 지점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예배 가운데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는 자의적으로 드리지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드립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 아니라면 그 예배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답을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를 언급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님을 말씀하시면서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성령 안에서 진리의 말씀대로 드릴 때 그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됩니다. 이렇게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예배할 때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일곱째 영적인 훈련에 부지런하여야 합니다. 훈련 없이 성숙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이 말은 적용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신앙의 영역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의 위대함은 80년간의 훈련에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훈련 없이 변혁의 삶을 산 이는 역사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고 자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훈련으로 준비된 자는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특별히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알아가는 자를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믿음의 선배들이 자신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훈련 받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훈련 받을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있다면 열심을 다하여 훈련받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숙에 이르는 길입니다.

 

여덟째 자원봉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앙의 영역은 내적인 영역과 외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자원봉사의 삶은 외적인 부분에 해당합니다. 자원봉사는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나누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는 자신의 영광만을 위하여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달란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은 달란트를 나눔으로 나타납니다. 신앙의 아름다움은 나눔입니다. 그런데 그 나눔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재능을 나누는 것이라면 이처럼 행복하고 기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그의 삶이 항상 밝고 행복에 젖어 있는 것을 봅니다. 자원봉사는 자발적 헌신이기 때문에 성경의 가르침에 가장 합당합니다. 특별히 봉사의 영역이 교회에서 시작하여 지역으로 그리고 사회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전혀 맛보지 못하였던 영적 성숙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홉 번째 영적 성숙은 십자가 아래 날마다 거하는 삶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비움의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부인의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채움의 장소가 되고 회복의 장소이며 영광의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만족과 기쁨을 누리려면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아래로 모여야 합니다. 십자가 없이 영적인 성숙은 결코 없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십자가를 잊는다면 그것은 영적인 침체를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어리석게 보이고 미련하게 보이고 힘들게 보이고 기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는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주어지고 영광의 나라에까지 가는 모든 여정에 가장 강력한 능력이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는 것을 기뻐하는 자에게 성숙한 믿음이 주어집니다.


열 번째 성숙한 믿음은 증인의 삶을 살 때 주어집니다. 증인의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내리신 지상명령은 바로 증인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증인은 전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전하기 위하여 우선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배운 대로 전합니다. 전할 때 배운 것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증인은 시대를 본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시대를 분별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증인은 영적인 거듭남이 없고 훈련이 없이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가장 큰 영광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만족감과 확신이 있기 때문에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증인의 삶은 성숙한 믿음에 이르는 길이며 성숙한 믿음을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열 한 번째는 성령을 온전하게 의지 하여야 합니다. 성령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이시지만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성자 하나님을 온전하게 증거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것이 바로 성숙한 믿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결코 이 땅에서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일관성 있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말씀의 가르침에 온전하게 순종할 수 없습니다. 부의 통로로 사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충실하게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게 하여 주십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기에 거짓의 아비인 사단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믿음은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열두번째 성숙한 믿음은 자발적 가난의 삶을 살려고 몸부림 칠 때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삶은 자발적 가난의 삶의 모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그들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 보좌 위에 있을 열두 보좌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발적 가난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바울 역시 그러한 삶에 동참하기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킨 자에게 장차 올 영광의 면류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너무 커지고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교회역시 부의 통로가 되어져야하고 궁극적으로 자발적 가난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부의 통로로서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기업 활동하고 부를 모으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내가 번 것은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셨기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부의 창출자가 되면서 동시에 부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고이면 썩습니다. 물질도, 재능도 다 동일합니다. 썩어 냄새가 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부의 통로로 살 때 그의 삶은 훨씬 윤택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바라는 것은 이 땅에서 삶을 마칠 때에는 자발적 가난의 삶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의 통로로 만족하시기 말고 자발적 가난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교회를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이 일에 우리가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