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살아있는 나무와 같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자라나는 것을 의미하고 열매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살아있기에 보는 이들에게 행복을 줍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믿음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을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성숙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나무가 살아있다고 해서 아무 때나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을 때가 되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도 동일합니다. 성숙된 믿음이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이전의 굽어진 길에서 바른 길로 가는 삶을 살며 하나님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삶의 현장에서 실천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어리아이와 같은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는 장성한 신앙이 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죽만 먹는 신앙이 아니라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신앙이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우리는 딱딱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이 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살아있어야 함이 전재되어야 합니다.
죽은 것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썩은 냄새만 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살아있음은 중생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에 대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회심을 통한 중생이 우선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라기 전에 생명을 소유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거듭난 생명을 가진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령한 음식이 필요합니다.
이 음식에 대하여 성경은 다양하게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물가에 심은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신령한 젖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두는 한 가지를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마다 때마다 먹는 것이 바로 건강하게 자라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이 양식을 먹을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좋아 열매를 맺음 같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자라게 하여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생명을 가진 자는 신령한 음식인 말씀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이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성숙한 신앙의 길에는 반드시 기도가 함께합니다.
기도 없는 삶은 결코 성숙되지 않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무시로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내지 않고서 결코 영적인 은혜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기도없이 신앙생활 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거짓된 신앙입니다. 거짓의 아비에 의하여 미혹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우려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풍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 없어도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하는 동력입니다. 기도를 무시하고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결코 성숙한 신앙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넷째 성숙한 신앙은 공의를 행하며 가난한 이들을 존중히 여기고 섬길 때 주어집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의 성숙을 내적인 측면에만 머물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의로운 삶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성숙은 반드시 외적인 모습과 함께합니다. 공의를 행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지 않으면서 영적 성숙을 기대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입니다.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렘7:5-7]
공의를 행하고 약자를 돌보는 자에게 하나님은 무한한 약속을 하십니다. 이것이 성숙된 신앙을 통하여 얻는 복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하면서 공의와 약자를 가볍게 여긴다면 그것은 가증한 일이 됩니다. 여기에는 결코 성숙이 없습니다.
다섯째 성숙한 신앙은 감사와 순종이 함께 합니다.
감사는 삶의 정황에 대한 것입니다. 가자?의 삶이 전혀 다릅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환경을 극복합니다. 감사는 관계를 회복합니다. 감사는 기쁨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또한 감사와 함께 따라오는 순종이 있습니다. 자신의 소견대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사울이 범한 실수를 따라하지 않고 다윗이 행하였던 순종의 길을 갑니다. 이러한 감사와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감사와 순종을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이러한 감사와 순종의 결정체입니다. 성숙한 신앙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감사와 순종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감사와 순종이 성숙한 신앙으로 이끌게 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 참으로 필요한 것은 성숙입니다. 성숙이 없는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의 골칫거리입니다. 그러나 성숙된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며 생명을 다시 낳는 일을 합니다. 이 성숙된 신앙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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