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창조와 책

새벽지기1 2017. 6. 2. 07:25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은 말씀이 창조의 수단이 아니라 창조의 내용이요 본질이라는 이야기다. 동시에 세상은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 말씀 덩어리라는 걸 암시한다. 사람 또한 말씀 덩어리다. 그러나 단순한 말씀덩어리가 아니다. 말씀덩어리를 넘어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요, 말씀이신 분과 소통할 수 있는 대화적 존재다. 말씀을 통해 말씀덩어리인 세계와 자신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때문에 말씀을 듣지 않으면 세상도 모르고 나도 모른 채 죽음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다른 피조물은 말씀을 담고 있으면 그만이지만, 굳이 말씀을 읽고 이해하지 않아도 사는데 문제가 없지만, 사람은 말씀을 담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씀을 듣고 읽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말씀으로 가득한 세상과 삶을 이해하며 살 수 있다.

 

사람은 일방적으로 듣는 존재만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읽고 이해한 말씀을 이야기와 글을 통해 표현하고 전달하는 존재다.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사람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듣는 존재라고 했다. “인간은 똑바로 설 수 있다. 그러나 고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쩌면 코끼리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말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나 돌고래의 떠드는 소리도 어느 정도 그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다른 동물이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예수, 하버드에 오다). 그는 또한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만약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능력을 상실한다면 우리는 지혜에 접할 기회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끝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하는 존재다. 오직 인간만이 글을 쓰고, 글을 읽는다. 오직 인간만이 모든 경험과 생각과 지혜를 이야기와 책 속에 담아 전달한다. 이야기와 책은 모든 피조세계에서 오직 인간세계에만 있는 특별한 유산이다.

 

인간만의 특별한 유산인 책속에는 온 하늘과 온 세상과 온 삶이 담겨있다. 글쓴이의 자취와 체온이 담겨있고, 굴곡진 삶의 지혜와 이야기가 담겨있다. 역사를 거듭하며 쌓아온 모든 것이 담겨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간의 심리, 경험, 역사적 논쟁과 사건들, 종교적 경험과 사색들, 철학, 의학, 법과 경제, 경영, 취미, 우주와 지리, 고고학, 예술, 기술의 발달 등등 거의 모든 것이 책속에 담겨있다. 책속에는 바다 속의 진기한 세계가 펼쳐있고, 상상하기조차 힘든 우주의 비밀과 생명의 신비가 마치 비밀의 방에 들어서는 것처럼 펼쳐져 있다. 우리가 책을 펼치기만 하면 인생의 모든 고민, 풀어야 할 문제와 해답, 들어야 할 지혜, 찾아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은 책속에 거의 모든 것을 담아 놓았다. 하나님 또한 책속에 당신의 말씀을 담으셨다. 모든 존재의 시작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역사의 종국에 대해서까지 사람이 알아야 할 최고의 진실을 책속에 담아놓으셨다.

 

때문에 하늘의 음성을 듣고 삶의 신비를 들으려면 책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길거리의 소음을 잠재우고 헝클어진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서도 책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우리가 책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책은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인생의 심오한 세계를 들려준다. 온갖 욕망과 상처로 얼룩진 마음을 씻어준다. 어떤 강요나 억압도 없이 조용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삶의 진실을 들려준다. 가장 진솔하고 깊이 있는 삶의 대화를 나누어준다.

책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축복이 아니다. 누구든지 호기심과 관심만 있으면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그것도 마음만 먹으면 최소의 비용으로 시간 제약도 없이 밤이건 낮이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책을 만나기 위해 시간 약속을 하거나, 장소를 정하거나, 이동할 필요가 전혀 없다. 책은 언제든지 저만큼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무장해제를 한 채로 밤이고 낮이고 다가가기만 하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맘대로 열어보고,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해도 전혀 싫은 표정을 짓지 않는다. 자기 몸이 닳아 없어져도 아픈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예수, 노자, 장자, 공자, 소크라테스, 간디,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등 누구라도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자유로이 만날 수 있다.

 

책은 단순한 지식 저장고가 아니다. 책속에 담긴 모든 것은 책장 속에 깊이 갇혀 있다가도 우리가 책장을 여는 순간 살아나 독자에게 말을 걸고, 독자의 생각을 자극하고, 독자가 경험한 사건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 준다. 수천 년 전 저자의 삶과 생각이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삶을 읽는 지혜가 된다. 삶과 문화와 역사적 경험이 다른 저자들과의 만남이 우리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주기 때문에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현재의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은 삶을 읽는 것이고, 세계를 읽는 것이며, 인간과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손길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인생을 이해하며 살고자 하는 힘찬 노동이며, 존재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 책을 읽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며, 가장 효과적인 배움이다. 책을 읽는 것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가진 인간의 특권이며 의무다. 책을 읽는 것은 말씀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열고, 말씀으로 가득한 삶을 여는 참으로 위대하고 값진 영혼의 행위다. 내 경험에 의하면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양질의 시간이 없고,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활동적인 시간이 없고,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깨어있는 시간이 없고,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없고,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정직하게 삶의 진실을 대면하는 시간이 없다.

 

인류의 유산인 책을 읽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특권이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다. 가장 인간적인 행위요 영혼의 행위이다. 뒤집어 말하자. 책을 읽지 않고 사는 것보다 억울한 일은 없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유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그것을 풀어보지도 않은 채 인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고 원통한 일은 없다.

때는 가을의 문턱이다. 소중하고 값진 인생을 어리석고 원통하게 살지 않으려면 태산처럼 높이 솟은 책의 봉우리를 정복할 수야 없겠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올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온 세계는 말씀으로 가득하고, 인간 세계는 책으로 가득하다. 이것은 삶이 본디 읽음이요, 인간도 본디 읽음의 존재임을 말해준다. 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 읽음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 읽음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읽음이 없으면 세계도 없다. 세계와 삶은 말씀으로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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