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일반화의 필연과 오류 사이에서

새벽지기1 2017. 6. 1. 07:17


사람은 일반화를 하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존재, 일반화를 통해서만 뭔가를 포착하고 이해하는 존재다.

예를 들어 동서남북이라는 방위는 날마다 해가 떠오르고 지는 것이

어느 정도 일정한 것을 보면서 정립됐고,

날과 계절과 년은 해가 뜨고 지는 것, 해의 위치가 조금씩 변화하는 주기가

어느 정도 일정한 것을 보면서 정립됐다.

사람의 기질과 혈액형은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경험하고

자료를 분석하고 통계처리하면서 정립됐다.

 

물론 모든 존재와 사건은 제각각 독특하고 고유하다.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하다.

하여, 모든 존재와 사건을 개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비슷한 것끼리 묶고 차이를 구별해내는 일반화 작업을 해야만 비로소 이해된다.

그런 면에서 모든 개념이나 지식은 일반화 작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의학, 교육학, 생물학, 인류학 등등도 일반화 작업의 산물이다.

근대 이후 서양이 동양을 앞지른 것도 일반화 작업을 통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고,

과학과 기술을 표준화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이 지금처럼 문명화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일반화/표준화 작업 덕분이다.

인류의 문명은 일반화/표준화 작업의 연속이었고,

일반화/표준화 작업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런 면에서 일반화는 지식의 절대 요소요, 표준화는 문명의 절대 요소라 할 수 있다.

 

일반화는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한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확보하고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해의 공통분모, 사회의 공통분모, 질서의 공통분모를 확보하고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일반화 작업을 하지 않고는 사회를 이룰 수도 없고, 세상을 살아갈 수도 없다.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반화 작업을 해야 한다.

일반화는 삶의 필연이다.

 

그런데 삶의 필연인 일반화에는 반드시 오류가 따른다.

혈액형 A형인 남자는 소심하다, O형 남자는 단순하고 낙천적이다,

키 큰 남자는 싱겁다, 아름다운 꽃이 먼저 꺾이듯 미인은 박명(薄命)한다,

전라도 남자는 말이 많고 경상도 남자는 말이 없다,

새벽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믿음이 좋다는 것이 일반화이다.

이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혈액형이 A인데도 소심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키가 큰데도 싱겁지 않은 사람이 있고, 전라도 사람인데도 말 없는 사람이 있고,

미인인데도 장수하는 사람이 있고, 새벽기도 열심히 하는데도 믿음이 안 좋은 사람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한 이 세계는 사람이 만든 기계와 달리

열린 시스템이라서 일률적이거나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규칙성 속에 불규칙성이 있고,

불규칙성 속에 규칙성이 있는 참으로 오묘한 세계요 열린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존재와 사건은 저마다 독특한 상황과 엮여있다.

외부와 부닥치면서 변화하는 우발성을 갖고 있다.

사람과 삶은 더더욱 그렇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서 일률적이거나 규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A를 입력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A1을 출력하지 않는다.

천 명에게 A를 입력하면 A1에서 A1000까지 다양한 결과가 출력된다.

그러니 인간과 인간이 빚어내는 삶을 일반화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일반화의 잣대를 마구 들이대면 어떻게 되겠는가?

‘키 큰 남자는 다 싱겁다’고 규정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고 삶이 피폐해지겠는가?

 

그런데도 사람은 거의 일반화의 오류에 갇혀 살고, 일반화의 잣대를 휘두르며 산다.

모든 존재와 사건은 저마다 독특하고 고유하며 외부와 부닥치는 우발성을 갖고 있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일반화해버린다.

자기가 보고 알고 경험한 것이 지극히 부분적이고 상대적인데도 그것을 성급하게 일반화해버린다.

아니, 하루에도 수백 번씩 습관처럼 일반화의 오류와 폭력을 행하며 산다.

 

물론 앞에서 말한 대로 일반화는 꼭 필요한 삶의 요소다.

일반화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면 사회 질서와 삶의 평화가 깨진다.

최근에 고 백남기 선생 사망진단서를 병사라고 기재한 것,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 촉구를 요구하는 단식을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일반화된 사망진단서나 단식의 상규를 무시하는 처사는 문제를 야기한다.

일반화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화에 갇혀서도 안 된다.

세월과 함께 이런저런 경험이나 지식을 축적하게 되면

자기가 경험하고 축적한 지식에 갇히기 쉬운데 그러면 안 된다.

이것은 내가 경험해서 아는데, 이것은 어느 이론에 나와 있어서 아는데,

라고 하면서 선을 긋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런 것은 존재와 사건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폭력이다.

사람을 보편의 잣대로 규정하는 폭력이다.

 

결국 일반화를 부정해도 안 되고, 일반화에 갇혀도 안 된다.

일반화를 수용하고 존중하되 일반화를 상대화하며 살아야 한다.

특히 사람의 고유성과 사태의 독특성(우발성)을 깊이 헤아리며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삶의 다양한 무늬가 살아날 수 있고, 평화가 탐스럽게 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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