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도망자에서 순례자로 (창 28:10-22)

새벽지기1 2017. 5. 8. 07:11


구원의 사닥다리가 되신 예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늘과 땅을 연결하시고, 교통하는 예수님과 연합해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살게 되고, 천국을 이 땅에서누릴 수 있은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상황에서 만났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난 때는 평안할 때가 아니라 불안할 때 만납니다. 성공할 때가 아니라 실패할 때,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할 때가 아니라 죄에 대한 고통 가운데 있었을 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불안과 염려, 두려움과 실패, 죄로 인해 고통 받고 있을 때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죄를 더 많이 지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더 가까이 다가오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쳐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보다 넓고 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때는 하란이라는 지역까지 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야곱이 떠난 이 여행은 견문을 넓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망을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죄로 인해서 가족과 이별하고 홀로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원하던 장자권과 아버지의 축복은 얻었지만 도망자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죄 가운데에서 원하는 것만 이루며 사는 사람은 언젠가는 원하지 않는 대가를 치러야합니다. 야곱이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 겪는 불안과 두려움, 자신이 범한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그 때에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죄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안과 두려움, 염려 가운데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야곱은 에서의 위협을 피해서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까지 도망을 갔습니다. 야곱이 도망쳐 온 브엘세바는 남쪽인데 야곱이 가고 있는 하란은 가나안 땅의 북쪽입니다. 혼자서 여행하기에는 굉장히 먼 거리입니다. 야곱이 지치고 힘들어서 잠이 들었을 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잠은 믿음의 표현 

 

하나님은 왜 야곱이 깨어있을 때가 아니라 잠들었을 때 찾아오셨을까요. 야곱은 꾀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깨어 있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면 야곱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으로 인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이 잠이 들었을 때 찾아 오셨습니다.

사람은 잠이 들면 수동적이 됩니다. 아무리 기운이 센 장사라고 할지라도 피곤하면 수동적이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잠을 자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잠은 내가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루를 어떻게 계산합니까. 대부분 아침부터 저녁을 하루로 계산합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시간관과 히브리 사람들의 시간관은 저녁부터 아침을 하루로 계산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절기마다 저녁부터 다음날 저녁까지를 하루로 계산합니다. 무엇 때문에 하루가 저녁부터 시작될까요. 저녁은 잠을 자야하는 때입니다.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내어드리는 때가 바로 저녁입니다. 이것 때문에 저녁이 하루의 시작입니다.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시작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인생은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에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인생에 참여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잠은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만지는 시간

 

잠자는 시간은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시는 순간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우리 코에 생명을 불어넣어주셨다고 고백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잠에 관해 말씀이 시편 127편 2절에 나옵니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는 것도, 늦게까지 자지 않으며 고생해서 얻은 것을 먹는 것도 헛되다. 여호와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잠을 주시기 때문이다”(시 127:2).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시편 127편 1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짓지 않으시면 건축자들은 헛수고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이 지키고 서 있는 것도 헛일이다”(1절).우리가 믿음으로 깨어 있지 않아도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믿음으로 잠을 자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깨어 있지 않아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 잠입니다.  시편 3편 5~6절에도 동일한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누워 잠들었다 깨어나는 것은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시는 것이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거슬러 둘러싼다 해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5~6절).

우리의 모든 생각과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우리를 만지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입니다. 잠을 잘 자고 일어나면 얼마나 개운합니까. 아무리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도 잠을 자지 않으면 건강은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때가 바로 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미래의 일을 계시하는 꿈

 

야곱이 잠들어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만나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과 지식, 경험과 에너지가 모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의 꿈을 통해 만나 주셨습니다.

인간의 정신세계와 영적세계의 통로가 되는 것이 바로 꿈입니다. 심리학자들은 꿈은 ‘과거의 것이 되살아나는 것’, ‘이루고 싶었던 어떤 것을 이루는 것’, ‘무의식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꿈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꿈에 대한 전혀 다른 영역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꿈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의 일을 계시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의 일을, 무의식의 세계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세계를 가르쳐 주시는 통로로 꿈을 사용하셨습니다.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꿈을 사용하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에게 메시야가 처녀의 몸에 잉태될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을 때, 꿈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이 깨어있을 때 말씀을 하셨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인간의 지혜와 생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예수님 


야곱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지만 야곱은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지만 나의 하나님이기도 해야 합니다. 야곱은 한 번도 하나님을 체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의 믿음을 빌려 사용하는 정도의 믿음을 갖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야곱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가 꿈에 보니 사닥다리 하나가 땅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12절). 야곱의 꿈속에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가 있었고, 그 사닥다리에 천사들이 서로 교통하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엄청난 간격이, 사닥다리를 통해서 연결되는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실 이 환상이 무엇인지는 구약만으로는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하늘과 땅이 연결될 수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복음 1장에서 이 환상을 해석해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 1:51).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땅에 있는 인간들이 하늘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인간들과 교통할 수 있도록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보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천국을 땅에서 누리는 방법

 

구원은 이 땅에서의 수도를 통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사다리를 통해서 내려오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닥다리의 맨 위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사닥다리 위에서 우리를 부르셨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사닥다리에서 내려오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내려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이유입니다.

인간들은 바벨탑을 쌓아 하늘까지 오르려고 했지만 누구도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하늘에 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사닥다리만이 하늘과 땅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 사닥다리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구원의 사닥다리가 되신 예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을 붙잡으십시오.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교통하는 예수님과 연합해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살게 되고, 천국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은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야곱은 꿈속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 곧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겠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과 같이 돼서 동서남북으로 퍼지게 될 것이다. 너와 네 자손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겠다. 그리고 너를 이 땅으로 다시 데리고 오겠다.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13-15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그가 잘 나서도 아니고 그가 거룩해서도 아닙니다. 야곱은 죄를 짓고 도망가는 중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그 약속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크지 않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바로 이러한 원리에 기초해서 유아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유아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곱의 놀라운 변화

 

하나님은 야곱에게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지 않은 약속을 추가적으로 주십니다. 그것은 보호하고,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야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하나님께 응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계시와 하나님의 나타나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야곱은 하나님만을 의식하며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보다 더 중요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어떤 고백을 했는지 살펴봅시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말했습니다. ‘참으로 이곳은 여호와께서 계신 곳인데 내가 몰랐구나.’ 그리고 그는 두려워하며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며 이곳이 하늘의 문이구나’” (16~17절).


야곱은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잘 때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함께 자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광야를 걸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함께 걷고 계셨습니다. 야곱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이루실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증거가 야곱의 서원기도입니다.

“야곱이 서원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저와 함께 계셔서 제가 가는 이 여정에 저를 지키시고 제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제가 제 아버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해주신다면 여호와께서 제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모든 것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20-22절). 야곱이 처음으로 하나님과 대면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 자체가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것이 아닌지를 볼 것이 아니라 변화를 보십시오.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던 야곱의 인생에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생겨났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야곱이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주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비록 조건이 있는 서원이지만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순례자의 삶으로

 

자신의 꾀와 지혜만을 의지하던 야곱이 예배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머물렀던 곳을 예배의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순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순례자는 자신이 어느 곳에 머무르든지 그곳을 예배의 자리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서있는 그곳을 예배의 자리가 되게 하십시오. 그것이 순례자의 삶입니다.  

삶의 장소가 자주 바뀐다고 해서 불평하면 도망자가 되고 그곳을 예배의 장소로 만들면 순례자가 됩니다. 한 곳에 오래 살거나 , 어디를 돌아다녀야만 순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예배의 자리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순례의 인생입니다. 또한 순례자는 취하지 않고 나누는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에서를 피해 도망간 야곱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꿈에 서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된 야곱의 삶입니다. 그는 도망자에서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 야곱의 삶이 평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야곱은 여전히 힘겨운 여행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그의 여행은 도망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순례의 여행이 되었습니다.

혹시 야곱처럼 도망자의 인생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도망치고 회피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박정일 meteojiop@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