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형제의 불행한 거래 (창세기 25:27-34)

새벽지기1 2017. 5. 4. 08:09


자녀들이 비뚤어진 인성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건강하게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건강한 가정 안에서 행복을 누리도록 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가득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야곱의 두 번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거래를 해야 하지만 가정에서는 거래를 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은 거래로 유지되는 곳이 아니라  순수하고 참된 사랑으로 유지되는 공동체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가정을 공격하는데 그것은 가정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순수한 사랑을 누려야하는 가정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가정의 행복은 깨지게 됩니다.

 

가족 간의 갈등 요인 


야곱은 출생 전부터 에서와 갈등을 겪습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갈등을 겪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비애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사람에게 죄의 유전인자가 숨어있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이 범죄를 저지른 이후 자신의 어머니가 죄악 중에 본인을 잉태했다고 했듯이 우리 모두에게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출생한 이후 처음으로 겪는 가족 간의 갈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야곱이 성장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으로 들판에 나다니는 사람이 됐습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장막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27~28절).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인성이 형성됩니다. 에서와 야곱은 전혀 다른 기질과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잘하는 능숙한 사냥꾼으로, 외향적이고 남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야곱은 집안에 있기를 좋아하는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용한 사람은 수줍음이 많아 말이 없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고 침착한,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계획한 바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집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형제지간에는 다른 기질과 성격을 서로 보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부르심 때문입니다. 모든 형제들이 서로의 기질과 성격을 보완해 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가 맺어지겠습니까. 형제가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

 

자녀에게 부모의 역할은 조정자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경험한 부모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와 야곱이 서로 다른 면을 보완하도록 하기보다 다른 길로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이삭과 리브가가 각각 한 자녀만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에서를 사랑하는 이유를 주목해 주십시오. 28절입니다.“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28절) 에서는 이삭에게 잘 보이기 위해 능숙한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냥에 심취하게 되었고 결국 사냥꾼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에서는 이삭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했을 때 박수를 쳐주는가가 자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칩니다. 장남인 에서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냥에 심취해 계속했고 결국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역기능적인 가정

 

많은 사람들의 인성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가 자녀를 조건적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들만 하다 보니 참된 자기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결국 자기를 잃버리고 사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진정한 부모의 사랑은 자녀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그를 사랑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삭이 사랑한 것은 에서가 아니라 고기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간단합니다. 야곱은 에서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아버지에게 소외된 야곱에게 집중적으로 사랑을 줬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야곱을 마더 컴플레스에 빠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마더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지독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 있었던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꾀는 어머니에게로부터 받은 편애가 만든 부산물입니다. 야곱의 가정은 역기능적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와의 감정적 거리가 지나치게 멀었습니다. 반대로 어머니는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야곱의 어머니는 아들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죽을 끓이고 있는 ‘야곱’

 

“그러던 어느 날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는데 들판에 나갔던 에서가 들어왔습니다. 에서는 배가 고팠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그 붉은 죽을 내가 좀 먹게 해다오. 나 정말 배고파 죽겠다.” ‘붉은 것’을 먹겠다고 해서 그의 별명을 에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29~30절).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야곱은 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음식을 하는 것이 이상해서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야곱이 죽을 끓일 때의 마음을 알려 주기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죽을 끓이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야곱은 에서를 이용하기 위해 죽을 끓이고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부비트랩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부비트랩은 전쟁에서 적군이 무의식적으로 스위치를 건드렸을 때 터지는 폭탄입니다. 부비라는 말의 뜻은 바보입니다.  야곱은 에서를 위해 만든 음식으로 부비트랩을 만들었습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그가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하지만 에서는 유난히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오랫동안 준비하고 계획했던 자신의 계획을 실천합니다.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먼저 형의 장자권을 오늘 내게 파십시오’”(31절) 오늘날 거래에서는 객관적인 공증과정이 필요합니다. 말로만 하는 거래는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는 사람들의 말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말로만 거래를 하는 것은 효과가 없지만 당시에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오늘날보다 훨씬 사람의 말을 신뢰했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팔겠다고 하면 파는 것입니다. 오늘날보다 건강한 시대였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번 주고받은 이야기지만 말의 힘을 아는 시대였습니다.

 

즉각적인 만족 구하는 ‘에서’

 

“‘먼저 형의 장자권을 오늘 내게 파십시오’ 에서가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죽을 지경인데 장자권이 내게 무슨 소용이냐?’ 그러자 야곱이 말했습니다. ‘오늘 당장 내게 맹세부터 하십시오.’ 에서가 맹세를 하고 야곱에게 자기 장자권을 팔았습니다”(31~33절).  에서는 야곱에게 너무 쉽게 장자권을 넘겼습니다. 형제간에 불행한 거래가 이뤄진 것입니다. 야곱은 형의 연약함과 무지함을 이용해 이득을 취했습니다. 에서는 동생에게 사냥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이야기에서 승자가 없습니다. 둘 다 실패자입니다.

먼저 에서의 문제점을 살펴봅시다.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꾸었습니다. 미래에 주어질 축복을 지금의 축복과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에서는 배고픔을 참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에서는 즉각적인 만족을 구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성숙은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것입니다. 당장에 즐거움보다 미래의 즐거움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 이 성숙한 인격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32절에서 “내가 지금 죽을 지경인데 장자권이 내게 무슨 소용이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에서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루 한 끼, 혹은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도 죽지 않습니다. 에서는 배가 고프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동물적 인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의 영적 의미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에서의 모습에서 중독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알코올이나 마약, 성, 도박, 일중독 등 모든 종류의 중독에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종류의 중독이든지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독의 공통적인 증상입니다. 왜 중독이 일어납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야하는 갈망을 다른 대상으로 바꾸어버리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중독은 신을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에서는 음식중독자입니다.

음식은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음식을 주신 것은 관계와 교제를 위한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먼저 주신 선물이 음식인데, 인간이 타락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음식입니다.

영어로 ‘Companion(동반자)’은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음식을 통해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음식은 단지 배를 채우고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함께 교제하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음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음식을 가지고 다른 마음을 품었습니다. 에서도 음식이 주는 신성한 영적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배만 채우려는 동물적인 본능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인 사람 ‘에서’

 

“그제야 야곱이 에서에게 빵과 붉은 죽을 주었습니다. 에서는 먹고 마신 후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이처럼 에서는 자기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습니다”(34절).  에서가 얼마나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고픈 배만 채울 수 있다면 미래에 어떤일이 벌어지더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독에 빠진 에서의 모습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엄청난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에서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에서가 하나님이 주신 장자권이 미래의 축복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한 그릇의 죽으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장자권을 팔았겠습니까. 아마 엄청난 축복의 도구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에서에게는 장자권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목마름이 없었습니다. 장자권이 얼마나 중요하고, 엄청난 축복의 도구라는 것을 무시했습니다. 인생의 주도권이 자신의 육체가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음행하는 사람이나 음식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세속적인 사람이 없도록 살피십시오. 여러분이 알다시피 에서는 후에 복을 상속받고 싶어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가 눈물로 복을 구했지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히 12:16~17절).  에서는 세속적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꾀와 속임수 쓰는 야곱

 

에서가 세속적인 사람이라면 야곱은 거룩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야곱은 형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야곱이 그렇게라도 했기 때문에 23절 나온 말씀처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라’는 말씀이 이뤄지지 않았느냐라고 질문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데에는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인간의 죄악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돕지 않아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불의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야곱의 잘못된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구원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죄는 가룟 유다의 죄이고, 야곱의 죄는 야곱의 죄입니다. 야곱에게는 아직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믿음이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꾀와 속임수를 통해서 이루는 교활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서는 무지함으로 고난을 겪고, 야곱은 교활하기 때문에 고난을 겪게 됩니다. 남의 것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빼앗고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자가 될 수는 있지만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언제나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사랑과 감사, 용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 야곱이 죽을 갖고 있었고, 에서는 장자권을 갖고 있었는데 형제의 거래는 불행한 거래 때문에 이야기 끝난 후에는 에서가 죽을 갖고 있었고 야곱은 장자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건강한 가정, 건강한 행복

 

남아프리카에 온 흑인 주교가 컨퍼런스에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해서 미국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왔고 우리는 땅만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땅을 갖게 되었고 우리가 성경을 갖게 되었다.” 이 거래에서 손해를 본 쪽은 어디입니까. 혹시 아프리카에 갔던 백인들이 에서와 같은 거래를 한 것은 아닐까요. 오늘날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버리고 물질적인 축복에 집착하는 에서와 같은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에서처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거래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순간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영원한 축복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미래의 엄청난 가능성을 순간의 욕심에 팔아버리는 삶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야곱처럼 야심으로 인해 아름다운 관계를 깨드리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상대방의 연약함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심을 챙기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삶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고 그 삶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의 역기능적 가정과 잘못된 관계는 부모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가 형제간의 갈등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건강하게 사랑해 주십시오. 자녀들이 비뚤어진 인성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건강하게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건강한 가정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도록 해주십시오.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가득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야곱의 가정에서 우리의 가정을 보게 됩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조건적 사랑을 했고, 우리 자신을 위한 사랑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사랑이 더욱더 거룩한 사랑, 순수한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이 되도록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 속에 깨어진 관계가 없게 하시고, 불행한 거래가 없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가 가득한 관계가 되게 하옵소서. 에서의 모습에서 순간의 기쁨을 위해 영원한 축복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야곱의 모습에서 자신을 위해서라면 가족까지도 이용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삐뚤어진 모습이 우리 가정에서는 나타나지 않도록 가정을 구별하여 주옵시고, 성령께서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박정일 meteojiop@nate.com